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버스터가 점령하는 6∼7월 극장가에서 한국영화로는 유일하게 <신라의 달밤>이 버티고 있다. <신라의 달밤>은 <주유소 습격사건>으로 유명한 김상진 감독과 김미희 제작자, 박정우 작가가 2년 만에 선보이는 코미디다.
때문에 <신라의 달밤>은 여름 전쟁에서 단순히 ‘버티고’ 있는 모양새가 아니다. 도리어 ‘대박’ 조짐을 풍긴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함께 소개되는 예고편부터 절대 기죽지 않는 수준이다. <신라의 달밤>의 최대 장점은 매우 웃기는 코미디라는 데 있다. 웃기지 못하는 코미디가 꽤 많은 현실에서 정말 웃기는 코미디가 갖는 흥행 파워는 대단할 것이다.
존재 자체가 ‘오버’인 조폭급 선생 차승원이 ‘뒤집어지게’ 웃긴다. 섹시 가이 이미지가 강했던 차승원은 <신라의 달밤>에서 트레이닝복 차림의 선생으로 나온다. 학창 시절 ‘짱’으로 명성을 떨쳤던 전력을 어쩌지 못해 조직폭력배처럼 구는 선생이다.
숯 검정으로 그린 듯 진한 눈썹을 가운데로 모은 채 모든 걸 주먹과 몸으로 해결하려고 덤비는 그는 <신라의 달밤>이 만들어내는 웃음의 핵심 코드다. 극 중 캐릭터 자체가 어느 정도의 ‘오버’를 허용하고 있어 차승원만 화면에 나오면 웃음이 터진다.
가장 최근에 차승원이 보여줬던 모습이 사이코 방화범(리베라 메)이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변화다.
차승원은 ‘내가 언제 사이코 방화범이었냐’는 듯 요즘엔 만나는 사람마다 웃긴다. ‘어쩜 저렇게 영화 배역처럼 살지?’라는 의문이 들 정도다. 툭툭 내던지는 한 마디마다 유명 개그맨 뺨칠 수준이다.
왈가닥 라면걸
차승원만 웃겨선 곤란하다. 코미디 영화에서 혼자 좌충우돌해봐야 한계가 있다. 주연급 가운데 두 명 정도는 배꼽을 쥐었다 놨다 해야 된다.
<신라의 달밤>에선 김혜수가 그런 구실을 하고 있다. 김혜수는 작은 라면집 주인. 두 얼굴의 여자다. 평소엔 매력넘치는 여자이나 한사코 비뚤어지려고 하는 남동생 앞에선 거의 ‘악마’다. 웬만한 남자 한 명 해치우는 것은 라면 끓이는 것보다 쉽다.
김혜수는 <신라의 달밤>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 코드다. 차승원과 이성재, 두 라이벌 아닌 라이벌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는다. 김혜수가 두 남자 사이에서 밀고 당기는 것을 어떻게 하느냐가 웃음을 쥐고 있다.
그래서 김혜수는 화면 속에 나오지 않을 때도 중요 인물이다.
그동안 몇몇 영화에 출연했으나 상처만 입었던 김혜수가 이번에 거는 기대는 크다.
다행히 이번만큼은 실망하지 않아도 될 조짐이다.
모범생 같은 조폭 중간보스 모두 웃기면 또 곤란하다. 코미디에서 주인공들이 경쟁적으로 웃기려고 덤비면 너무 요란하다. 중심 인물 한 명 정도는 묵직하게 중심을 잡아줘야 웃어야 될 때 확실히 웃는다.
<신라의 달밤>에선 이성재가 그런 구실을 했다. 항상 반듯한 느낌의 이성재는 <주유소 습격사건>의 4인방 가운데 주동이었다. 이미 코미디 영화에서 실력을 뽐낸 적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그 때나 지금이나 그는 결코 웃기려고 덤비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야기의 중심을 확고히 틀어쥐고, 주변 인물들이 마음껏 웃길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는 것이 이성재의 몫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내놓고 웃기는 역보다 더 어렵다. 자칫하면 "쟤 왜 나왔어?"라는 핀잔을 듣기 쉬운 역인 탓이다.
이성재는 범생이 출신 조폭 보스로 등장한다. 과중한 업무 부담의 조폭 생활 와중에도 자기 발전을 위해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인물이다. 교사이면서도 조폭처럼 구는 차승원과는 정반대 캐릭터다.
신라의 달밤은 어떤 영화?-캐릭터 개성충돌 ‘편안한 코미디’
멜로영화 만큼이나 코미디의 종류도 많다. ‘어떻게 웃기느냐’에 따라 몸 쓰는 슬랩스틱 코미디에서 입으로 승부하는 개그까지 여러가지다.
김상진감독은 한국 영화계에서 드물게 코미디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감독이다. 코미디 영화 최고 흥행을 자랑하는 ‘주유소 습격사건’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그는 데뷔도 ‘돈을 갖고 튀어라’는 코미디로 했다. 강우석 감독의 조감독 출신다운 면모다.
이런 김상진 감독은 자기만의 웃기는 방식을 갖고 있다.
그의 특징은 확실한 캐릭터의 인물에 있다.
뚜렷한 개성의 인물을 주연급으로 서너 명 내세운다. 그리고 그들만큼이나 개성 넘치는 인물을 조연급으로 몇 군데 배치한다. 주조연을 막론하고 이들의 특징은 일관성 있는 캐릭터를 지킨다는데 있다.
흔히 영화 속 인물은 캐릭터의 변화를 보여줘야 생동감을 안겨준다고 한다. 그러나 김상진 감독의 인물들은 흔들림 없이 자기 성격으로 일관한다. 대신 이런 개성들을 충돌시켜 웃음을 만들어낸다.
중심 인물들에게 괜한 고민을 안겨주는 것은 군더더기로 생각한다. 주유소를 습격했던 4인조나, 조폭급 선생이나, 일등급 조폭이나 모두 마찬가지다. 이들에겐 고민이 없다. 대신 너무나 분명한 캐릭터만 있다. 그래서 김상진 감독의 코미디는 편하다.
정경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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