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인공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의 머릿글자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각본을 쓰고 감독했는데 창세기와 공상과학과 동화의 요소를 혼성한 것 같다.
궁극적으로 사랑에 관한 이야기로 담대하고 상상력 넉넉하고 또 재미와 뜻깊은 내용 및 오색찬란한 세트 디자인과 미술 그리고 컴퓨터 특수효과 등이 모두 좋은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과거 여러 영화의 부분들을 발췌 편집한 것 같아 기시감이 있다. 스필버그의 영화치곤 뜻밖의 일. 우선 생각나는 영화들이 ‘E.T.’ ‘매드 맥스’ 3편 ‘검투사’ ‘블레이드 러너’ ‘2001: 우주 오디세이’ ‘제3세계와의 조우’ ‘오즈의 마법사’ ‘클라크 워크 오렌지’ ‘토탈 리콜’ 등. 이 영화들의 모습과 분위기가 가득하고 후반 내용은 ‘피노키오’의 얘기를 답습하고 있다.
어른을 위한 동화(어린아이들이 보고 즐기기엔 내용이 너무 복잡하고 어둡고 또 폭력적이며 무섭다)인데 당초 이 영화는 1999년에 사망한 명장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려다가 자신의 친구인 스필버그에게 바톤을 넘겼다. 원작은 브라이언 앨디스의 ‘수퍼-장난감들은 여름 내내 간다’(Super-Toys Last All Summer Long·1969).
큐브릭은 오랫동안 이 작품의 영화화에 집착하다가 작품 내용이 자기보다 스필버그의 감각에 더 맞는다(’E.T.’를 생각하면 된다)고 판단해 그에게 감독을 맡겼는데 그 뒤 ‘눈을 크게 감고’를 감독하고 갑자기 사망했다.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생존시 그와 만나 듣고 본 큐브릭의 아이디어에 바탕해 각본을 썼는데 스필버그의 영화로서는 대단히 어둡고 차가운 것은 큐브릭의 영향 때문이다.
스필버그는 큐브릭의 이런 성질 속에 자기 특유의 동심의 온기와 감정을 혼합해 자극적이요 매력적이며 또 흥미 있는 영화를 만들었다. 차가운 큐브릭과 따스한 스필버그의 특성이 야릇하게 혼합된 영화로 이런 화학작용이 제대로 안된 부분이 더러 발견된다.
가까운 미래.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내려 뉴욕 등 대도시가 수장되고 자원은 고갈됐으나 인간의 과학적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했다. 인간의 시중을 드는 것은 감정만 없고 나머지 모든 것은 인간과 똑같은 로보트들이다.
일단의 과학자들은 처음으로 사랑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소년 로보트 데이빗(헤일리 조얼 아즈멘트-’제 육감’)을 제조, 외아들이 불치의 병에 걸려 괴로워하는 해리(샘 로바즈)와 모니카(프랜시스 오카너) 부부에게 맡긴다. 부부는 새 아기를 갖고 싶어도 인구통제 정책 때문에 허락을 못 받는 처지.
모니카는 처음에는 데이빗이 사람 흉내내는 장난감이라며 달가워하지 않다가 점점 흥미를 느끼게 되면서 마침내 데이빗의 감정작동 단추를 누른다.
지금까지 하나의 살아있는 인형에 불과하던 데이빗은 감정이 작동하면서 모니카에게 달려들어 끌어안으며 "마미, 아이 러브 유"를 고백하면서 아들 노릇을 하려 하나(아즈멘트의 로보트 연기와 인간 연기의 변화가 무쌍하다) 뜻밖에 병에 걸렸던 아들이 치유돼 돌아오면서 두 아들간에 경쟁의식이 발생한다. 그리고 데이빗은 모니카에게 집요하게 자기도 사랑해 달라고 요구하면서 모니카는 데이빗을 내다버리기로 결정한다(이 영화는 보답 받지 못하는 사랑을 통한 사랑에의 집념과 그것의 쌍방통행을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모니카는 울며불며 매달리는 데이빗을 차마 폐기장으로 데려가지 못하고 도중에 숲 속에 떨구어 놓으면서 데이빗의 자기가 있을 참된 곳에로의 길고 험한 여정이 시작된다.
데이빗은 모니카가 들려주던 피노키오의 얘기가 자신에게도 이뤄질 수 있다고 믿고 피노키오를 사람으로 만들어준 푸른 요정을 찾아 나선다. 유일한 길동무는 말하는 곰인형 테디.
데이빗은 폐품 로보트들을 붙잡아 파괴놀이의 대상으로 삼는 바운티헌터들에게 끌려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남고 여기서 만난 인간들에게 섹스를 제공하는 남창 조(번쩍거리는 가죽옷을 입고 창녀처럼 걷는 주드 로가 총명한 연기를 하는데 그의 역할이 일찍 끝나 아쉽다)와 함께 바운티헌터들을 피해 계속 도주한다. 둘은 만물박사가 사는 위락공원 같은 루지시티에 들러 푸른 요정이 있는 곳을 알아내고 데이빗은 마침내 세상 끝(맨해턴) 수중에서 푸른 요정을 만나게 된다. 그로부터 2000년 후.
여기서부터 스필버그의 통제할 줄 모르는 감상이 넘쳐흐르면서 영화 전체가 감정적 홍수사태를 겪는다. 스필버그는 철없을 정도로 순진한 소년이라고 하겠는데 그가 오랜만에 다시 동화의 세계를 그리면서 자신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마지막 20여분은 없으면 더 좋았을 사족. 이 영화는 인간화를 갈망하는 기계인간을 통해 인간의 기술문명 속에 내포된 가공성을 경고하고도 있다. ‘주라기 공원’과도 같은 메시지다. 등급 PG-13. WB. 전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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