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여대 손수레 - 관광명소로 <인터내셔널 마켓 플레이스>
하와이에는 한인 이민자들의 강인한 생명력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특이한 관광명소가 한군데 있다.
호화상가들이 빼곡이 들어찬 칼라카우아 거리를 따라 하와이의 대명사격인 와이키키를 향해 걷다 보면 쿠히오 비치 조금 못 미쳐 왼쪽으로 ‘인터내셔널 마켓플레이스’라는 큼직한 ‘장터’가 나타난다. 주변에 늘어선 멋쟁이 대형 소매점들 사이에 조금은 촌스런 모습으로 주질러 앉은 이 노천시장은 한인 ‘또순이’들이 지배하는 하와이의 ‘한국령’이다.
12만4,000 평방피트 넓이의 땅에 70여대의 손수레와 65개의 점포가 옹기종기 들어선 인터내셔널 마켓은 97대의 카트가 모여 있는 이웃의 듁스레인 (Duke’s Lane)과 함께 하와이의 한인상권을 태동시킨 ‘자궁’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다.
인터내셔널 마켓에서 손수레상으로 이민생활을 시작한 한국인들은 여기서 쌓은 경제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활동영역을 조금씩 넓혀가며 하와이 한인상권의 기틀을 다졌다.
80년대 후반들어 중국과 베트남계 이민자들이 밀려오면서 한때 85%를 웃돌았던 인터내셔널 마켓 한인상인들의 비중이 현격히 떨어지긴 했지만 아직도 이곳의 다수집단은 또순이로 대표되는 배달족이다.
퀸 엠마재단 소속인 인터내셔널 마켓 관리사무실측은 "공식적으로 상인들의 국적별 구성비를 조사한 적은 없으나 전체의 90%가 아시아 이민자들이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한인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과 중국, 월남 등지에서 모여든 아시아 또순이들의 ‘세일즈 전쟁’은 아침 8시부터 시작된다. 내규에 따라 개장시간이 오전 9시로 못 박혀 있기 때문에 아무리 늦어도 8시30분까지는 손수레의 잠금문을 풀고 물건을 진열하는 등 영업준비를 해야 한다. 폐장시간은 밤 11시. 엄격하게 적용되는 영업시간을 어길시에는 월 단위로 이어지는 임대연장을 받을 수 없다. 장사가 되건 안되건 하루 14시간 가게문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가게문을 닫을 수 있는 날은 매년 정월 초하루와 성탄절, 단 이틀. 그러나 이날 문을 닫는 한인 상인들은 거의 없다고 한다.
취급품목에는 고가의 보석도 포함되어 있지만 누구나 부담 없이 사갈 수 있는 저가의 티셔츠와 기념품들이 주류를 이룬다.
인터내셔널 마켓의 한인 손수레 부대는 거의 ‘아줌마’들로 채워져 있다. 이들은 일본어와 영어를 구사해가며 치열한 고객쟁탈전을 벌인다. "점잖게 앉아 오는 손님만 받는 소극적 태도로는 살아남기 힘든 곳"이 바로 인터내셔널 마켓이다.
91년에 장사를 시작했다는 한 아주머니는 "인터내셔널 마켓출신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일급 상인들"이라고 자평했다. 지나가는 손님을 잡아야 생존이 가능한 곳에서 10년 가까이 장사를 하다 보면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세일즈 노하우"를 갖게 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출중한 세일즈 능력을 지녔다 해도 가게의 ‘목’이 나쁘면 애를 먹기 마련이다. 리사무실이 각 카트상에게 배정해주는 ‘자리’는 25평방피트로 위치에 따라 임대료에 큰 차이가 난다. ‘황금 목’으로 꼽히는 칼라카우아의 입구 근처에 자리잡으려면 월 1만 달러, 쿠히오쪽 입구를 차지하려면 7,000~8,000달러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게다가 월 6만6,000달러 이상을 팔았을 때에는 초과분의 15%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
칼라카우아쪽 입구에서 카트를 차린 이주리씨는 "세상에 이렇게 임대료가 비싼 곳도 없지만 그만큼 매상이 따라주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한다. 반면 시장 안쪽 어중간한 지점에 위치한 자리는 월 2,500~3,000달러에 얻을 수 있다.
인터내셔널 마켓은 한인들에게 단순한 생업의 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현역이건 예비역이건 간에 장터 사람들은 1988년 한인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전개했던 컨벤션센터 반대시위를 잊지 못한다.
당시 초대형 컨벤션센터를 짓기 위해 부지를 물색하던 하와이 주정부는 퀸 엠마재단 소유인 인터내셔널 마켓 자리에 잔뜩 눈독을 들였다. 와이키키 한복판의 노른자위 땅이 컨벤션센터 부지로 안성맞춤이라는 결론을 내렸던 것.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한인사회는 크게 술렁댔다. 전체 상인들의 80%가 한인들로 채워진 인터내셔널 마켓이 헐린다면 이제 막 자리잡기 시작한 한인상권이 박살나고 한인경제의 젖줄이 말라버리는 것은 정한 이치였다.
한인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인터내셔널 마켓과 듁스레인의 상인들과 그들의 가족까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꼬박 17일 동안 매일 1,000명이 넘는 한인들이 인터내셔널 마켓을 지키기 위한 시위에 참가했다. 외국 땅에서 펼친 한인들의 생존권투쟁은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당국은 와이키키지역의 교통체증 등의 이유를 들어 컨벤션센터 부지를 인터내셔널 마켓에서 멀찍이 떨어진 칼라카우아 아래쪽에 지정했다.
요즘 한인상인들은 인터내셔널 마켓의 경기가 예전같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돈버는 재미에 시간가는 줄 몰랐던 80년대 호시절은 종친지 오래다. 90년대 접어들어 하와이의 돈줄이었던 일본이 거품붕괴로 휘청이면서 시작된 10년 불황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다.
한인상인들을 괴롭히는 요인은 또 있다. 98년부터 인터내셔널 마켓의 직영에 들어간 퀸 엠마재단이 상인들과 장기 리스계약을 기피한 채 먼스-투-먼스의 계약방식을 고수하면서 상인들 사이의 손수레 점포 양도를 허용치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인터내셔널 마켓이 한창 잘나가던 시절, 2~20만 달러의 권리금을 얹어주고 손수레를 인수한 상인들이 옴짝달싹 못할 궁지로 몰린 셈이다.
관리사측에 밉보였다간 퇴출통고를 받게 되고, 그렇게 되면 비싼 웃돈을 주고 들어온 점포를 고스란히 내어주고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취재과정에서도 한인상인들은 관리사무실에 밉보일수 있다며 한사코 이름을 밝히려 들지 않았다.
이외에 물품공급선인 도매업계를 경쟁상대인 중국과 월남계가 틀어쥐고 있다는 사실도 껄끄럽다.
하지만 하와이 인터내셔널 마켓의 또순이들은 강했다. 이들은 엄청난 어려움 예견하면서도 한결같이 "자신있다"고 말했다. 성도, 이름도 밝히지 않은 한 40대 여성은 "안되면 몸으로 때우면 된다. 이젠 무엇이건 해낼 수 있다"고 ‘선언’했다. 다른 상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장사가 안되면 파트타임 종업원을 쓰지 않고 하루 14시간을 몸으로 버텨내 인건비라도 건지겠다는 각오였다.
월남에서 온지 5년 됐다는 티엔은 이처럼 투지만만한 한인 ‘아줌마’들을 향해 "무섭도록 강인하다"(terribly tough)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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