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2돌 대하시리즈 <13> 중부편 - 오클라호마 (1)
▶ 집값싸고 생활비 저렴, 하이텍 유치에 적극
한인들은 모래바람 몰아치는 오클라호마의 황무지도 일궈냈다.
2000년 센서스 결과, 오클라호마의 한인 수는 총 5,704명으로 집계되어 있으나 현지 한인들은 유동 인구 등을 감안해 7,000여명은 족히 될 것으로 추산했다.
이들은 주도인 오클라호마시티를 중심으로 로튼의 ‘포트 실’(Fort Sill) 미 포병학교가 위치한 로튼(1시간반 거리)과 털사(2시간) 등에 주로 거주한다.
군기지로 인구 유동이 심한 로튼에는 대략 적게는 3,000에서 많게는 4,000여 한인들이 거주하는 것으로 현지에서는 보고 있다.
오클라호마시티는 이보다 적은 2,000여명, 석유회사들이 많아 전문직 한인들이 많은 털사에는 약 500여 한인들이 살고 있고 인근 알토스 공군기자와 위치타포 공군기지에도 각각 500여명의 군인가족들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오클라호마시티는 바둑판으로 구획이 잘된 푸른 옥토와도 같았다. 정사각형의 바둑판 모양으로 나뉘어진 땅마다 호수와 같은 용수지가 한곳씩 햇볕을 받아 반짝인다.
현대자동차를 타고 달려본 오클라호마시티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90도를 넘는 한낮 기후에 등에서 흘러나오는 땀으로 온몸을 적시며 다녀본 다운타운은 대도시라 부르기에는 너무 초라했다. 특히 다운타운을 조금만 벗어나면 금방 나무도 없는 빈땅이 나올 정도로 황량했다.
주변 환경이 사람을 지배하는 것일까. 이곳 한인들의 모습에서 시골의 여유보다는 경계의 눈초리와 쫓기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 인심은 다소 각박한 감이 든다.
▲한인들의 유입전쟁 이후 미군을 따라 이주해온 국제결혼 여성들로부터 시작된 오클라호마 이민사는 60년대 말엽 유학생들을 거쳐 70년대 말 석유 붐 이주자들, 그리고 90년대 초 폭동으로 LA를 빠져나온 한인들의 이주로 이어진다.
오클라호마는 석유파동으로 온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던 70년대 말엽에도 풍부한 유전자원 개발로 오히려 붐을 이루면서 많은 외지 한인들을 유혹했던 곳이기도 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한인들의 인구 변화가 크지 않다(90년 이후 10년간 한인 인구증가율 7%).
그러나 최근 수년 사이 주정부가 공장 건립 지원금까지 제공하며 하이텍 회사 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고학력 한인 인력들이 유입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 우선 주택 가격이나 생활비가 대도시에 비할 수 없이 저렴해 이 곳을 지망하는 하이텍 종사 한인들이 늘어나는 현상이다.
또 주정부는 서울에 연락 사무소까지 개설하며 한국 기업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현재 이곳에는 삼양라면 육수공장과 금호타이어, 영안모자 등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 한인사회 모습을 추적하기가 쉽지 않았다. 현지 한인회는 물론이고 관할 휴스턴 총영사에서조차 초기 한인 이민자들에 대한 자료가 없어 ‘귀동냥’ 정도로 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오클라호마의 한인 이민은 한국 전쟁 이후 미군 가족으로 첫발을 내딛은 여성들이었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한인들이 살고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이들은 특히 한인들과 거리를 두고 살아오고 있었으므로 70년대 초반 한인 초청 이민자들이 붐을 이루기 전까지는 일반 한인 특히 유학생이나 취업 이민자들과의 접촉은 전혀 없었다고 현지 한인들은 전했다.
오클라호마시티에서 알려진 인물로는 63년 정객으로 미국에 망명한 장득수씨의 아들인 퍼터 장씨(노만 거주)가 택시 운전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했고 이어 가라데 사범으로 재크 황씨(68)가 67년 이곳으로 들어와 태권도장을 운영했다.
이후 유학생으로 온 황필호씨, 유병은씨(작고) 등이 이 곳에 머물면서 오클라호마 주립대학 교수로 재직했다.
초창기 비즈니스는 별로 없었다가 70년대 중반 석유 붐을 이루면서 용접업이 성행했고 LA 등에서 온 한인들이 가발업으로 기반을 잡아갔다.
교회의 등장은 74년 LA 동양선교회 청년담당 목사로 있던 피원균 목사가 미국교단 소속의 한인 제일장로교회를 설립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교인은 40명 정도로 교수, 엔지니어, 간호사 등의 전문직이 종사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오클라호마시티로튼 지역의 친지 초청으로 이민 온 한인들의 정착지로 번성했고 유학생이나 교수, 취업이민 등의 전문직 한인들도 많은 곳이다.
한인들은 60% 가량이 개스 스테이션을 비롯해 미장원, 뷰티서플라이, 도넛샵 등을 운영하고 있고 나머지 40% 가량은 GM, AT&T, 또는 루선, 세게이트 하이텍 미국 기업들과 한국 기업 현지 공장 등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생활은 텍사스 달라스 한인사회의 영향권에 속한다. 200마일 거리인 달라스를 오고가며 ‘아랫동네, 윗동네’식 교류로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오클라호마시티에는 한인회에서 지난 4월 창간해 계간으로 발행되는 타블로이드 뉴스레터 ‘횃불’이 있어 한인들의 소식을 전해준다.
오클라호마시티 한인들은 주로 델시티라고 불리는 위성도시에서 식당, 세탁소, 미장원, 식품점등을 운영하고 있으며 교회는 8개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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