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미국이 분노에 떨고 있다. 청천벽력, 아니 공상 속의 비현실에서나 있을 수 있는 참담한 악몽의 시나리오가 현실임을 깨달으면서 전 미국은 새삼 분노로 들끓고 있는 것이다. 2001년 9월11일.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다. 민간 여객기 4대가 거의 동시에 납치됐다. 테러리스트들이 장악한 이 민간 여객기는 공격 무기로 바뀌었다. 그리고 곧 무차별 테러가 감행됐다. 세계무역센터 건물이, 펜타곤이 항공기 자살공격에 잇달아 화염에 싸이며 주저앉았다. 미국의 상징이 무너져 내린 것이다.
공포가 휩쓸면서 전 미국이 패닉상태에 빠졌다. 남편이, 아내가, 아빠가, 또 친지이고 이웃이기도 한 사람들, 정치와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민간인 수천명이 한 순간에 희생된 이 사상 최악의 참사를 목격하면서 전 미국은 한동안 공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얼마 후 악몽이 현실임을 깨닫는 순간부터 쇼크는 분노로 바뀌었다. 그리고 미국은 하나로 뭉쳤다. 한 목소리를 냈다. 그리고 분연히 일어섰다.
테러는 어떤 명분으로도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다. 더군다나 민간 여객기를 무기로 사용한 테러행위는 반인륜적 범죄이고 비인간화의 극치다. 테러는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상실한 범죄자가 저지르는 행위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어떤 명분으로든, 어떤 이데올로기로 덧입혀도 아내와 남편, 아버지와 아들, 딸 등 사랑하는 가족, 그 고귀한 인명을 희생시킬 때 그 행위는 결코 합리화 될 수 없다. 다만 악마의 저주일 뿐이다.
’사상 최악’으로 불려지는 막대한 인명 피해를 낸 이번 테러의 주모자와 배후세력은 반드시 색출해 내 응징해야 한다. 전 세계도 테러리스트들의 만행을 생생히 목격했다. 이번 테러는 ‘미국과 테러리즘과의 전투’라기보다는 ‘자유 민주세계와 테러리즘간의 전투’라는 점에서 세계 여론은 이를 굳건히 지지하고 있다고 본다. 문제는 누구를 상대로 보복을 할지, 어느 나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느냐다. 테러 발생 3일째를 맞아 워싱턴은 어느 정도 그 테두리를 설정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이번 테러공격을 ‘전쟁행위’로 규정했다.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은 전 미군에 대규모 보복공격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메시지를 띄웠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국제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을 이번 테러 행위의 배후로 공식 지명하고 나섰다. 이 잇단 움직임은 미국의 군사보복이 임박했다는 관측을 불러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려되는 것은 앞으로 있을 미국의 응징조치가 자칫 ‘문명 충돌’ 현상을 불러오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이렇게 될 경우 사태의 본말은 호도되고 보복이 보복을 부르는 상황에 반미감정만 확산되는 사태가 오지 말란 법도 없기 때문이다.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
반소수민족 정서 확산도 적지 아니 우려된다. 이번 테러가 아랍계 이슬람 원리주의자 소행으로 그 윤곽이 드러나면서 벌써부터 아랍계 미국인들에 대한 증오감이 고조되고 있다는 보도다. 분노는 곧잘 증오를 유발한다. 증오심이 팽배할 때 요구되는 것은 속죄양이다. 과거 진주만 기습시 일본계 미국인, 걸프전 때 아랍계 미국인들이 그렇다. 팽배한 증오감과 함께 속절없이 속죄양이 됐던 것이다.
미국의 상징인 ‘뉴욕 맨해턴에 우뚝 섰던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건물’은 무차별 테러로 무너져 내렸다. 그러나 ‘미국의 진정한 상징’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피부색과 민족을 초월한 자원봉사 정신. 그리고 다민족 사회 구성원으로서 미국인이 지닌 양식이 그 진정한 상징이다. 사상자보다 먼저 도착해 헌혈을 기다리는 사람,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구조작업에 뛰어든 소방대원 등, 이들이 미국이고 미국의 주인이다. 한인들도 이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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