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기억하는 이가 별로 없지만 ‘7년 전쟁’(1756~1763)은 세계 역사의 물줄기를 갈라놓은 중요한 사건이다. 스페인보다 한발 늦게 식민지 경쟁에 뛰어들었으나 ‘무적함대’를 물리치고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던 영국은 이 기간 동안 역시 후발주자지만 막 피어나기 시작한 프랑스와 세계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한 판 싸움을 벌인다.
유럽은 물론 북미주와 인도등 세계 곳곳에서 벌어져 ‘최초의 세계 대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전쟁에서 영국은 프랑스를 결정적으로 제압하고 근대사의 주역으로 등장한다. 영국은 이 전쟁에서 이긴 후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할 때까지 한번도 세계 최강의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 ‘영국은 파도를 지배한다’(Britannia rules the waves),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며 19세기가 ‘영국의 평화’(Pax Britannica) 시대로 불리게 된 것도 ‘7년 전쟁’에서의 승리 덕이다. 영국이 오랜 전쟁으로 인한 전비를 보충하려고 북미주 13개 식민지에 과도한 세금을 매기려 하다 미 독립전쟁을 촉발시킨 점을 감안하면 이 전쟁의 의미는 이래저래 커질 수밖에 없다.
흥미로운 것은 전쟁이 터진 시점이다. 18세기초 유럽은 장기간의 불황에 휩싸여 있었다. 1720년대 ‘남양거품’(South Sea Bubble)과 ‘미시시피 계획’(Mississippi Scheme)이란 이름으로 영국과 프랑스에서 일기 시작한 주식 투기 열기는 당시로서는 사상 유례 없는 주가 폭락과 대공황을 동반하며 두 나라의 경제를 근본부터 흔들었다. 이 두 나라가 이때 입은 상처가 아무는 데는 60년 이상 걸린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미 독립전쟁이 끝난 해가 1781년이니까 불황과 동시에 전쟁도 끝난 셈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전쟁과 불황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1859년 극심한 불황이 밀어닥친 후 불과 2년후 미 역사상 최대의 참사인 남북전쟁이 터졌다. 4년간 계속된 남북 전쟁은 이 기간 동안 죽은 미국인 숫자가 독립전쟁과 제1차 대전, 제2차 대전, 월남전 때 죽은 미국인 수를 합친 것보다도 많은 참혹한 전쟁이었다.
1914년 제1차 대전도 유럽과 미국이 불황에 휩싸였을 때 발발했으며 1929년 주가 폭락과 함께 온 대공황은 제2차 대전이 터지는 원인을 제공했다. 대공황만 없었더라면 히틀러는 가난한 예술가로 평생을 마쳤을 가능성이 높다. 가까이는 1966~1968년 주가 폭락과 경기 후퇴와 함께 미국의 월남전 개입이 가속화됐고 1990년 불황이 닥치면서 미국이 걸프전에 뛰어들었다.
이런 역사적 예를 살펴보면 경기가 나빠질수록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맞는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전쟁이 일어났다고 경기가 반드시 나빠지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미국이 대공황의 깊은 수렁에서 본격적으로 벗어나기 시작한 것은 1941년 일본이 진주만을 공격하면서부터다. 대규모 군비산업을 일으키며 넘치던 실업자들을 흡수하고 젊은이들을 전선으로 내보내면서 좀처럼 풀리지 않던 실업 문제가 한꺼번에 해결된 것이다. 50년대 한국전이나 60년대 월남전 때도 전쟁은 한창이었지만 미국 경기는 좋았다.
지난 주 뉴욕과 워싱턴 DC에서 벌어진 사상 최악의 테러로 미국이 불황에 진입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테러 사건이 일어났다고 반드시 경기가 나빠지는 것은 아니다. 1993년에도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테러범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미국 경기에는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다. 당시까지 최악이던 1996년의 오클라호마 테러 사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그 후 수년간 미국 경기는 사상 유례 없는 호황을 구가했다.
이번만은 규모나 질에 있어서 다르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경기는 한가지 사건이 아니라 복잡한 요소에 의해 좌우된다. 테러가 아니라 전쟁이 나도 경우에 따라서는 경기를 부양하는 호재로 작용할 수도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경기가 하강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 한 건의 테러가 경기 흐름을 결정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속단이다.
kyumi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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