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주의 학계, 교계 및 통일문제 전문가들이 9일과 10일 이틀동안 LA 한인타운 청운교회에서 모여 ‘치유·화해·통일을 향한 기독자대회’라는 타이틀로 통일학술대회를 개최했다. 6.15 남북공동선언의 취지를 살리고 평화와 통일을 향한 발걸음에 있어서 기독교인들의 역할을 재정립하자는 뜻에서 열린 이 학술대회 주요 연사들의 강연요지를 정리해봤다.
▲
치유, 화해 6.15합의문
박경서/대한민국 인권대사, 전 WCC 아시아 총무
우리는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기도와 국제적 연대 속에서의 화해를 위한 교회의 예언자적 사명을 하기 위해 1980년 이후 꾸준히 노력해 왔다. 북한은 올 11월까지 180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 미국, 일본, 한국정부가 약속한 80만톤을 감안해도 100만톤의 식량이 부족하다는 것이 유엔식량기구 책임자의 증언이다. 1995년 6월~2000년 말까지 국제사회의 대북한 원조는 11억8416만달러였는데 한국의 대북한 지원은 정부 3억7960만달러를 포함해 4억7657만달러에 불과했다. 같은 핏줄을 나눈 동포로서 창피한 수준이다.
북한의 식량 부족은 미국의 경제제재가 풀려야 해결될 수 있다. 미주 한인교회들도 국내 교회와 마찬가지로 나눔 운동과 함께 경제제재 해제를 강력히 요구해야겠다. 일부에서 "지원된 식량이 군인들에게만 배급되고 정치적으로 이용된다"는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데 현재 북한에는 100여명의 국제기구 종사원들이 파견돼 일일이 식량배급을 감독하고 이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음으로 안심해도 된다.
지난 1972년 유신헌법 이후 남과 북의 문제는 정부와 교회가 긴장관계 속에서 밀고 당기는 가운데 추진돼 왔다. 이 긴장관계는 현정부의 햇볕정책 속에서 서서히 해소되고 있으나 6.15선언 이후 교회가 과거의 열정을 상실하고 모든 것을 정부에 맡기고 있어 아쉽다.
남과 북의 문제는 먼 훗날 통일이 오는 그 날까지 관과 민이 상호 보완하는 가운데 다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역할은 정부의 역할과 구분돼야 한다. 통일교육, 평화교육, 화해를 위한 프로그램은 정부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이기에 지난 20년 동안 교회가 맡아왔었다.
남북 및 해외교회는 남북교회 일치, 화해예배를 마련해야 한다. 지난 1995년 8월13일 판문점에서 예정됐다가 당국의 비협조로 무산됐던 공동예배를 다시 한번 추진하자. 세계기독교선교회(WCC)와 세계 각국의 이민교회들이 공동 후원하고 남과 북의 교회가 공동 주관하는 형식이 바람직하다.
전 세계가 7000만 우리 배달민족을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1972년의 7.4공동성명이 사장화되면서 우리는 세계에 실망을 안겨주었고 1991년 12월13일의 고위급 합의문서가 실천되지 못해 다시 한번 세계를 실망시킨 바 있다. 우리는 반신반의에 차서 지켜보고 있는 세계를 향해 이번만큼은 진짜임을 보여주어야 한다. 교회는 이의 실천을 위한 추진세력이 돼야 한다.
▲
한국 현대사와 통일도진순/창원대 사학과교수, 하버드대 방문교수
1989년 시작된 소련 및 동구권의 해체는 냉전체제에 익숙해 있던 사람들의 세계관에 심각한 충격을 주었다. 시인 박노해가 "사회주의 체제는 무너졌고 나도 무너졌다"고 고백했듯이 사회주의적 진보를 갈망하던 이들의 희망은 이렇게 무너졌다. 90년대 한국의 세계화 정책은 봉건적 낙후성과 근대적 경직성을 걷어내는데 일정한 역할을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에 대한 환상과 일방적 미국화를 추종하는 혼란을 가져왔다. 한국은 90년대 중반 ‘수년내 G-7, G-8 진입’을 예견하는 등 장미빛 환상에 사로잡혔으나 IMF 위기의 도래로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았다.
