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정도 훨씬 지난 무렵이라고 생각하고 의사는 벽에 걸린 시계를 또 쳐다봤다. 이제 몇 분만 지나면 집으로 갈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고 시계를 봤건만 아직 1시가 못된 채 12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시계가 고장이 났나?" 싶어 손목시계를 다시 들여다봤다. 역시 12:30분! 그래도 30분만 무슨 큰 일이 없으면 집으로 갈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고단하고 지겨웠던 주말 당직도 견디어내는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인턴이라 경험도 별로 없는 이 병아리 의사를 황당하게 만드는 일들이 너무 자주 일어나는 게 바로 응급실 당직이었다. 주말 내내도 참았는데 30분을 더 못 참을까 하고 자신에게 자꾸 타이르지만 며칠째 잠이 밀린 탓인지 견디어 내기가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었다.
눈을 비비며 "커피라도 마셔야지! 집에 가는 길에 졸기나 하면 어쩌지!" 이렇게 혼자 생각하고 커피 있는 곳으로 가는 순간 문이 활짝 열리면서 "의사 선생님! 지금 차 사고로 생명이 위험한 환자가 들어 왔어요"라고 누군가 소리쳤다. 그는 거의 본능적으로 졸리고, 고단하다는 것은 다 잊은 듯 환자에게로 달려갔다. 의사는 차에 다친 아이를 보는 순간, 천만뜻밖에 의사답지 않게 "다른 의사를 불러야겠습니다. 저는 안 됩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면 그 의사는 왜 환자의 치료를 거절했을까?
이 질문은 필자가 대학원 학생들을 가르치는 강의시간에 썼던 사례이다. 독자들은 무엇이라고 답하실 것인지? 결론에서 답을 드리기로 하겠다.
영화는 어려서부터 매우 영특하였다. 그런데 영화는 그런 인정을 학교에 와서 제대로 받을 수가 있었다. 학교에서 인정받는다는 것은 어느 선생님보다는 늘 학교 성적이 우수하여, 자기 스스로의 인정이었다. 집에서는 아무리 좋은 점수를 받아와도 그리 반기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영화는 다른 공부도 잘했지만 물론 특히 수학과 과학에 관심이 많고 시험도 잘 봤다.
한 번은 수학시험을 자기 학교에서는 물론 전 교육구에서 제일 잘하여 전국대회에 나가게 됐다. 영화는 이 기쁜 소식을 전하려고 집에 빨리 왔는데 마침 집에는 아주머니가 혼자 계셨다. 그것이 무슨 대회인지 잘 모르는 아주머니에게 영화는 신나게 설명을 했다. "얘! 오빠 앞에서 그런 소리 말어! 이 집에서는 네가 맏아들로 태어났어야 되는데! 그리고 솔직히 말해 여자가 수학을 잘 해서 뭘해! 여자답지 않게 과학도 좋아한다며? 애! 이리 와 앤티가 머리나 예쁘게 빗겨 줄게! 너는 꼭 머슴애 같구나."
영화만이 아니라 누구나 "너는 왜 이리도 게으르니?" "너는 나를 닮아서 수학을 못하는구나" 등의 소리를 한 번이 아니고 수십번 듣고 나면 자기도 모르게 "나는 게으른 아이" "나는 수학을 못하는 아이"로 자신에게 낙인을 찍어 놓는다. 그러면 마치 자기 예언에 꼭 맞아떨어지는 격으로 그렇게 되어간다.
윌버그(Walberg, 1990) 연구를 보자. 고등학교 물리(physics) 시간이었다. 물리의 영재인 여학생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1)자신감이 없고 (2)질문이 있으면서도 잘 물어보지도 못하고 (3)의지하고 (4)소극적인 학생들이었다. "그들은 늘 선생님이나 남학생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는 여성의 입장을 지키려는데 더 정성을 쏟는 것 같았다.
또 다른 연구에도 비슷한 결과가 있다(Gallagher, Asner, Jenne, 1998, p. 52)). 그들의 연구는 중학교 상대로 12개 반에서 일어나는 일을 녹음하여 분석한 결과 반에서 토론이 있을 때 남자 학생들은 자신의 의견을 발표도 잘하고 또 자신의 의견이 선생님이나 반의 학생들과 다를 경우 반발과 질문을 많이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녹음분석 결과 남학생들이 여학생들보다 8배나 더 많았다는 것이다. 여학생들이 글로 써낸 숙제를 보면 남학생들보다 더 많이 알고, 여학생들의 의견이 맞는데도 불구하고 토론에 별로 참가를 안 했다고 했다.
