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심장부가 이렇게 쉽게 공격당할 수 있단 말인가. 11일 뉴욕의 월드트레이드센터가 항공기 테러에 의해 공격받아 붕괴되고, 워싱턴의 국방부 본부의 펜타곤 건물이 테러리스트의 공격으로 무너졌다. 주요도시가 동시다발의 공격을 받고 있는데도, 세계 최상의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는 미국은 속수무책이었다.
플로리다의 한 초등학교를 방문중이던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가 재난을 선언했다. 뉴욕의 병원들은 수많은 사상자로 만원이고, 공항과 지하철을 폐쇄하고, 주요 교통로를 차단하는 바람에 맨해탄은 아마겟돈을 연상케 하는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미국의 정치인들과 언론들은 이번 사건을 ‘남북전쟁 이후 초유의 재난’, 또는 ‘제2의 진주만 공격’이라고 분노했다. 인류 역사상 이처럼 테러수단을 동원해 전면전을 벌인 사건은 유례가 없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에 망명중인 회교 원리주의자 오사마 빈 라덴의 소행으로 간주되는 이번 테러 행위는 미국은 물론 전세계를 경악케 했다. 한국 정부도 국가안보회의를 소집하고, 전군에 비상경계령을 내렸다. 테러 공격이 어디까지 계속될지, 지구촌 평화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는 불안한 시기를 살고 있는 것이다.
60년전 진주만 공격은 태평양의 섬에서 일어난데 비해 이번 공격은 미국 본토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미국인들의 분노와 불안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부시 대통령은 보복을 다짐하고 있다. 미국의 대응이 세계질서에 어떤 영향을 줄른지는 현재로선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번 사건이 국제 관계와 세계 경제에 어떤 파장을 줄지를 몇가지로 예측해볼 수 있다.
첫째, 미국 보수파들의 목소리가 높아질 것이라는 점이다. 공화당의 부시 행정부는 테러리스트의 공격을 저지한다는 명분으로 막대한 예산을 들여 국가미사일 방위(NMD) 계획을 추진해왔다. 그동안 미국의 미사일 계획에 대해 유럽과 중국, 러시아가 이에 반대하고 있고, 미국내 민주당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이번 사건으로 인해 부시 행정부는 명분을 얻게 됐다.
미국의 보수화는 한반도의 긴장을 완화하는데 역기류를 조성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아직도 북한을 테러리스트 국가로 묶어 놓고 있다. 미국은 심장부가 공격당하고 있는 마당에 북한의 미사일 보유에 대한 견제를 강화하고, 그렇게 되면 모처럼 재개되고 있는 남북한 사이의 공식접촉에도 장애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둘째, 세계 금융시장에 패닉이 올 가능성이다. 미국 금융회사들이 입주해 있는 월드트레이드 센터가 공격받은 날 뉴욕 증시는 개장하지 않았지만, 오후장이 열리고 있던 유럽증시는 폭락했다. 세계 총생산의 30%를 차지하는 미국 경제의 심장부가 테러 공격을 당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미국은 물론 세계 금융시장을 심리적 공황에 빠뜨리고 있다.
또 미국은 테러 용의자를 이슬람 국가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에 중동의 산유국과 긴장관계가 깊어지면 모처럼 내려가고 있던 국제유가가 다시 오를 가능성이 있다. 지난 70년대초 오일쇼크 이후 처음으로 미국과 유럽, 일본이 동시에 제로 성장 또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는 마당에 기름값마저 상승할 경우 세계 경제는 침체의 길로 빠져들 것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은 미국을 비롯, 세계 경제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미국 경제가 이번 일로 흔들리지 않을까 걱정이다.
뉴욕타임스지의 컬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그의 저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서 미국이 사우디의 부자 빈 라덴에 의해 공격받을 가능성을 예측한 바 있다. 그는 현대의 사회가 국가 중심에서 개인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과거에 미국과 소련이 핵무기 경쟁을 했다면, 지금은 개인도 핵무기를 보유해서 거대한 미국에 대립할 수 있게 됐다고 경고했다.
20세기초 영국이 세계 주도권을 장악했을 때도 미국이 가장 안전한 나라로 간주됐다. 그래서 유럽 국가들이 금괴를 미국으로 옮겨놓았고, 그 금이 뉴욕 연방준비은행(FED) 지하에 보관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도 이젠 무한한 안전지대가 아니고, 언제 어디서라도 테러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위험에 놓이게 됐다. 21세기를 맞아 인류는 또다른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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