역대 정권에서 가장 힘센 기관은 어디였을까. 이승만 정권 때는 치안국이었다. 경찰력을 한 손에 쥐고 자유당 천하의 하수인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박정희 정권에 와선 경찰 따위는 명함을 내놓지 못했다. 막강한 중앙정보부가 탄생한 때문이다. 집권 공화당 패들도 그 곳에 끌려가 치도곤을 맞았다.
신군부의 힘을 배경으로 보안사가 막강한 위세를 떨친 것은 전두환 정권 때였다. 그 무시무시한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도 얼룩무늬의 보안사 앞에선 손을 비볐다.
김영삼-김대중으로 이어지는 문민-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그 암담한 시대는 막을 내렸다고들 생각했다. 민주화 투사들이 정권을 잡았으니, 이제 민초들은 발을 쭉 뻗고 태평성가를 구가하면 될 것으로 환호한 것이다.
한데 그게 아니었다. 검은 법복을 잘 차려 입은 검찰이 그 자리에 들어섰다. 특히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다음, 검찰의 힘은 무소불위(無所不爲), 바로 그것이다. 3년반 전 김대중 정권이 출범한 이후, 세상을 떠들썩하게 한 사건들이 검찰의 손을 거치면서, 감춰지고 축소되고 뒤틀리고--공평무사가 생명인 법을 다루는 국가기관이 이럴 수 있는가 하고 많은 국민들이 개탄하고 분노하는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IMF 사태로 실직자가 거리로 내몰리고 기업이 쓰러져 가던 그 순간, ‘고위 공직자 사모님들’이 고급 의상실을 넘나들며 말썽을 빚은 ‘옷 로비’, 폭탄주 덕분에 폭로된 ‘파업유도’, 서민 돈을 훑어간 대형 ‘금융비리’ 등등 일일이 대기조차 힘든 사건들을 검찰이 어떻게 처리했는지는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한데 그 일그러진 검찰의 진면목이 드디어 백일하에 드러났다. ‘이용호 게이트’라는 해괴한 사건에서다. 30대의 한 젊은 기업가가 수백 억원의 자금을 불법으로 끌어내 도깨비 방망이 같은 돈벌이를 하고, 그 불법을 감추기 위해 검찰 내 고위 실세들에게 로비를 한 실로 기막힌 사건이 터진 것이다.
검찰의 최고 지휘자인 검찰총장의 동생, 요직 중의 요직인 서울고검장, 그 아래 차장, 이름도 예사롭지 않은 ‘특수 2부장’--이들이 세상 무서운지 모르고 나댄 30대 졸부의 뒤를 봐준 장본인들로 지목 받는, 건국 후 최대의 검찰 스캔들 한 가운데 서게 된 것이다.
거기서 끝난 게 아니다. 옷 로비 사건 등 검찰 관련 사건 때마다 구설에 오른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이 이 드라마에 빠지면 이상할 일이다. 문제의 주범이 한때 쇠고랑을 차자 과거 부하였던 서울 고검장에 전화를 걸었고, 그런 뒤에 검찰이 냉큼 주범을 풀어 주었다니 끼리끼리도 유분수가 아닌가. 이 전화 한 통화 값이 무려 1억원, 민초들은 그저 놀라고 울화가 치밀어 하늘을 향해 주먹질을 해보지만 그렇다고 겁먹고 참회할 사람들이 아니다.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 ‘권력의 놀음판’에 국정원이 빠질 리 없다. 경제동향을 감시한다는 고위간부가 주범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또 이 먹자판 잔치에 순사(경찰)가 빠질 리 있나. 이용호에 대한 나쁜 소문을 퍼뜨린다는 죄목으로 증권가의 사이버 소문꾼들을 잡아 가둬 입을 봉했다.
하지만 이들은 저 아래 조연급에 불과하다. 무대의 음험한 장막 뒤에는 정치권 실세들, K모라는 실세 중의 실세, 그 외곽에 포진한 권력 핵심의 친인척이 얼굴을 숨기고 있다. 이 희대의 드라마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하는 데는 또 다른 배역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조폭’. 조직폭력배의 약자다. 호남을 무대로 주먹을 자랑하는 갱단의 대부가 검찰-정치권실세 등 주역들과 주범을 잇는 다리 역을 했다. 수십억원의 돈이 조폭을 통해 정치권 등에 흘러 들어갔다.
이만하면 드라마로서 갖출 것은 다 갖춘 셈이다. 권력-주먹-돈, 여자만 빠졌나. 하지만 매일 밤 강남의 유흥가에선 질펀한 술자리가 벌어졌다니 그 부분인들 빠졌겠는가. 또 정녕 하고 싶지 않은 말이 있다. 그러나 이 사건을 말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다. 주연 조연 가릴 것 없이 몽땅 특정지역 출신이라는 점이다. 어쩌다 그런 못된 자들이 기개 바르고 고귀한 예술혼이 살아 숨쉬던 그 예향의 이미지를 망가뜨렸는가. 정말 개탄할 일이다.
이제 총정리를 해보자. ‘이용호 사건’은 무엇인가. 역대 정권에서 힘센 기관들이 유령처럼 나타나 몽땅 출연한 초대형, 권력형, 돈 잔치 드라마! 그렇다. 국민들로선 결코 보고 싶지 않은 드라마다. 이 드라마가 목하 공연된 책임은 그렇다면 누구에게 있는가. 옛날 임금은 가뭄이 들어도 "과인이 부덕한 탓"이라고 했다던가. 민초들의 마음은 그저 우울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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