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세무조사가 정부와 신문간의 싸움으로 비화하면서 한국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한국사회를 분열시키는 대결로 치닫고 있다. 이 시대에 신문기자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어느 입장에 서야할지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하고 있다.
정부나 언론이나 모두 명분을 가지고 있다. 신문이라고 해서 국민의 납세의무에서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정부의 논리에 맞설 수 있는 명분은 없다. 그러나 정부가 세무사찰을 빌미로 비판언론을 탄압하고 있다는 신문의 주장 또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양쪽 다 옳고, 다 그르다는 양시양비론 입장을 취할 수는 없다.
이번 논쟁을 놓고 정치인은 말할 것도 없고, 신문도 갈라지고, 지식인도 갈라지고, 국민들도 갈라지고 있다. 생각이 진보냐, 보수냐에 따라 정부편이냐 신문편이냐로 갈라지고, 김대중 정부를 지지하느냐, 반대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대립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나는 진보인가, 보수인가, 김대중 정부 지지자인가 반대자인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있다.
나는 과거에 김대중씨를 지원하고, 북한을 갔다 와서 북한을 이해하자는 책을 쓰고, 북한 기아돕기 운동을 하고, 한국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쓰면서 ‘친북 성향이 있는 진보적 언론인’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과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시민운동가들을 비판하면서 ‘반통일 성향이 있는 보수적 언론인’으로 재분류되고 있다. 내 의식의 성향을 보면 이슈에 따라 진보가 되기도 하고 보수가 되기도 하고 있다. 내 의식을 저울질하는 잣대는 이념보다는 민족이나 국가에 우선하고, 도덕성과 공정성에 비중을 두고 있다.
나는 과거에 조선일보를 공개적으로 많이 비판했다. 언론이 권력과 밀착해서 휘두른 곡필에 탄식했고, 시대가 바꿔지면서 언론이 자신들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참회하고 잘못을 고백하지 않는 후안무치에 분노했다. 그래서 나는 한국 언론이 개혁되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나는 오늘 한국 정부가 세무조사를 통해 언론을 개혁하려는 시도에 반대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언론을 개혁할 도덕성이 없고, 언론을 개혁할 타이밍을 놓쳤고, 그 방법이 공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언론을 개혁을 할 수 있는 도덕적 힘과 명분을 가졌어야 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50년간 정치를 직업으로 했기 때문에 스스로가 부정부패와 세금문제에 자유스러울 수가 없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김대통령은 개혁에 앞서 자신의 부정부패를 국민들에게 고백하고, 같은 시대를 함께 산 모든 사람들과 잘못을 함께 뉘우치는 참회의식을 가졌어야 했다. 아무도 썩은 정치와 사회환경에서 자유스러울 수가 없기 때문에 과거의 부정부패, 과거의 탈세 관행을 모두 불문에 붙이고, 그 참회의 시간을 기준으로 모든 사람들이 법을 지키자는 새 출발의 선언을 했어야 했다. 그 다음부터 부정부패와 탈세 한 사람과 기업을 엄정하게 처벌했어야 했다. 그래야 억울한 사람이 없고, 불복의 명분을 가질 수가 없다.
언론을 개혁하려면, 참회의 시간을 기준으로 과거의 관행을 사전에 시정토록 하고 그 이후의 경영부터 투명한 세무사찰을 했어야 했다. 어느 날 느닷없이 가혹한 세무사찰의 기준을 신문사에 적용하는 것은 언론을 바르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보복과 감정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언론사에 적용하는 조세 정의의 기준을 모든 기업과 모든 국민에게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김대중 정부는 오늘 신문사에 적용하고 있는 세무사찰의 기준을 모든 기업에게 적용하고 있는지 스스로 정직하게 물어야 한다.
나는 언론이 개혁되어야 하고, 신문도 정직하게 세금을 내야 한다고 믿고 있지만, 신문이 정부를 비판하는 이유 때문에 차별 당하거나 압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나는 조선일보와 의견을 달리하고, 조선일보가 잘못한 것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조선일보가 정부를 비판하는 주장을 한다고 해서 가혹한 세무사찰을 당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것을 허용하면 정부는 언제고 미운 신문을 탄압할 수 있고, 언론의 본질을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한국에서 보수언론을 규탄하는 진보적 지식인들에게 충언을 보낸다.
"당신들은 독재시절, 당신들의 의견을 말한 죄 때문에 신문사와 학교와 직장에서 쫓겨나고 박해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들은 당신들의 이념과 다르다고 해서 보수신문과 보수 지식인들을 극렬하게 매도하고, 인신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은 지금 권력의 전위대처럼 행동하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믿고 싸웠던 민주주의를 흔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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