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천사와 악마의 두 얼굴이다.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인간은 보다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지금 우리가 별 생각없이 사용하고 있는 각종 이기(利器)는 문명의 산물이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주택, 맛과 영양분을 고루 갖춘 음식, 멋과 실용성을 겸비한 의복 등이 모두 문명의 진화 덕이다. 이뿐이 아니다. 전화, 컴퓨터, 자동차, 선박, 비행기 등 수많은 편의 수단도 문명이 가져다 준 큰 선물이다.
각종 편의 수단이 우리에게 준 혜택은 엄청나다. 멀리 되돌아 볼 필요도 없다. 한인들이 미주 지역으로 처음 이민온 20세기 초만해도 ‘호랑이 담배먹던’ 시절같다는 느낌이 든다. 당시 초창기 이민자들은 배를 이용, 몇 달이 걸려서야 하와이 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민이 본격화한 20세기 중반만해도 기간만 줄였을 뿐 역시 여객선으로 바다를 건너야 했다. 이제는 몇 달의 거리를 몇 시간으로 줄였다. 여객기 승무원의 친절한 서비스를 받고 영화를 한편 보다보면 미국의 어느 공항에서건 내릴 수 있다.
성미 급한 현대인들은 10여 시간의 비행도 길다고 불평한다. 항공기 생산업체는 초음속 여객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불과 얼마 뒤면 서울과 뉴욕은 서너시간만에 주파하는 여객기가 탄생할 것이다.
교통과 통신 수단의 발달은 인간에게 보다 많은 경험과 지식도 갖게 한다. 예전 같았으면 일생동안 한번도 가보지 못할 곳을 여러 군데 여행할 수 있게 해준다. 지식과 정보는 질과 양적으로 엄청나게 증가하고 개선됐다. 몇 년전이 다르고 며칠이 다르고 심지어는 몇 시간이 다를 정도로 정보는 양산된다. 교통 및 통신 수단의 발달은 가족, 친지들과의 접촉도 대폭 늘여주었다. 이제는 아무리 먼 거리에 떨어져 있어도 상대방의 음성을 들으며 안부를 확인할 수 있다.
이같은 문명의 이기는 인간에게 단순히 편안함만 안겨 주는 게 아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 동굴 속 맨땅에서 뒹구는 것보다는 현대식 주거 공간에서의 삶이 더욱 값져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제대로 된 의상을 입고 알맞게 조리된 음식을 음미하는 것은 동식물을 재료로 한 몸가리개를 걸친 채 피가 뚝뚝 떨어지는 날고기를 힘겹게 뜯는 행위보다 귀하게 보인다. 각종 현대식 공간에서 공연음악에 빠지거나 예술작품을 감상하는 것 역시 인간이 존귀한 존재임을 확인시켜 준다. 이 모든 것이 문명이란 천사가 준 혜택이다.
그러나 문명은 악마의 얼굴도 보여준다. 문명의 악마성은 가공할 각종 무기들에서 나타난다. 지하자원을 대량 채굴하기 위해 발명된 다이너마이트는 본래 용도보다는 인간을 살상하는데 더욱 자주 이용되고 있다. 인류의 에너지난을 해결할 목적으로 연구, 개발된 핵은 인류를 멸망으로까지 몰고갈 가공할 무기로 돌변했다. 현대인의 머리속에서 항상 맴돌고 있는 공포와 불안감은 상당 부분 핵폭탄에서 비롯된다.
살상용으로 만들어진 무기만이 인간을 재앙에 빠뜨리지는 않는다. 월드트레이드 센터, 펜타곤 등의 테러 참사는 각종 편의 수단 역시 인간을 단숨에 희생시키는 도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승객 수송용인 여객기가 전투기보다 더욱 위협적인 공격 무기로 변한 현실도 똑똑히 목격했다.
그러나 문제는 문명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를 생산, 이용하는 인간에게 있다. 문명의 이기를 인류의 복지 향상보다는 사악한 목적에 활용하려는 인간이 있는 것이 문제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스스로를 반성해보아야 한다. 나의 마음속에도 사악함이나 남의 불행을 바라는 마음이 자라고 있지나 않은지 되새겨야 한다. 더불어 자녀들이 모든 사물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갖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이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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