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년 만에 첫 히스패닉 시장이 탄생하느냐를 놓고 LA는 물론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LA시장 선거는 결국 제임스 한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특히 이번 선거는 한 후보가 한인을 부시장에 임명하겠다는 공약을 지켜 시정부 최고위 한인 공직자가 탄생했다는 점에서 한인들에게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니게 됐다. 이번 시장 선거의 의미를 본보 위원들 방담을 통해 살펴본다.
▲옥세철 논설실장: LA시장 선거는 미 전국의 관심사였습니다. LA시가 뉴욕 다음의 미국 제2의 대도시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지방 선거이기는 하지만 LA 시장선거 결과는 앞으로 지방선거, 특히 여러 민족집단이 몰려 있고 인구가 조밀한 메트로폴리탄 지역의 정치에 무언가 전조가 될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죠. 확실히 알게 된 사실은 라티노의 정치적 대각성입니다. 2001년 선거에서는 LA판 ‘앙샹 레짐’이라고 할 수 있는 파워구조에 라티노 세력이 갇힌 꼴이 됐지만 4년 후부터는 상황이 달라진다는 점을 뚜렷이 알렸습니다. LA, 더 나아가 남가주 지역의 정치계에서 앞으로 최대 변수는 라티노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시킨 셈입니다.
▲박덕만 편집위원: 지난번 LA시장 선거는 히스패닉 표와 유대계 표를 등에 업은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후보가 흑인과 백인 보수층 지지를 얻은 제임스 한 후보가 맞붙었다는 점에서 언뜻 신·구 정치세력의 대결에서 구파가 승리한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런 것은 아닙니다. 당선된 제임스 한이나 낙선한 비야라이고사 모두가 민주당 소속의 진보파입니다. 다만 예선에서 소보로프를 지지했던 공화당 보수파 세력의 표가 한에게 몰린 덕분에 한이 승리한 셈이지요. 한이 선거기간 보수진영의 표를 얻기 위한 캠페인을 펼치기는 했지만 결국은 한도 비야라이고사와 같은 진보적인 색깔의 정치인입니다.
▲민경훈 편집위원: 이번 시장 선거 예선에서 예상밖에 1등을 해 선두주자로 꼽히던 비야라이고사는 낙선하고 당선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 같던 델가디요 시 검사장 후보는 뜻밖에 당선된 사실은 ‘역시 선거는 뚜껑을 열어 봐야 한다’는 통설을 입증했습니다. 이 네 후보 모두 민주당이지만 당선된 두 사람은 온건파에 속하고 낙선한 사람은 리버럴 성향이 강해 LA시민들이 진보보다는 온건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됩니다.
▲옥실장: 이번 LA 시장선거에서 새삼 느낀 점은 ‘인종카드’가 미국의 선거에서 보여주고 있는 끈질긴 파워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제임스 한이나, 안토니오 비야라이고사 두 후보 모두 다 민주당이라는 점에서 아젠다의 차별화가 어렵기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원색적인 ‘인종카드’가 먹혀들고 그럼으로 해서 흑인계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제임스 한이 승리를 했다는 점은 어딘지 꺼림칙한 뒷맛을 남기고 있습니다. 그럴듯한 정치구호를 내세웠다가 결국은 지방색에 의존하는 한국의 선거 풍토와 비슷한 느낌입니다.
▲권위원: 비야라이고사 후보를 적극 밀었던 한인들은 실망을 했습니다. 미국 제2의 도시에 유색인종이 시장이 되어서 소수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한인들의 위상도 같이 높아질 것을 기대했던 때문이지요. 하지만 한의 당선이 한인사회로 봐서는 더 유리할지도 모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비야라이고사가 시장이 되면 소수계 중 라틴계에 대한 배려가 너무 커져서 한인들에게는 소홀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지요. 게다가 노동계와 너무 가까운 것도 한인 자영업자들은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노사문제가 터지면 아무래도 노동계 쪽으로 기울어질 것 아니냐는 우려였지요.
▲옥실장: 사실 이번 LA 시장선거는 라티노인 비야라이고사가 돌풍을 일으키는 선거가 될 것이라는 게 그동안 일반의 관측이었습니다. 그 기대가 백인 보수유권층과 흑인계의 단합이라는 단단한 벽 앞에서 주저앉은 꼴이 된 셈이죠. 그렇지만 라티노의 파워도 과시된 셈입니다. 문제는 앞으로의 역학관계입니다. 제임스 한 당선자가 어떻게 그 갭을 메우면서 LA시를 하나로 이끌고 나갈지 주목됩니다.
