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고
▶ 손호철(서강대교수. 현 UCLA교환교수)
"북한의 사주에 의한 폭도". 1980년 5월, 한국의 주요언론들은 전두환 일당의 야만적 살육에 저항하여 일어난 광주시민들의 항거를 이처럼 왜곡하여 보도한 바 있다. 한국언론사에 가장 치욕스러운 사건으로 기록될 이 왜곡이외에도 언론은 오랜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일부는 군사독재와 ‘한통속’이 되어 자발적으로, 일부는 군사독재의 압력에 굴복해 언론의 사명을 방기하고 여론을 호도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 같은 과정을 거치며 기득권세력의 일부로 변신한 언론은 87년 6월 항쟁을 통해 획득한 민주주의 하에서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며 김영삼 정부와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려한 개혁조치들에 시비를 걸어 제동을 걸어 왔다.
이 점에서 신문사들과 사주들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탈세 혐의조사 등 언론개혁 움직임은 때늦은 감이 있다. 물론 무가지 관련경비를 탈세로 몰고 간 것 등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한국의 현실을 고려 할 때 언론개혁은 시대적 요구이며, 그 핵심은 소유와 경영, 그리고 경영과 편집의 분리를 제도화함으로서 자본의 논리로부터 편집권을 보장해주고 언론이 본래의 의무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번 언론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김대중 정부와 전면전을 벌리고 있는 언론사들, 그리고 언론사 편을 들고 있는 한나라당의 힘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김대중 정부의 최근의 언론 강경책이 진정한 언론개혁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정략적이기 짝이 없고 반쪽 개혁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김대중 정부가 진정한 언론개혁의 의지가 있었다면, 정권초기에 총체적인 개혁의 일환으로 이를 추진했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 정권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고 국정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가 비등하자, 그리고 언론의 비판이 거세지자, 뒤늦게 언론개혁을 주장하고 나온 것이다. 이는 최근의 정책이 진정한 언론개혁의 의지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국정쇄신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다른 쪽으로 돌리는 한편 비판적 언론 길들이기를 통해 정권재창출에 도움을 얻으려는 정략적 계산에서 나온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이상으로 심각한 것은 김대중 정부의 언론정책의 이중성이다. 김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자본주의사회에서 찾아볼 수 없는 관영신문으로 독재정권의 대변인역할을 해온 서울신문을 우리사주 방식을 통해 민영화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 당선 후 이 약속을 어기고 이름만 대한매일로 바꾼 채 아직도 관영신문으로 남겨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 핵심중역에는 언론경력이 거의 없는 자신의 친인척을 앉히는 낙하산 인사를 했다. 한국전력과 같은 기간산업은 기를 쓰며 민영화해 외국에 팔려고 하면서 서울신문은 북한이나 중국이외에는 찾아볼 수 없는 관영신문으로 남겨두고 그것도 모자라 친인척 낙하산인사를 하는 것이 언론개혁인가?
방송정책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인적으로 2년 전 정부 통제 하에 있는 방송의 민주화를 위해 결성된 민주적 방송법쟁취 범국민운동본부의 공동의장으로 민주적 방송법 쟁취를 위해 직접 농성과 시위 등에 참여하면서 직접 체험한 바 있지만, 김대중 정부는 MBC 노조의 파업, 언론시민단체들의 항의농성, 시위에도 불구하고 민주적 방송법 개정을 끝까지 거부하다가 마지막에 마지못해 민주적 방송법과는 거리가 먼 형식적인 개정에 그치고 말았다. 이처럼 정부통제하의 언론에 대해서는 개혁을 거부하면서 보수신문 등에 대해 개혁을 요구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첫 단추부터 잘못 꿴 언론개혁을 바로잡고 최근의 사태를 진정한 언론개혁으로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김대중 정부가 먼저 대한매일을 민영화하고 방송에 대한 통제를 포기하는 언론개혁의 모범을 보인 다음 이 같은 개혁을 통해 확보한 도덕성과 국민적 지지를 무기로 소유와 경영, 그리고 편집의 분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언론제도 개혁을 강제해 나서야 한다. 김대중 정부의 다른 개혁들이 그러하지만, 지금처럼 대통령 자신이 스스로 개혁을 하는 솔선수범을 보이지 않고 아무리 개혁을 외쳐봐야 그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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