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당 담론에 대한 나의 생각
▶ 박영호<글렌데일>
요사이 한국에서 거론되었던 미당 서정주 작고시인에 대한 담론이 이곳서도 거론되고 있어서 주제넘고 당돌한 것 같지만, 미당의 시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관용과 화해의 정신으로 그를 이해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적어본다.
사실 이 문제는 새삼스러운게 아니고 오래전부터 틈만 있으면 거론되어 왔지만, 그 어느쪽으로도 명쾌하게 매듭지어지질 못했다.
미당을 지탄하는 의견들을 요약하면 미당의 행적에 반국가적이고 반양심적인 오점이 있었으니 그분의 시적 가치가 무시되어야 한다는 내용인데 나는 이분들의 주장이 지나치다거나 그릇되었다고 주장할 의도는 추호도 없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그래도 그분의 시만큼은 가치가 있다는 주장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을 뿐이다.
그분의 시적 가치는 많은 작가들의 말-‘미당의 가치는 그가 덕목을 갖춘 인격자도, 학자도 정치가도 아닌 순수 서정시인이라는데 있다’(김용도 시인) 그리고 ‘한국인의 한과 풍류와 원초적인 관능미를 표현한 천부의 시인이다’(김규화 시인)라고 표현되었듯이 우리민족의 서정성을 시의 본질인 언어의 연금술로 가장 잘 나타낸 시인이라는데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분이 일찌기 일제말 자신을 지키지 못하고 친일적인 글을 썼고, 전두환 군사정권에 영합하는 글을 썼다는 것은 정말 그분으로서는 피할수 없는 큰 과오를 범했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그분이 한편으론 15살 나이에 광주학생운동 주동자 4인중 1인으로 중앙고등보통학교에서 퇴학을 당했고, 다음해도 독립운동으로 고성고등보통학교에서 권고자퇴를 당했던 사실도 우리는 기억해야 될 것이다. 이것이 면죄부가 될 수는 없지만 배제가 되어서는 안되겠고, 그가 스무살 무렵에 인도주의자 톨스토이에 심취해서 넝마주이로 수개월 동안 가난한 이웃을 도왔던 사실도 참작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다.
미당의 가치를 부정하는 분들은 거의가 국가적 민족적 사회성이 강한 분들이고, 저항의식이나 참여의식이 강한, 그래서 이런 면에 문학적 가치를 크게 둔 분들이니 미당의 반사회적인 실수는 치명적인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미당은 원래가 국가적 사회적, 개혁적인 저항시인이 아니고, 국가 사회, 사상 인격 이전의 ‘우리 인간의 원초적 본능과 영혼, 정서 등을 파헤친 인간 근원적인 세계를 다룬 작가이다.’(조선문학 미당연구)라는 점을 참작해 볼 필요가 있다.
지고한 인격과 높은 사상만으로 글을 쓸수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는가. 아무리 높은 인품이나 사상, 애국심이 있어도 천부의 재질이 없으면 좋은 예술작품을 만들어낼 수가 없다고 본다. 극단적인 예이기는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런 경우가 어떻게 단죄되었는지 살펴보면 부분적으로나마 이해에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일찌기 일제 말기 자기를 지키고 일본어로 글을 쓰지 않은 작가는 만해, 윤동주 등 손꼽을 정도고 모두가 친일했고, 이광수 같은 분은 자타가 인정하는 친일작가이지만 그 누구도 국문학사적인 지위를 부정하지는 못한다.
괴테가 침략자 나폴레옹을 찬양했고, 하이덱거는 히틀러를, 이탈리아 최고시인 에즈라는 무솔리니를 찬양했다.(채주영 평론가) 또한 타골도 간디에게 결코 협조하지 않았다고 들었다. 그들이 반역했다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을테지만 그들의 명성이나 업적에는 변화가 없다는 점을 참작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시인치고 그분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사람은 없을테고, 그를 부정하는 사람조차도 비판의 표적을 찾아 그의 시를 연구하다 더러는 그의 시에 심취되어 경탄에 이르게 되고 만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 분이 생전에 한번쯤 반성이나 회개라도 표현했다면 좋았을텐데 그런 기회가 없었던 것 같다. 그점이 아쉽지만 그의 초기 작품 ‘자화상’에서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을란다’라는 싯귀가 있듯이 그분의 자존심과 독한 고집같은 점이 영혼 깊숙이 숨어 있지 않나 하는 연민의 정으로 이해해 보기도 한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라는 싯귀절은 누가 뭐래도 내겐 아름다운 시임에 틀림이 없다. 그가 부정한 인격자라는 것을 안 뒤에도 말이다. 이것은 역사인 시간이 증명해 줄 것이다. 시간적 공간적 검증을 거친 먼 훗날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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