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
▶ (마이클 루빈, 워싱턴 중동문제 연구소 연구원/뉴 리퍼블릭 기고)
2000년 봄 나는 이례적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자유롭게 여행한 적이 있다. 탈레반은 외국인 방문객을 철저히 감시하는 게 관례다. 언론인들은 수도 카불의 과거 인터콘티넨탈 호텔 건물에 수용돼 정부가 제공한 통역과 가이드를 쓰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나만은 예외였다. 나는 턱수염을 길게 길렀고 대다수 아프간 사람들이 이해하는 페르샤 말을 어느 정도 구사할 수 있었다.
어느 날 아침 나는 무작정 호텔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1주일 정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교사와 경찰, 상인과 실업자, 그리고 탈레반 인사들을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그 결과 뜻밖의 사실을 알아냈다. 그것은 탈레반이 허약하다는 점이다. 그들은 군사적 능력도, 국민의 지지도, 오랜 공격을 견딜 내부적 결속력도 지니고 있지 못하다.
많은 미국인들은 90년의 사담이나 99년의 밀로셰비치와는 달리 탈레반이 전국을 장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을 잊고 있다. 지난 9일 아메드 마수드의 암살에도 불구하고 아프간 북동부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고 있는 북부 동맹은 탈레반의 강력한 라이벌이다. 11일 테러사건이 일난 직후 그들을 카불을 포격했다. 소련군에게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유일한 군사조직인 북부 동맹은 가장 전투 경험이 많고 가장 충성스런 전사들을 갖고 있다는 것이 아프간에서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탈레반이 오사마 빈 라덴을 비호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도 북부 동맹 때문이다. 빈 라덴은 정부군과는 달리 어떤 일이 있어도 도망가지 않을 700명의 중무장한 병력을 갖고 있다. 아프간 정부군이 전투 경험이 없는 이유는 탈레반이 전쟁을 해 아프간을 장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탈레반은 1994년 파키스탄 정보국의 도움을 받아 칸다하 전투에서 승리했다. 그러나 그 다음 승리는 대부분 지역 군벌들에게 요직을 보장해 주고 영토를 인수받는 형식이었다. 나는 1997년 아프간 북부의 발크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있었는데 탈레반이 진입해 왔다. 탈레반은 충성을 맹세하면 자리를 보장해 주겠다며 인근 군사령관을 회유해 총 한방 쏘지 않고 무혈 입성했다.
군벌들이 쉽게 굴복한 이유는 탈레반이 오랜 전쟁에 시달린 국민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쟁 기간에 수도 카불에서 잘라라바드로 가는 도로는 10여명의 군벌들이 자리잡고 앉아 강도와 살인, 강간을 일삼고 있었다. 탈레반은 이런 혼란을 종식시키겠다고 약속해 국민의 지지를 얻었다. 한 상인은 “회교도 학생들이 나쁜 짓을 하면 얼마나 하랴는 생각으로 이들을 지지했다”고 말했다.
그 후 5년이 지난 지금까지 탈레반은 내전을 종식시키지도 못했고 시민들의 안전을 확보하지도 못했다. 카불 주민들은 탈레반이 밤에 시민들의 집에 들어와 평생 모은 재산을 털어 간다고 밝혔다. 작년에는 탈레반 경호원들이 시장 환전소를 털어 수십만달러를 훔쳐간 일도 있다고 한다. 이런 행동으로 탈레반의 인기는 급속히 떨어지고 있다.
정치적 환멸과 함께 인종갈등도 악화되고 있다. 탈레반은 대부분 아프간의 38%를 차지하고 있는 푸시툰 족이다. 이들의 급진적 회교 해석은 이 부족의 경전인 푸시툰왈리의 영향을 크게 받은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프간 북서부와 카불 주민의 대다수는 페르샤의 방언을 쓴다. 페르샤어 사용자들은 친이란적이며 수도 카불은 2세기에 걸친 유럽과의 접촉으로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도시다. 탈레반이 카불을 일부러 가혹하게 취급하고 있는 이유의 하나도 그것이다.
어느 날 카불 시장에서 상인과 차를 마시고 있는데 탈레반이 출동해 사람들을 모두 모스크로 잡아갔다. 이 상인은 조용히 셔터를 닫고 “못된 파키스탄 놈들”하고 욕을 했다. 카불의 학생들은 어른을 알아보는데 이 푸시툰족들은 건방지기 짝이 없다는 것이었다.
탈레반 자체도 분열돼 있다. 관계자들은 탈레반의 10%만이 정신적 지도자의 물라 오마르에게 충성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다른 30%는 모하메드 당시의 이슬람으로 돌아가자는 그의 주장에 공감은 하면서도 타협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나머지 60%는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따르는 체 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탈레반 자체 사정이 그 정도니 절대 다수가 탈레반과는 상관없는 아프간 주민들의 생각이야 말할 것도 없다.
지난 수년간 반탈레반 운동이 거세지고 있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2000년 2월 탈레반의 본거지인 코스트에서 무장한 지역 주민들이 봉기를 일으켰다. 그 지역 출신이 아닌 인물을 주지사로 앉히려던 탈레반의 결정이 주민들의 분노를 산 것이다. 탈레반은 신속히 다른 인물로 교체했다. 탈레반은 잘라라바드에서도 건방지다고 정평이 난 주지사를 해임함으로써 그와 비슷한 사태가 발생하는 것을 막았다.
탈레반이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키스탄 덕이다. 2000년 아프간은 전 세계 아편의 4분의3을 생산했다. 그중 상당수가 파키스탄과 이란, 타지키스탄으로 수출됐다. 파키스탄을 통해 들어오는 밀무역도 아프간의 젖줄이다. 파키스탄의 목재가 아프간을 거쳐 사우디로 넘어가고 있다. 탈레반은 파키스탄 정보국으로부터 무기와 자금을 지원 받고 있다. 파키스탄은 이들이 푸시툰족이 다수인 파키스탄 북서부 분리운동을 부추기지 않는 대가로 탈레반을 돕고 있다.
그러나 이제 파키스탄은 탈레반에 대한 지원을 중단하고 국경을 봉쇄하며 미국에 영공을 개방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될 경우 탈레반은 약화될 것이다. 미국의 대규모 공습은 이를 가속화시킬 것이며 북부 동맹은 카불로 진격할지도 모른다.
99년 미국이 베오그라드를 폭격해 밀로셰비치를 망신시키자 유고 시민들은 그를 축출했다. 91년 미국이 바그다드를 박살내자 쿠르드족과 시아파 회교도들이 들고일어났다. 미국이 이들을 저버리지만 않았던들 이들은 사담을 무너뜨렸을 것이다. 역사가 반드시 되풀이되는 것은 아니지만 탈레반은 이들 두 정권보다 오히려 더 약하다. 그리고 이들을 축출하는 것은 밀로셰비치에 못지 않게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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