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간 32돌 대하시리즈-제1편 알래스카 한인들 [3]페어뱅스
▶ 북극해로 가는 관문, 에스키모의 고향
’오로라의 도시’ 페어뱅스는 불모의 툰드라와 현대문명을 연결하는 관문이다. 페어뱅스를 통하지 않고는 북극권으로 들어갈 수도,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도 없다. 역사적으로는 100년 전 골드러시 시대의 개척정신이 아직도 도시 구석구석에 배어있는, 꿈을 쫓는 이들의 고장이다. 곧 탄생 100주년을 맞게되는 페어뱅스는 인디안과 에스키모 원주민 외에도 69개국에서 몰려든 이민자들이 서로의 전통과 문화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다인종 사회이기도 하다. 바로 그 곳에 약 200가구 500여명의 한인들이 소수계의 일원으로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고 있다.
국제결혼한 여성을 제외하고 분명한 목적을 가진 채 페어뱅스에 정착한 한인은 1970년대 초 에스키모어 연구를 하던 구장회 교수(작고)가 처음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969년 도미, 텍사스대 대학원을 거쳐 인디애나대에서 언어학 박사학위를 받은 구 교수는 에스키모 언어 연구에 심취한 나머지 인류학을 전공한 서선벽 여사와 함께 알래스카대 언어학과 교수로 부임했다.
구 교수는 에스키모 언어 연구 외에도 페어뱅스에 사는 소수계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가 1979년 8월 시 민권위원회에 제출한 소수계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한인은 국제결혼 여성을 포함, 268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을 직업별로 분류하면 의사와 교수, 목사, 엔지니어 등 전문직 종사자는 6명에 불과했으며 청소부와 식당 종업원 등 단순 서비스업 종사자는 52명이나 되는 데 반해 자기 사업체를 갖고 있는 한인은 단 1명뿐이었다.
구 교수가 현지 한인사회에 미친 영향은 단순히 초기 정착자나 대학교수로서의 그 것 이상이었다. 그는 한인이라고는 눈을 씻고도 찾기 힘들었던 시절에 알래스카대 내 한국문화센터를 개설하고 언어학과내 한국어 강좌를 만들어 한국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을 유도하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높이는 데 지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구 교수가 학자로서, 한인으로서 보여줬던 열정과 집념은 아직도 페어뱅스 한인들의 자랑으로 구전되고 있을 정도이다.
1976년 12월 페어뱅스로 이주해 간 장욱환(57)씨는 당시 인구가 268명에 달해던 것이 그나마 1975∼1977년까지 진행된 송유관 공사 때문이었다고 전한다. 장씨는 "내가 왔을 때 100명도 채 안되던 한인인구가 송유관공사에 참여해 목돈을 챙기려는 사람들이 캘리포니아와 네바다에서 수 십명 몰려드는 바람에 몇 년간 일시적 증가현상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구 교수가 보고서를 만든 지 22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페어뱅스의 한인 인구는 500여명에 불과하다. 그 동안 유입인구가 꾸준히 늘기는 했지만 군인인 남편을 쫓아 다른 지방으로 이주하는 국제결혼 여성들이 있었고 정착한 지 얼마 안 돼 페어뱅스를 떠난 ‘뜨내기’들도 상당 수 됐다. 페어뱅스에 ‘살고 못 살고’는 3∼5년이 고비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유학생 수도 구 교수가 있을 때 20명 이상인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해양학과 박사과정 2명을 포함, 4명으로 줄었다.
1980년 미국에 건너와 콜로라도 스프링스와 LA, 시애틀을 거쳐 페어뱅스에 들어간 김영수(60)씨는 "떠난 사람도 많았지만 들어온 사람도 꾸준히 있었다"며 "조그맣고 외진 동네지만 있을 것은 다 있어 사는데 불편한 게 없다"고 전했다. 10여년을 살면서 청소부에서 20여개의 건물청소를 맡고있는 용역회사 사장이 된 김씨는 "5년만 고생하고 LA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살기가 편해 아예 눌러 앉았다"고 말했다.
페어뱅스시내에서 서울옥 식당을 운영하는 정명재(40)씨는 따뜻한 고장 부산출생. 1991년 아내 백정하(45)씨와 결혼해 알래스카로 이민왔을 때를 "마치 시베리아에 내린 느낌"이었다고 표현했다. 영어를 배우려고 도착 3일만에 접시닦이로 생활을 시작한 정씨는 아내와 함께 악착같이 돈을 모아 1997년3월 자기 식당을 갖게 됐다. 정씨는 "공기 좋고 물 맑고 범죄가 없어 살기에는 좋지만 음식재료를 앵커리지와 시애틀에서 공수해와야 하는 게 불편하다"고 말했다.
과거와 달리 요즘 페어뱅스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비즈니스를 갖고 있다. 지난해 발행된 한인록에 따르면 현재 페어뱅스에서 한인이 운영하는 업소는 약 30개. 청소용역회사가 9개로 가장 많고 식당은 7개, 호텔·모텔 4개, 마켓 4개 등이다. 인구 수가 500여명에 불과한데 비해 교회가 4개나 되는 게 눈길을 끈다.
김동민 페어뱅스 한인회장은 "비록 한인은 많지 않지만 에스키모 원주민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데다 한인여성과 결혼한 미군들도 상당 수 있어 인종차별 같은 것은 거의 못 느낀다"며 "날씨가 지나치게 추운 게 단점이기는 하지만 작은 마을 같은 분위기로 살아간다"고 전했다. 임인숙 한인회 부회장은 "한 겨울에는 공기 중의 수분까지 얼어붙어 도시 전체가 뿌연 안개가 낀 것 같은 모습을 보인다"며 "사방이 온통 하얗기만 해 어떤 때는 일부러 골프채널을 틀어놓고 캘리포니아나 플로리다의 골프장잔디를 구경하는 게 습관처럼 돼버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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