이처럼 탈냉전 이후 전환기인 지난 10년 동안 우리의 대외 인식은 좌우를 불문하고 심각한 오류를 겪었다. 이는 그저 변동기의 우연적 현상이 아니라 좌우 모두 강대국이 주도하는 세계를 추종한다는, 사대적 인식 때문이다. 우리의 분단현실을 경유하여 세계와 만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주목한다면 이러한 사대적 대외인식은 다름 아닌 종속적 분단현실에 구속된 것이다.
종속적 분단의 구속성이 대표적으로 발현되는 곳은 바로 북한, 통일문제다. 90년대 북한은 ‘고난의 행군’ ‘5년간의 전쟁’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한국전쟁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1993년 북미간의 핵과 전쟁위기, 1995년 김일성 주석의 사망과 대홍수, 계속된 재해와 식량부족, 기아와 난민 등등. 전문가들은 북한 붕괴론, 흡수 통일론을 들고 나왔으나 기다리던 북한의 붕괴는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1998년 인공위성 사건이 일어났으며 이로 인해 북미간의 관계 정상화가 추진되었다.
북한,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의 흐름과 문제점을 지적하기 위해 ‘페리 보고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페리 보고서는 아직 그 전모가 공개되지 않았지만 1999년 미의회에 보고된 부분만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포착할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 특히 흥미로운 부분은 ‘검토했지만 폐기할 수밖에 없는 방안들’이다. 즉, 보고서는 북한에 대한 그간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한정된 관계만 맺는 ‘현상 유지론’과 북한을 압박하여 김정일 정권의 종말을 촉진하는 ‘북한 약화론’ 그리고 북한을 민주주의와 시장개혁으로 유도한다는 ‘북한 개혁론’도 검토하였지만 결국 "폐기할 수밖에 없다"고 고백했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폐기물에 집착해 허송세월을 한 셈이다. 그러나 보다 큰 문제는 이같은 허송세월을 되풀이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이다. 부시 행정부 등장 이후 북미관계는 급랭되었고 이에 따라 남북관계도 경색되고 있으며 남북관계나 통일문제에 대한 인식 또한 이러한 현상을 추종하는 경향이 완연하다.
21세기 한반도는 과거분단의 시간과 미래통일의 시간이 착종하면서 구조 조정기에 돌입할 것이다. 지난해 6월의 평양회담이나 그 이후 김정일 위원장의 송이 선물을 보고 통일은 대중의 문제가 아니라 고위층과 가진 자들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불도저가 길을 닦고 나서야 차들이 다니고 삽으로 물꼬를 터 줘야 도랑에 물이 흐르듯이 이른바 고위층이 닦았다고 해도 길은 여전히 만인의 것이다. 마찬가지로 2000년 평양회담이 남북 고위층의 만남이지만 그 결과물인 6.15 공동선언은 남북한 만인의 길인 것이다.
▲
남북의 평화와 통일을 위한 화해의 대행진김영진/한국 국회의원, 세계기독의원연맹 총재
PPP 남북평화와 통일을 위한 화해의 대행진은 ‘부산·판문점·평양(PPP) 98 한·일 십자가 대행진’이란 명칭으로 지난 1998년 처음 시작됐다. 당시 새로운 천년을 여는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화해와 평화 그리고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희망의 십자가를 지고 45일 동안 한반도를 종단하는 행진이 이루어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의 기독인들이 함께 참여한 이 대회는 (1)한일간 용서와 화해 (2)남북 평화통일 (3)동서간의 갈등해소 (4)IMF 위기극복 등 4가지의 주제를 가지고 시작됐다. 이 행진을 통해 온 지구촌이 화해와 협력으로 번영의 길로 나서고 있는 상황에서 유일한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가슴 아픈 현실을 치유하고 동서로 갈라져 있는 지역감정의 부끄러운 벽을 허물며 특히 국가적 위기인 IMF를 극복하고 무엇보다도 반목과 갈등의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는 한일 양국의 현실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그 해 7월16일 부산을 시작으로 45일 동안 1,200km를 누빈 행진 과정에는 수많은 신도와 시민들이 함께 했고 각 도시지역을 경유할 때는 각계각층의 지도자들이 참여한 가운데 ‘영호남 지역 대화합 실천을 위한 선언대회’와 ‘남북통일과 한일간 화해와 일치 실천을 위한 선언대회’를 통해 기독인과 시민 각계 지도자들이 뜻을 한데 모았다.