또 다른 연구(Gallagher, 1997)에 따르면 반에서 발표력이 있는 학생과 가만히 앉아 듣기를 주로 하는 학생들의 차이를 연구한 것이다. 이 반은 생물학(biology) 시간이었는데 처음 연구는 발표를 많이 한 학생들과 발표가 별로 없는 학생들의 영재 테스트 점수를 비교해 봤다. 그 결과 발표력이 더 많이 한 학생들이 평균 39~42점이 높았다. 다음은 누가 더 발표력이 많았나 하는 연구인데 남학생이 여학생보다 더 많았다.
여기서 한국의 학교 분위기를 생각 안 할 수 없다. 한국에서 반에서 발표를 한 기억이 필자는 별로 없다. 조용히 앉아서 말 한마디도 안하고 선생님 말씀만 잘 듣고 칠판의 것을 잘 베껴서 시험점수가 좋으면 공부 잘하는 학생이지 않았나! 필자가 처음 미국에 와서 대학교 1학년 때 일이다. 한국에서는 별로 수학을 좋아하지도 않고 잘 하지도 못했었다. 그러나 미국 와서 첫 학기에는 다른 과목에 비해 수학을 잘 했다. 수학을 잘 했다는 것은 과장의 말이고, 과거 여학교 때 배운 것도 있고, 또 영어를 잘 몰라도 점수가 나오는 학과가 수학이었다. 처음에는 시험마다 100점을 받았는데 중간고사 점수에 c+를 받았다.
필자는 그저 어리벙벙해 있었지만, 룸메이트는 펄쩍 뛰면서 교수에게 따지러 가자는 것이다. 소위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한국 학생이라기보다는 교수에게 따진다는 것은 덤벼드는 것 같아 "나는 죽어도 못 간다"라고 했더니 나를 강제로 끌고 그 교수를 찾아갔다. 본인인 필자는 꿀 먹은 벙어리 신세이고 친구가 들고 간 시험지를 보이면서 따졌다. 모든 것을 다 듣고 있던 교수가 필자를 보고 하는 말이 "너 말할 줄 아니?"였다. 너무 기가 막혀서 멍하고 있는데 친구는 또 난리다. 그 교수는 시험은 A+인데 발표는 계속 F라서 C+로 정해졌다는 것이다.
애스틴의 연구(Astin, 1989)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는 여학생이건, 남학생이건 비슷하게 수학이나 과학을 잘 하는데 중학교에 가서 남학생이 수학과 과학을 여학생들을 훨씬 능가한다고 했다. 이것이 과연 남학생의 능력이 중학교 때부터 수학과 과학면에 급속도로 발달된다는 말일까? 혹은 부모들이 알게 모르게 딸들에게는 그런 분야를 잘 하는 것을 그리 달갑게 생각하지 않아서일까?
다른 연구(Sears, Maccoby, Levin, 1997)에 따르면, 한 집안의 형제라서 환경이 같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여자와 남자는 아주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의 연구 결과를 간단히 소개하면 아들이 이런 분야에 좀 잘하면, 격려와 박수(?)마저 받는데 여자가 중·고등학교 때쯤 되면 이런 분야에 탁월할 수가 없다고 한다. 이 연구에서 과학시간에 fire engine에 대해 물었더니, 남학생은 거의 100점이었는데 비해 여학생은 거의 틀렸다고 했다. 이것은 단순한 장난감에 불과했지만 그런 장난감마저 여자와 남자의 차이가 이렇게 난다는 말이다. 즉 부모들이 잠재의식적으로 자기도 모르게 남녀의 차별을 두고 기른다는 말이다.
●결론: 서론에 소개한 의사가 환자를 못 보겠다고 한 그 질문에 대해 필자의 반에서 1명을 빼놓고는 모두 그 의사가 피곤해서 그랬다고 답했다. 사실 정답은 그 의사는 여자였고, 응급실에 실려 온 환자는 자기 아들이었다. 필자의 학생 중에서 모두 의사가 여자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했다는 것이다.
털먼(Terman, 1992)에서 똑같이 영재인 여자와 남자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성취한 결과를 보면: 남자는 물리학자(physicist), 병리학자(physiologist), 의사, 심리학자, 해양 학자(oceanographer), 준장(brigadier general)등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을 하였다.
여자의 대부분은 결혼을 했다는 사실만 있다. 다만 소수의 여자는 시인, 작가, 저널리스트 등이 되었다.
딸과 아들을 가진 부모님들, 혹시 우리의 기대가 조금씩 자식들에 대한 기대가 다르지는 않는지? 또, "너는 우리 집 장남이니까!" 혹은 "너는 우리 집 막내이니까," 또 우리의 기대가 다르지나 않는지? 비록 잠재 의식이라 하더라도 알게 모르게 우리가 다르게 대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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