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을 하나 들라면 누구일까. 건국의 아버지 조지 워싱턴, 독립선언서를 쓴 토마스 제퍼슨, 노예를 해방시킨 링컨, 아니면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그 해답은 처음 미국을 세운 사람이 어떤 인물들이었는지를 살펴보면 자명해진다.
17세기 초 험한 대서양을 건너 북미주 대륙에 정착한 부류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신천지의 물질적 풍요로움을 동경해 배를 탄 그룹이었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 탄압을 피해 영국을 떠난 그룹이었다. 경제적 이주자들이 처음 닻을 내린 곳은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 남쪽 버지니아 제임스타운이란 곳이었고 종교적 박해를 피해 온 사람들이 정착한 곳은 1620년 보스턴 인근 플리머스였다.
이 두 그룹중 미국의 정신적 버팀목 역할을 해 온 것은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후자였다. 영국에서 일어난 신교 운동의 핵심세력이었던 이들 청교도들은 정신적 지주는 칼빈이었다. 종교 개혁을 시작한 것은 마틴 루터임에도 미국 교회에서 루터보다 칼빈을 더 쳐주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칼빈 사상의 특징은 원죄 이후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간의 타락상에 대한 강조다. 루터가 인간은 선행이 아니라 믿음으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은 믿음에 의지할 능력마저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이런 인간에 대한 철저한 불신이 연방 헌법의 핵심 원리인 권력 분립 사상의 배후에 흐르고 있다. 아무리 훌륭한 인간도 권력을 쥐면 타락하기 마련이므로 권력은 반드시 분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종교와 정치는 물론 경제 분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는 예정설을 통해 신은 이미 오래 전에 누가 천국에 가고 누가 지옥에 갈지를 정해 뒀으며 인간의 지식으로는 이를 알 길이 없다고 가르쳤다. 단지 그 사람이 얼마나 성실하게 신자다운 생활을 하느냐가 이를 판가름하는 징조가 될 수 있다는 그의 사상은 근로의 성스러움과 근면에 대한 강조로 자본주의 발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게 ‘신교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란 고전을 쓴 사회학의 거두 막스 베버의 분석이다. 독실한 칼빈 교도였던 어머니에게 감화돼 자란 그는 스스로 게으른 자신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칼빈 사상의 진실을 몸으로 체험한 사람이다. 예정설에는 모든 것이 하나님이 정한 것이므로 노력과 성실의 대가로 남에게 돌아오는 보답에 대해서는 시샘하지 말라는 경고 메시지도 담겨 있다.
자본주의가 발달하기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과 기술의 혁신도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필수적인 것은 남이 잘 사는 것을 보고 배 아파 하지 않는 태도를 가르치는 것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은 한국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독일 말에는 ‘남이 안된 것을 보고 느끼는 기쁨’(Shadenfreude)이라는 단어까지 있다. 공산주의와 사회주의 배후에 숨은 가장 강한 감정은 부의 평등한 배분이 아니라 부자에 대한 질투다. 그 부가 정의롭게 얻어진 것이든 불의하게 얻어진 것인가는 부차적인 문제다.
미국 직장과 한국 직장의 가장 큰 차이의 하나는 능력에 따른 차별에 대한 반응이다. 미국 직장에서는 오늘은 자기 밑에 있던 부하가 능력을 인정받아 자기 위에 서는 것이 조금도 이상하지 않다. 체니 부통령이 과거 자기 상관이던 럼스펠드를 지휘체계상 자기 밑자리인 국방장관에 앉혔을 때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통령을 지낸 존 퀸시 애덤스 같은 사람은 퇴임 후 연방하원으로서의 직무를 성실히 수행했다. 한국에서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인 이민 사회도 연륜이 쌓여가지만 아직도 대다수 비즈니스가 구멍가게 수준이지 기업다운 기업이 별로 없다. 기업을 늘리고 싶어도 사람 관리하기가 골치 아파 못하겠다는 업주가 하나 둘이 아니다. 가게 규모가 작을 때는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대충 대충해도 될지 모르지만 직원 수가 수십 명, 수백 명으로 늘어나면 이런 식으로는 안된다. 능력에 따른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하는 사람은 모두 나가 자기 장사를 차리게 마련이다. 남는 것은 무능력자들뿐이다. 이래 가지고 제대로 일이 될 리 없다.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는 새 상품이나 서비스 개발도 중요하지만 더 필요한 것은 직원 각자가 최대한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그 가장 좋은 방법은 능력에 따른 대우다. 은행이든 백화점이든 가발장사든 남다르게 커나가는 한인 기업의 공통점은 능력에 따른 대우다. 한인 비즈니스가 구멍가게 수준을 넘어 기업으로 크기 위해서 능력제는 반드시 거쳐야할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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