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어디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운명이 결정지어지기도 한다. 이 말은 다분히 한 개인, 태어남의 지리적인 조건을 포함한다. 태어남은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 전적으로 수동태의 관계에서 사람은 태어난다. 자신이 “어디서 누구로부터 태어날 수 있다”고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
운명이 결정지어진다는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된다. 수동적 관계에서 사람은 태어나 환경의 지배를 받는 건 상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 주어진 관계를 개선함은 다분히 그 사람의 의지와 관계된다. 하늘이 사람을 땅에 태어나게 하지만, 태어난 사람이 운명적인 태어남을 극복하는 건 분명 그 개인에 딸려 있음이다.
말을 돌릴 필요 없이 얘기하자면 간단하다. 북(北)에서 태어난 사람들의 운명론적인 환경을 말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인간의 본능 중 하나가 ‘살아야겠다’는 사람의 의지와 관계 있음을 밝히고자 할뿐이다. 사람은 태어나면 우선 살아야 한다. 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먹어야 한다.
살기 위해 먹어야 하는 것이 인간의 기본임은 말할 나위가 없다. 흔히들 먹기 위해 살아간다면 그만큼 비참한 것이 없다고 한다.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차이가 여기에 있다. 다른 동물들은 먹기 위해 살지만 인간은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북에서 탈출하는 사람들이 해가 갈수록 늘어가고 있다. 이들은 왜 북에서 탈출해야만 하는가. 그것도 죽음을 불사하고 말이다. 그 답은 한 마디로 요약될 수 있다고 본다. “먹고살기 위해 탈출하는 것”이라고. 북한에서 식량난으로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은 건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지금도 북에선 식량이 모자라 수많은 사람들이 굶주리고 있음이다.
북에서 탈출한 사람들에게 난민(難民)의 지위를 주자는 여론이 일고 있다. 한국과 미국에서 한인들에 의해 제출된 1000만 명 이상의 서명도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구제해 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탈북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느냐, 하지 안느냐는 정치적인 문제로 쉽게 풀 수 없는 난제다. 여기서 인도적 차원의 해결책이 요구되고 있다.
북한을 탈출한 장길수 군 가족 7명의 이야기는 그들의 운명만을 탓하게 할 순 없다. 지난 26일 이들은 중국 베이징 주재 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로 들어가 죽음을 마다 않으며 한국이송을 요구하고 있다. 정말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정부는 중국정부가 이들에게 난민 자격을 줄 것을 희망하고 있지만 그건 중국정부의 몫으로 남아있다.
난민자격을 주냐 안주냐는 정치적 문제요 국제법상의 문제다. 그러나 그들 7식구가 살아보겠다고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의 송환을 요구하는 것은 정치·국제법상의 문제 이전의 인도적 차원의 문제다. 그들은 어찌 보면 타고난 운명을 개척한 개척자의 길에 올라있다. 그들이 한국으로 송환된다면 그들의 운명은 달라진다. 이것은 그들 의지가 죽음을 마다 않고 뚫어 논 승리의 길일 수도 있다.
미국엔 비둘기들이 많다. 거리마다 비둘기 모이를 주는 사람들 또한 많다. 가끔 생각해본다. “미국에서 태어난 비둘기들은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비둘기보다는 먹을게 많아서 참 행복할 거”라고. 참새도 마찬가지다. 언제 보아도 미국의 비둘기와 참새들은 살이 통통하게 올라있다. 날개는 기름기로 윤이 나 있다.
개들과 고양이는 또 어떤가. 미국의 개와 고양이들은 사람 못지 않은 대우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가난한 나라의 땅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그곳에서 태어났다’는 한가지만으로 운명적인 삶을 살고 있다. 왜? 배불리 먹지도 못하니 선진국의 개만도 못하단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참으로 ‘모순된 운명의 태어난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고 북한 송환을 거부하고 있는 장길수 군 가족들의 이야기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민족의 이야기다. 슬픈 동족들의 얘기다. 햇볕정책으로 남과 북의 관계는 많은 진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풀어야할 과제는 첩 첩으로 쌓여있음을 어찌하랴. 그 중의 하나가 탈북자의 인권을 어떻게 보호하느냐 도 들어있다. 의지로 불우한 운명을 타개해 보려는 탈북 한 한인들. 그들이 자유의 나라에서, 일한 만큼 먹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줌이 인도적 차원의 도리가 아닐는지. 중국과 유엔(UN)이 가장 좋은 선택을 해주기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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