십자가 행진은 첫해에는 분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임진각에서 멈추었지만 그것은 끝이 아니고 시작이었다. 2000년 11월에 열린 두 번째 대회는 98년 마지막 도착지였던 임진각에서 출발해 북한을 볼 수 있는 도라 전망대까지 이어졌다. 교계, 정계, 사회 각계 지도자등 3,000여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한 가운데 45kg의 대형 십자가를 메고 도라 전망대까지 8km 구간을 행진했다. 2회 대회에는 호주의 브루스 베어드 상원의원, 일본 중의원의 도이 류이치 외무위원장, 미국 킹덤 퍼레이드 집행위원회 래리 그랜트총재 등 외국 인사들도 참여했다.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 각국의 크리스천들이 관심을 갖게 된 증거다.
올해 대회는 오는 8월중 개최될 예정이다. 이번 대회의 모토는 ‘남북평화통일과 민족화합을 위하여’ ‘지구촌 평화와 인류화합을 위하여’ ‘한일간의 용서와 일치를 위하여’다. 이번 행진은 지난해 도착지역인 도라 전망대에서 출발해 판문점까지 계속될 예정이지만 판문점 지역은 군 작전상 한미연합사에서 관리하고 있고 민간인이 출입할 수 있는 지역이 아니기 때문에 어려움이 있다. 그러나 PPP 십자가 대행진 조직위원회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선교의 사명을 다할 때까지 지속적이고 끈질긴 노력을 기울여 나갈 계획이다. 십자가로 분단의 철조망을 걷어내고 통일을 이룰 때까지 우리의 기도와 행진은 계속될 것이다.
▲
민족분단의 상처와 평화통일을 향한 교회의 과제김동완 목사/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우리는 살고 있는 지역이 다르다. 우리는 ‘같은 피를 나눈 하나의 민족’이며 ‘같은 피를 나눈 동족’이기 때문에 ‘하나의 평화로운 민족공동체’를 회복하기 위해 모였다. 결코 민족과 국가를 먼저 생각하는 내셔널리즘이 아닌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한반도의 분단과 그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모였다. 분단 현장은 한반도만이 아니다. 그 영향은 해외 동포사회에도 미치고 있다. 적어도 지난해 6.15이전까지만 하더라도 해외 동포사회는 ‘나는 남이요’ ‘나는 북이요’로 나뉘어져 있었다. 할 말이 있어도 편견과 피해가 두려워 침묵해야 했다.
분단과 분단논리에 의해 고국에 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고국은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먼 나라일 뿐이다. 오늘 우리가 해야할 분단극복을 위한 또 하나의 노력은 바로 그들이 자유롭게 고국을 갈 수 있게 상황을 만들어 놓는 것이다.
6.15 남북공동선언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과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조건들을 5가지로 밝혔다. 우리 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자는 것과 통일은 남측의 연합제와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의 공통성을 찾아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자는 것, 그리고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자는 것과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나가자는 것이 그 내용이다.
맨 마지막에는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장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장위원장은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되어 있다.
2000년 6월15일은 평화를 향한 걸음을 시작한 날이다. 지금은 외적 요인으로 하여금 다소 주춤하고 있지만 하나님은 평화를 사랑하는 우리의 노력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중단됐던 글리온 회의를 내년 상반기중 금강산에서 개최한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새 이정표가 될 5차 글리온 회의에 WCC 콘라드 라이저 총무를 비롯 유럽교회연맹 대표들이 참석할 것이다. 미국교회에서도 관심과 협조를 당부한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