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우리들에게 일어난 테러사건을 말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들의 착잡한 마음과 생각을 말로 구사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평상시처럼 화요일 날 나는 아침 7시에 일어났다. 아직 잠이 덜 깬 채 부엌으로 가서 라디오를 틀었다. 뉴욕에 있는 세계무역센터를 비행기가 폭격하였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아나운서가 농담하는 줄 알았다. 잠시 후 그 뉴스가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다시 잠자리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다시 깨어나서 다른 화요일을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라디오 앞에 선 채 계속 뉴스를 듣고 있었다. 아내가 일어나서 부엌으로 들어오자 그 사실을 아내에게 말했다. "정말이에요?" 하고 물었다. 우리는 부엌 라디오 앞에 서서 함께 뉴스를 들었다.
한시간도 더 늦게 출근하여 사무실에 들어서자 먼저 출근한 동료가 텔리비전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인사를 하였다. 뉴스를 보고 있던 동료의 얼굴에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우리는 말없이 텔리비전을 함께 보았다. 얼마 후 나는 일을 할 수 없어서 퇴근하고 말았다.
다음 며칠동안 나는 모든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멍멍하고 아팠다. 나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있었던 비슷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와 조금 달랐다. 왜냐하면 온 국민이 동시에 충격을 받아 감각이 마비된 채 아픔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식구 네 명이 위기에 대처하는 모습이 각기 달랐다. 수요일 날 나는 성조기를 꺼내어 2층 발코니 난간에 달았다. 텔리비전을 켰다가 몇 분 후에 꺼버리고 다시 켰다고 끄곤 하였다. 참혹한 장면이 되풀이되는 것을 볼 때마다 견딜 수 없는 아픔 때문에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매사에 진지한 내성적인 큰아들은 철야기도를 하면서 침묵을 지키었다. 명랑하고 외향적 작은아들은 헌혈 클리닉으로 달려갔다. 작은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주사바늘을 무서워해서 예방주사를 맞을 때 주사기만 보고도 소리내어 울던 아이다.
나의 한인 아내는 텔리비전을 보고, 신문을 읽고, 교회에 가서 설교를 들었다. 아내는 진지한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27년 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처음으로 자신이 미국시민이라고 정신적으로 인정하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참으로 이상한 시기에 우리는 살고 있다.
목요일 날, 이번 여름에 르완다에서 사귄 두 명의 대학생들로부터 전자 메일을 받았다. 그들은 애도와 위로의 메시지를 남겨두었다. 겨우 몇달 전에 나는 전쟁으로 찢기고 상처받은 그 아프리카 나라에 평화와 화해의 말씀을 가지고 지구상 반대쪽에 있는 먼 곳으로 그들을 위로하러 갔었다. 르완다 친구들이 평화와 화해의 말씀으로 나를 위로할 것을 상상이나 하였을까?
다른 나라에서 전쟁이나 사고가 있을 때, 미디어는 미국사람이 몇명 죽었나를 꼭 보도한다. "필리핀에서 호텔 화재가 있었는데 100명이 죽었다. 그 중에 3명이 미국사람이다" "이집트에서 비행기 추락사고로 승객들이 모두 죽었다. 그 중에 미국사람이 한 명이다"라는 식이다. 신문을 읽을 때 가끔 이런 생각이 들곤 하였다. 무슨 소리인가? 미국사람의 생명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생명보다 더 귀하다는 말인가? 미국사람이 중요하기 때문에 따로 보도를 하여야 하는가?
어제 저녁에 신문을 읽고 있는데 맞은 편에 앉아 한국신문을 읽고 있던 아내가 뉴욕 참사 희생자 중에 한국사람이 한 명 끼어 있다고, 미국신문에서 읽을 수 없는 뉴스를 말했다. 미국신문이나 한국신문이나 다를 바가 없다. 신문은 자기 나라 사람이 몇명 죽었나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었다. 이번에는 미국사람이 뉴스의 반대쪽에 서있을 뿐이다.
테러 사건의 뉴스는 처참하고 참혹하다. "인간의 영혼을 시험하는 어려운 시간이다"라고 미국 독립전쟁 당시의 자유사상가 토마스 페인은 말했다. 맞다. 우리는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려운 위기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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