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유력한 대선 후보로 떠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던 워싱턴의 정치스타 폴 송가스 연방상원의원이 90년대 초 암진단을 받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어쩔 수 없이 은퇴는 선언했지만 야망을 갖고 있던 그로서는 실망이 클 수밖에 없는 일.
좌절감에 빠져 있던 그에게 한 친구가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친구는 "임종을 맞는 자리에서 ‘내가 그때 사무실에서 더 일했어야 하는데…’ 하고 후회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고 말했다. 죽음과 싸워야 하는 상황 앞에서 그 사람의 비즈니스와 커리어가 무슨 의미를 지닐까. 송가스 의원은 결국 은퇴 발표 후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일과 삶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일이란 것은 삶의 일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종종 일이 삶의 전부인양 여기며 살아간다. 송가스 의원의 친구는 정치인 생활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던 그에게 이 사실을 일깨워준 것이다.
비극과 참사는 분명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주위 사람들의 예기치 않은 죽음은 남은 자들에게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 주는가. 지난주 미증유의 테러참사를 지켜본 미국인들은 모두가 같은 아픔을 느꼈다.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하는데 한마음이 돼 나서고 있다.
비극은 없어야 하고 피할 수만 있으면 피해야 한다. 그러나 비극에도 순기능은 있다. 개인적 비극이든 국가적인 비극이든 마찬가지이다. 그것은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던 우리들에게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비극이 닥쳐올 때 우리는 자신들의 유한성과 한계를 깨닫게 된다. 또 삶과 관련한 여러 교훈을 얻게 된다. 테러공격으로 어떤 사람들은 죽었고 어떤 사람들은 살았다. 월드 트레이드센터 안에 있다가 황급히 대피해 목숨을 건진 한 여성이 CNN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고층에서 일하는 이 여성은 테러 공격이 난 직후 동료들과 함께 곧 바로 사무실을 빠져 나와 계단을 이용해 내려오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 왔을 때 한 여성 동료가 "사무실에 지갑을 두고 왔다"며 다시 사무실로 올라가더라는 것이다.
결국 이 여성은 미처 건물을 빠져 나오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다. 지갑 안의 크레딧카드와 목숨을 바꾼 어리석은 결과가 됐다.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했을 때 뒤를 돌아보다 죽음을 자초한 것이다.
대통령의 부친인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은 언제가 한 연설에서 이렇게 회고한 바 있다. "구 소련이 붕괴한 후 나는 사람들로부터 ‘미국의 적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미국만이 수퍼파워로 남아 있는데 과연 누가 미국을 위협하는가 라는 의문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적은 예측할 수 없는 미래(unpredictability)와 불안정성(instability)이라고."
그의 우려대로 미국은 전혀 예측치 못한 테러사태로 국가적 비극을 겪고 있다. 국제관계에서 뿐 아니라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불확실한 미래는 항상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불확실한 미래, 예측할 수 없는 잠시 앞보다 더 큰 적은 이런 냉엄한 사실을 떠올리지 못하도록 하는 망각이다. 이를 항상 의식하면서 살아갈 수만 있다 해도 우리 삶의 모습은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하이재킹을 당한 후 절박한 상황에서 사랑하는 남편, 아내, 그리고 가족들과 최후의 통화를 나누었던 비운의 탑승객들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지금에 감사할 수 있고 겸손해 질 수 있다.
뉴스위크에 격주로 칼럼을 쓰고 있는 인기 여류소설가 앤나 퀸들린은 지난해 펴낸 한 작은 책에서 "내가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인 바 인간이 유한성을 깨닫는 것은 신이 우리에게 준 가장 위대한 선물"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 선물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히 느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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