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인 비즈니스, 히스패닉 이웃<3>
▶ 타운업소 노동자들
9일 오후 3시 타운내 한 대형마켓. 한 한인 할머니가 야채 창고 입구에서 "배추 한 박스"라고 말하자 히스패닉 종업원인 아벨 로페스(28)가 "알았어요. 기다려요"라는 어설픈 한국말로 대답하며 잠시 후 배추 한 박스를 어깨에 짊어진 채 들고 나온다. 이 곳에서 일 한지 3년째 접어든 로페즈는 한인마켓에서만 ‘잔뼈’가 굵은 마켓통이다. 시금치, 미나리, 깻잎, 호박 등 야채이름을 한국말로 줄줄 외고 있다. "손님들이 대부분 친절하지만 무례한 사람도 있다. 친구들이 많아 좋지만 급여는 적은 것 같다"는 설명이다.
이 마켓에는 로페즈 같은 히스패닉 종업원이 70여명, 전체 종업원의 3분의2나 된다. 종업원으로만 따지면 한인 마켓이 아닌 히스패닉 마켓인 셈이다. 사정은 타운내 다른 대형 한인마켓도 마찬가지다. 식당, 마켓 등 타운 내 거의 모든 업종, 심지어 흑인지역 한인업소 종업원까지 히스패닉인 경우는 허다하다.
처우에 대한 로페스의 설명은 완곡한 편이다. 한인마켓에서 캐시어로 일하는 한 히스패닉(20·남)은 "백인 업소와 비교하면 훨씬 대우가 나쁘며 주인이나 손님들이 어떤 때는 곤충처럼 대해서 싫다. 주인이나 다른 한인 직원들이 영어를 잘 못해 의사소통이 어려운 것도 불편하다"면서 "다른 직장을 찾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히스패닉 종업원 10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타운내 한 대형 식당에서 10년째 근무하는 리사 야스벳(30)은 "우리가 원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닌 정당한 대우"라고 말했다. 이 식당의 업주는 "15년 이상 히스패닉과 함께 일하면서 느낀 점은 한인, 히스패닉 구분하지 않고 다같은 종업원으로 대우하는 것이 오랜 기간 ‘동고동락’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발표된 1997년 경제 센서스에 따르면 LA 일원 한인업소 수는 총 2만4,000여개, 모두 히스패닉을 고용하는 것은 아니더라도 한인 주력 업종인 봉제, 의류, 마켓, 식당 등에서 적게는 몇 명에서 많게는 100여명의 히스패닉을 고용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면 한인업소에서 일하는 히스패닉 종업원 수는 최소한 2만-2만5,000명선을 넘을 것이라고 한인상공회의소 측은 추산했다. 특히 대형 마켓, 봉제공장 등 일부 업종의 경우 히스패닉 종업원은 업소내 머조리티 그룹을 형성, 이들이 없으면 비즈니스 자체가 불가능한 정도다.
아씨수퍼의 석필구 매니저는 "마켓의 경우 임금은 낮은 반면 일은 힘들기 때문에 히스패닉이 아니면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다"며 "히스패닉들은 비교적 순하기 때문에 종업원 관리에 큰 어려움은 없다"고 설명했다.
히스패닉 종업원들이 한인 비즈니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이들과 올바른 관계 정립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최명진 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은 "한인업소의 히스패닉들을 단순한 노동력 제공집단으로 인식하기에는 역할이 너무 크다"며 "이제는 한인경제 성장의 동반자 내지는 친구라는 시각으로 봐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웨스턴가 ‘선 핸드 카워시’의 박의국 사장은 "종업원 100%가 히스패닉인 상황에서 그들과 원만한 관계가 유지되지 않으면 비즈니스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적정한 임금도 중요하지만 돈독한 정을 쌓기 위해 일주에 한 번씩 근무가 끝난 후 축구를 하며 함께 시간을 보낸다"고 말했다.
한인노동상담소의 박영준 소장은 "3~4년 전에 비해 한인업주의 임금착취 등 위법사례가 감소하는 추세지만 아직까지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다. 법의 준수도 중요하나 그들에게 갖는 차별적 시각을 시정하는 노력이 앞서야 한다"면서 "한인 경제단체들이 중심이 돼 한인업주와 히스패닉 종업원과의 상호이해를 넓히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