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
▶ 조광동 <본보 시카고지사 편집국장>
저들은 악마인가? 나는 요즘 이 질문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다. 세계무역센터가 돌진하는 비행기 자살로 불구름 속에 힘없이 주저앉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떨렸다. 악마가 아니고서는 어떻게 저토록 잔혹한 반인륜적 만행을 감행할 수 있을까. 부시 대통령은 "악마를 보았다"고 비장한 심경을 토로했다. 저들 테러리스트들은 악마인가?
그러나 내 마음의 대답은 "저들은 악마가 아닐지도 모른다"였다. 미국에서는 악마 얼굴을 하고 있고 아랍 세계에서는 순교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미국이 비탄에 잠겨있을 때, 팔레스타인인들은 두 주먹을 쥐면서 환호했다. 이들에게는 자살비행기를 몰고 무역센터로 뛰어든 테러 가미가제들은 영웅이 될 것이다.
테러리스트들은 악마가 되는 길을 택했다. 자신들이 믿는 신을 위해서, 자신들의 신념,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악마의 방법을 택했다. 이들이 악마가 되는 가장 극적인 요소는 증오와 광신이다. 수천명의 무고한 시민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참극 앞에 박수를 칠 수 있는 사람들은 무서운 증오심에 불타는 사람들이다. 끔찍한 것은, 이 지구상에 참혹한 맨해턴 비극 앞에서 박수를 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겉으로는 마지못해서 애도를 표시하지만, 숨어서 쾌재를 부르는 악마의 동조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간이 광신과 증오에 빠지면 서슴없이 악마의 모습을 택할 수 있다. 세계무역센터를 향한 비행기 자살은 중동의 문제가 얼마나 깊은 미움의 뿌리를 가지고 있는지를 웅변해 주고 있다. 인간의 마음속에 자라는 증오의 뿌리는 계속해 악마의 행동을 부채질하고 있다. 엄청난 비극을 당한 미국은 충격과 분노에 불타고 있다. 테러 주모자와 이들을 돕는 세력을 응징하고, 세계에 숨은 테러 조직을 분쇄하고, 테러 안보를 철저히 해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하고 잠자던 애국심이 깨어나고 있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아무리 테러 세력을 응징하고 테러 안보를 철통같이 해도 어느 한곳에서 인간의 증오심이 자라는 한 테러는 막을 수가 없다. 증오심은 모든 틈새를 뚫고 들어가는 무서운 힘을 가졌다. 테러를 강력하게 단속하면 할수록 방법은 더욱 교묘해 지고, 거기에 첨단과학이 동원될 경우 테러는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가공할 비극을 잉태할 것이다. 비행기 자살로 110층 건물의 허리를 두동강 낼지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테러범들 손에 세균무기 가방과 핵무기 가방이 들려지고, 테러범들이 미국의 핵발전소에 폭탄자살을 한다고 할 때 그 재앙은 상상을 초월하게 된다. 테러의 참극을 방지하는 길은 증오의 뿌리에 화해와 이해의 물을 주는 길밖에 없다.
아랍인들이 미국에 가지는 증오의 뿌리는 문명이 다른 데서 시작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이슬람 문명을 오염시킨다는 불안과 저항감이 있고, 거기에 미국의 오만한 패권주의가 타문화와 타인종을 무시한다는 분노가 있다. 미국의 번영에 대한 질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아랍인들의 미움은 미국의 중동정책에 있다. 천년을 살던 땅을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팔레스타인들의 분노는 증오심의 씨앗을 심었고,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교만은 아랍인들의 미움에 기름을 부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지지하는 한 중동의 평화는 가능치 않을 것이고, 미국과 이스라엘을 향한 참혹한 테러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명분은 중동 석유를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오일 안정은 이스라엘을 지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미국이 이스라엘을 지원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미국을 움직이는 유대인들 때문이다. 미국은 이스라엘을 보호하기 위해 10억 아랍인들을 적으로 만들고 있다. 맹목적인 이스라엘 지원 때문에 미국이 치르는 대가가 너무나 비싸지만 미국의 환경은 이 본질적인 문제를 거론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무역센터 참사는 미국 의식이 눈을 떠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미국이 발상의 전환을 하지 않으면 오늘의 비극은 더 큰 인류의 재앙을 부를 것이다. 왜, 수많은 인재와 선량한 시민들이 악마가 된 테러범들의 증오와 광신에 무고한 희생을 당했는지를 미국은 심각하게 물어야 한다. 아랍인들 가슴에 자라고 있는 증오심을 치유해야 한다. 이 증오심의 뿌리를 자르지 못할 때 서구와 이슬람은 새뮤얼 헌팅턴이 말한 ‘문명의 충돌’이라는 대재앙을 향해 마주보며 달리는 열차가 될 것이다.
증오심이 자라면 선량한 인간도 악마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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