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상 최악의 테러가 발생한 지 열흘이 지났건만 희생자 유가족은 물론 전 미국인이 느끼는 충격과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함대를 파견, 본격적인 전쟁 태세에 들어갔으며 미 국민들도 이번만은 얼마나 시간이 걸리건, 어떤 희생을 감수하건 천인 공노할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들을 반드시 응징해야 한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들이 이와 관련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아직도 일부 한인들은 일련의 사태가 우리 일이 아니라 남의 나라 일인 것 같은 생각을 갖고 있다. 이번 테러 사건은 미국과 아랍계간의 문제지 한인들이야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사람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참사가 벌어지던 날 수많은 미국인 자원 봉사자들이 음식을 장만해 소방대원들에게 대접하고 너도나도 헌혈을 하겠다고 적십자사 앞에 늘어선 광경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그러나 미국 TV에 비친 면면 가운데 한인들의 얼굴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LA에서도 단체장과 교계를 중심으로 헌혈과 성금 보내기 운동이 전개되고 있지만 일반 한인들의 자발적 참여는 미흡하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얘기다.
지금 미국에는 200만에 달하는 한인들이 살고 있다. 태평양을 건너온 이유는 저마다 다르겠지만 모두가 ‘보다 나은 삶’을 찾아 미국 땅을 밟은 점에는 차이가 없을 것이다. 직장을 다니며 혹은 비즈니스를 일구며 많은 한인들은 물질적으로 안락한 삶을 누리고 있다. 물론 그것은 각자가 땀을 흘린 대가이지만 땀의 열매를 본인이 거둘 수 있도록 보장해주는 미국 체제의 덕이기도 함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싸움은 ‘문명간의 충돌’이 아니라 ‘문명과 야만과의 전쟁’이다. 회교는 유태교, 기독교와 함께 유일신을 신봉하는 세계 3대 종교의 하나이다. 코란의 첫마디는 ‘알라는 정의롭고 자비롭다’는 것이다. 알라의 메신저인 마호멧은 여성과 노약자, 어린 아이를 죽이는 것은 물론 적이라도 무기를 버리고 항복한 군인을 살해하는 것을 엄격히 금지했다. 무고한 승객들이 탄 항공기를 살인무기로 이용해 직장에 출근해 새 하루를 시작하려던 한 아이의 아버지와 어머니 수천명의 목숨을 앗아간 자들은 회교도가 아니라 회교의 이름으로 위장한 살인마들일 뿐이다.
이번 싸움에서 한인들이 어느 편에 서야 할 지는 자명하다. 흔히 미국적 가치로 불리는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자유와 평등은 모두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의 생명과 존엄에 대한 경외는 동서양 인류의 스승들이 공통적으로 도달한 궁극적 가치이다.
반드시 총칼을 들고 전선에 서는 것만이 야만과의 싸움을 돕는 길은 아니다. 한인 모두가 집과 직장에 성조기를 꽂고 자원봉사를 하며 헌혈과 성금을 보내는 작은 정성 하나 하나가 모두 문명을 악의 세력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노력의 한 고리이다. 한인들의 이런 모습은 이민자를 불신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일부 미국인의 편견을 바로잡는데도 기여할 것이다.
미국에 이민 와 시민권자가 된 외국인이 본토박이로부터 애국심을 의심받자 “나는 스스로 미국인 되기를 선택했지만 당신들은 미국에서 태어난 것 외에 무슨 일을 했느냐”고 반문했다는 일화가 있다. 한인들은 자기 발로 미국에 살기 위해 바다를 건너왔다. 첫 이민자가 발을 디딘 것은 이제 100년을 바라보며 본격적인 이민이 시작된 지도 30년이 넘는다. 언제까지나 손님으로만 지낼 수는 없다. 미국이 위기에 처했을 때 돕기 위해 힘을 모으는 것은 주인 대접을 받기 위해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번 사태가 한인 커뮤니티가 미국 사회의 객이 아니라 주인으로 굳건히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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