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말 책방 서가에는 ‘니세이: 조용한 미국인들’ 같은 책들이 즐비하게 진열돼 있었다.
이 책들의 결론은 토마스 소월의 ‘소수계의 미국’(Ethnic America: A History)에 나온 것처럼 아시안들이 경제적 성공을 이룩한 것은 정치 투쟁을 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 동안은 이 이론이 들어맞는 듯했다. 소수를 제외하고는 가두 시위등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여론 조사를 해보면 최근까지 대다수 아시안은 금전적으로도 보수적이고 반공정신이 투철, 공화당 성향이 짙었다. 92년 선거만 해도 부시에게 표를 던진 사람이 클린턴보다 27%나 많았다. 그러나 9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고어가 표를 준 사람이 부시보다 14%나 많아진 것이다. 최근 발표된 아시안 정치 여론 조사에 따르면 아시안의 57%가 스스로를 민주당이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신을 아시안으로 인식하고 아시안으로서의 권익을 챙기려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60년대 이전까지는 아시아계 미국인이라는 말도 없었다. 동양계 이민자들은 ‘오리엔탈’로 불렸다. 반제국주의를 부르짖는 학생운동이 일어나면서 비하적인 ‘오리엔탈’ 대신 ‘아시안’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예일대와 프린스턴대를 중심으로 ‘황색 파워’,‘노란 것이 아름답다’등의 구호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UC 버클리에서는 아시안 연구 프로그램 설치를 주장하며 학생들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학생 운동가들이 아시안으로서의 의식을 고취시키기 위해 코리아타운과 차이나타운, 리틀 도쿄등을 방문하기도 했으나 정작 이민자들은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일미 시민연맹등 일부 단체는 오히려 학생들의 행동을 비난했다. 이민자와 학생들은 정치이념이 달랐을 뿐 아니라 사회경험도 달랐다. 이민자들은 미국의 인종차별에 항의하기보다는 생활을 꾸려가기에 바빴다. 역사적으로 적대 관계를 유지해 온 한중일 각국 출신자들은 아시안이라는 이름으로 단결해야 한다는 학생들 주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공화당 전략가들은 아시안이 유대인 같이 돈 많고 열성적인 지지세력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88년 부시 캠페인에 가장 많은 돈을 가져다 준 집단중 아시안이 1위였다. 그러나 공화당은 이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피트 윌슨 전 가주 공화당 주지사의 노선을 따라 공화당은 이민자를 적으로 돌렸다. 95년에는 앨런 심슨 연방상원의원(공, 와이오밍)이 이민자 수를 대폭 줄이고 영주권자를 모니터하자는 법안을 상정했다. 1년후에는 신규 영주권자의 웰페어 혜택을 박탈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수천명의 영주권자가 시민권을 신청한 것도 이때다. 시민권 선서를 하고 나오는 아시안을 기다리는 사람은 중국계 시민권자 교육위원회의 데이빗 리 같은 인물이었다. 96년 한 해 동안 7만5,000명의 새 시민권자가 이런 단체에 가입했으며 그중 대다수는 민주당원이 됐다. 이민자에 대한 공격은 민권단체들에게 호기를 제공했다. 87년에는 수천명이 LA 다운타운에서 불법체류자의 복지 혜택을 박탈하는 프로포지션 187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으며 공화당 지지세력이던 아시아계 비즈니스도 민주당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민주당에 들어온 아시안들은 당내에서도 소수계간 서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시안 정치 헌금 스캔들이 터지자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도 아시안들을 의심스런 눈초리로 보게 됐다. 정치에 무심하던 아시안들도 자신들이 인종차별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게 된 것이다. 시간이 가면서 잊혀지려 하던 아픔에 다시 불을 당긴 것이 리원허 사건이다. 아무리 고급 두뇌를 가졌더라도 아시안이란 딱지가 붙으면 이렇다 할 증거가 없어도 언제 간첩으로 몰릴지 알 수 없음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정치에 무관심하던 중국 여러 단체와 중국계 언론들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 리원호 구명기금에 샌프란시스코에서만 50만 달러가 걷혔다. 하이텍 업종에 종사하는 아시안들의 인종차별 제소도 잇달았다. 중국계 단체들은 지난 번 미 정찰기 해남도 불시착 사건이 일어났을 때 중국인을 차별하는 분위기를 조장하지 말라고 정치인들에 경고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자각에도 불구하고 아시안의 정치 세력화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각국마다 역사적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나로 결집된 아시안 파워 출현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