▲민위원: 데이비스 주지사와 리오단 시장, LA타임스, 노조등의 지지를 업은 비야라이고사가 떨어진 것을 보면 미국 선거에서는 실력자와 주요 언론의 지원을 받았다고 당선이 보장되는 것은 아닌 모양입니다. 선거 직전 여론 조사 결과 7% 정도 앞서간 제임스 한 후보가 집계 결과 비슷한 표차로 승리한 것은 좀처럼 돌발사태가 벌어지지 않는 미국선거의 특징을 보여줬습니다.
▲권정희 편집위원: 제임스 한 당선자가 캠페인 중 시장에 당선되면 한인 부시장을 임명하겠다는 공약을 했는데 그 약속을 지켰습니다. 한 당선자가 한인사회에 대해서는 각별한 친근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측근들은 말하더군요. 더 많은 한인들이 시정부직에 진출하게 될 것이란 기대들이 높은데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박위원: 잘 아는 것처럼 한 시장당선자는 그 아버지 고 케네스 한 LA카운티 수퍼바이저 시절부터 한인사회와 가까운 대를 이은 지한파 정치인입니다. 재임기간 유돈 부시장뿐 아니라 유능한 한인 인재들을 많이 등용해 주리라 믿습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 한인 커뮤니티 입장에서는 비야라이고사가 당선된 것보다 한이 당선된 것이 유리한 셈입니다.
그러나 유돈씨의 부시장 임명은 단순히 한인 커뮤니티에 대한 배려만은 아닙니다. 2세인 유씨는 그동안 주류사회 속에서 살면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이지요. 오히려 이번 부시장 취임이 그가 한인 커뮤니티와 보다 친숙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아무튼 리오단 시장 재임시절 소원했던 LA시와 한인 커뮤니티의 관계가 과거 탐 브래들리 시장 시절 수준보다 훨씬 강화될 것이라 믿어집니다.
▲권위원: 유돈씨가 한국말을 못하기 때문에 한인사회와 거리가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습니다. 일단 너무 많은 기대는 금물이라고 봅니다. 너무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고 부시장 당사자에게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부시장으로 자리를 굳힐 때까지는 마음으로 후원하면서 조용히 지켜보는 것이 순서라고 봅니다.
▲박위원: 유돈씨의 부시장 임명은 LA시 한인 공직자 사상 최고위직입니다. 과거 브래들리 시장 재임시절 김준문, 김윤희씨가 보좌관을 맡아 일했지만 커뮤니티와의 연락책 정도였던 셈이고 선우 쿡씨가 커뮤니티 재개발국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김진형,. 미셸 박씨 등이 커미셔너로 있긴 합니다만 부시장급 고위직이 탄생한 것은 임명직이든 선출직이든 처음입니다.
▲옥실장: 흑인-라티노간의 갈등이 앞으로 어떤 형태로 전개될지도 관심사입니다. 라티노가 미국내 최대 소수민족 집단이 됐다, 또는 곧 된다는 전망 때문에 흑인 커뮤니티는 그동안 바짝 긴장해 있었습니다. 이번 선거는 흑인 커뮤니티의 긴장감이 여실히 반영된 선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 긴장감이라는 것은 오랜 세월 민권투쟁을 통해 흑인 커뮤니티가 얻어낸 현재의 정치적 입지를 절대로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각오로 요약됩니다. 이런 긴장감으로 이미 흑인계와 라티노계는 파워 스트러글을 해왔습니다. 캄튼시 시장 선거 같은 게 그 대표적 예의 하나입니다. 이번 LA 시장선거는 이 같은 흑인-라티노간의 갈등이 확대 재생산된 형태로 볼 수도 있습니다.
▲박위원: LA시 인구의 머조리티를 차지하고 있는 히스패닉이 아직 시장 배출에는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델가디요가 시검사장에 당선됨으로써 라티노 파워의 과시에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봅니다. 이번에는 보수파 백인표의 지지에 힘입어 한이 당선됐지만 다음 선거에서는 라티노 파워가 더욱 강해져 비야라이고사가 재도전할 경우 한이 재선을 낙관하기는 어려우리라고 봅니다. 히스패닉 커뮤니티와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뗄래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 한인들로서도 라티노 정치인들과의 유대에 신경을 써야 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라티노의 투표율은 낮았습니다. 그러나 지난번 시장 본선에서 전체 등록 유권자의 20.5%가 라티노였던데 반해 투표자중 라티노의 비율은 22.8%였습니다. 그리고 등록 유권자의 투표율이 36%인데 반해 라티노 등록 유권자의 투표율은 41%에 달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권위원: 한 시장 시대를 맞지만 비야라이고사 진영과의 유대는 계속 강화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라틴계 파워가 LA를 좌지우지할 날이 조만간 올 테니까요. 비야라이고사가 이번에 이루어낸 라틴계-노동계-유대계 연대는 앞으로 계속 LA 정치세력의 주요 축이 될 것으로 봅니다. 인구로 보나 사회 경제적으로 보나 LA의 미래가 어떤 방향으로 향할지는 이제 분명해졌습니다. 선거철에만 철새처럼 몰려다니지 말고 이제는 한인사회가 정치에 눈을 떠서 멀리 내다보며 우리의 진로를 모색해야 하겠습니다.
▲옥실장: 이와 관련해 앞으로 뉴욕, LA, 샌프란시스코 등 대도시 선거는 지역마다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흑인과 라티노간의 파워 다툼의 형태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지방선거에서는 그러니까 과거와 같이 ‘소수계 무지개연합’ 같은 건 기대할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어찌 보면 두 소수그룹간의 갈등으로 오히려 백인계가 어부지리를 얻을 수도 있는 겁니다. LA 시장 선거결과가 바로 그렇습니다.
▲권위원: 올드타이머들은 한 시장당선자가 부친인 케네스 한 LA 카운티 수퍼바이저 만큼 한인사회에 배려를 해줬으면 하는 기대가 높아요. 성격은 부친만큼 활달하지 않지만 한 시장당선자도 정직하고 남의 의견에 잘 귀를 기울인다고 하니 한인사회 하기 나름이라고 생각됩니다.
▲박위원: LA시정 경험이 풍부한 한의 시장 당선으로 LA시 정치가 한층 부드러워질 것이라는 전망입니다. 그동안 공화당 출신 사업가 리처드 리오단 시장 재임 때에는 민주당 주도의 시의회나 시공무원 사회와의 관계가 그다지 원만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의 경우 정치인들 뿐 아니라 시공무원들과도 친분을 유지해온 만큼 종전보다 협조가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분석입니다. LA 시의회도 이번에 상당한 물갈이가 이루어졌습니다. 임기제한 규정 덕분에 6명의 시의원이 새로 바뀌었고 존 페라로 의장의 사망과 조엘 왁스 시의원의 사임 등으로 15명의 시의원 중 절반 가까이가 바뀌게 됐습니다.
▲민위원: 이번 선거에서 한가지 짚고 갈 것은 한인들의 투표 성향입니다. 노인들 이외에는 투표자가 거의 없는 것도 문제였지만 표를 준 이유도 그 사람의 정책에 공감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안면이나 이름이 친숙해서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한인사회 지도자들 가운데는 지난 번 한인회장 선거에 나왔던 양진영이 다시 둘로 갈라져 각각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등 한인회장 선거의 재판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권위원: 이 기회에 커뮤니티에 새로운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합니다. 누가 어떤 자리에 거론된다하면 꼭 뒤에서 깎아 내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제 그런 악습은 버려야 하겠습니다. 서로 서로 치켜세워서 제임스 한 시장시대에는 제발 많은 한인들이 공직에 진출했으면 합니다.
▲옥실장: 흑인-라티노 갈등구조는 한인들에게 양자택일에 있어 상당한 어려움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또 이 같은 갈등구조에 잘못 휘말려 들었을 때 한인 커뮤니티는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습니다. 어찌됐든 한인은 아직도 마이너리티 중 마이너리티이기 때문입니다. 한인 커뮤니티는 정치적 구심점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이 와중에 특히 문제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소수계 대 소수계’의 갈등이 날로 확산되고 있는 마당이므로 비유컨데 한인 커뮤니티는 격랑의 바다를 선장도 없이 항해하는 배와 같이 보여 위태하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정치력 신장이 참으로 시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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