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약 3년전 뇌일혈로 쓰러졌으며 2달 전에 재발됐다. 다소 매우 현실적인 이유들로 이런 경험들을 여러분과 나누어 갖고 싶다.
처음 뇌일혈로 쓰러졌을 때, 나는 시카고에서 약 150마일 떨어진 한 도시에서 개최되는 회의에 가고 있었다. 내차의 승객좌석에는 오헤어공항에서 픽업한 이 행사의 기조연설자가 앉아 있었다.
회의장소까지 반정도 왔을 때 나는 앞뒤로-처음에는 내가 가고 있는 차선안에서 다음에는 온 도로를 가로질러서-벗어나기 시작했다. 동승자는 걱정되어 차에서 자기를 내려달라고했다. 그러나 나는 지그재그 하지 않고 있다고 끝까지 우겼다.
아무튼 목적지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소규모의 파티가 있었으며 모두가(물론 나를 제외하고) 보통때의 내가 아니었다고 느꼈다. 그들은 모두 내가 누어야한다고 생각했고, 결국 그렇게 하도록 했다.
다음날 아침 식사에서 내가 정말로 안좋게 보였음에 틀림없었다. 왜냐하면 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사람이 집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했고, 도와줄 사람이 나를 집까지 운전해 주도록 주선했다.
시카고에 도착했을 때 그 차는 나의 것이었기 때문에 먼저 그의 집으로 간 다음 나의 집으로는(약 20분운전) 내가 운전하겠다고 우겼다. 그는 내가 운전하는 것에 격렬하게 반대했으나 나는 그의 보스였다. 그래서 집까지 도착하는데 4시간 소요됐으며 도중에 자동차 사고가 두번이나 발생했다.
이 기사의 제목은 아마 “지독히 고집피우지 말라"고 해야할 것같다.
한편 회의 의장과 나의 조수는 내가 무사히 집에 도착했는 지 확인하기 위해 아내에게 전화했다. 도착하지 않았으므로 상황을 한층 더 악화시켰고 나는 집에 도착한 후 피로하여 침대로 가고 싶다고만 말했다.
나의 조수가 나의 아들의 좋은 친구였다는 것이 내게는 행운이었다. 그는 내가 많이 아프다고 전화해서 내 아들이 즉시 집으로 왔으며 병원에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련의 검사후 나의 뇌의 왼쪽에 4센티미터 응혈이 있는 것이 발견됐다. 다행히도 그것은 가벼운 뇌일혈이었다.
나의 문제는 평상시에도 그랬지만 기운이 없다는 것 외에 오른쪽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이유로 자동차사고가 발생한 것 같다. 오른쪽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쪽으로 핸들을 돌린 것이다.
내가 들은 은밀한 이야기로는 의사들 조차도 내가 좀 더 신경을 쓰고 알아야 했었다고 했다. 나의 반응은 전에 결코 뇌일혈 증세가 없었는데 어떻게 알 수 있었는가였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첫째 기분이 별로 안좋다 느끼면 어떤 조치를 취하라, 예를 들어 의사를 찾아 가라는 것이다. 둘째는 고집피우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 건강에 관하여는.
제목이 암시하는 바와 같이 병이 남으로서 얻는 진가들이다. 한 가지는 누가 당신의 진정한 친구인지 발견할 것이다.
병문안, 회복기원카드, 꽃등은 모두 대단하였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서 보다는 나의 아내에게 더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즉 어떻게 이 고집스러운 남자와 참고 살고 있는 지?
많은 다른 좋은 호의들이 있었다. 뇌일혈 재발 후 발생한 것 중 일부를 여러분과 같이 나누겠다.
약 3주전 나의 친구와 내가 그의 집으로 부터 대략 20마일 떨어진 곳에서 개최된 동일한 회의에 참석해야 했다. 그는 회의장으로 바로 가는 대신 나의 집으로 50마일을 운전하여 나를 픽업한 후 나의 집으로 부터는 30마일거리인 회의장소로 갔다. 20마일 대신 80마일을 운전했고 그것을 왕복했다.
약 2주전 나는 지난 25년동안 같이 게임을 해왔던 평소의 4인조와 골프를 쳤다. 마지막 라운드에 접어들면서 피곤해졌고 친구들이 내대신 골프카트를 운전했다. 마지막 홀은 언덕이며 아주 가파랐다. 그들은 내가 골프라운딩을 끝내도록 했다.
아내와 나는 70년대와 80년대에 골프코스 옆에서 살았다. 사실은 6번째 홀 바로 옆이었다. 거기서 13년이나 사는 동안 아내는 나와 오직 3번(나는 어떤 다른 것보다 더 원했지만) 골프를 쳤으며 그것도 단지 9홀만이었다. 지금은 몇 홀 치고 싶어하면 같이 쳐준다. 이것은 내가 거듭 병이 나곤 했기 때문이다.
병으로 인한 나쁜 부작용 중 한가지는 기억력 상실이었다. 이것 때문에 아내는 대단히 걱정이다.
지난 3주동안 나는 3개의 20분짜리 TV 쇼를 사회보았으며, 지역교회모임에서 40분짜리 프리젠테이션을 했고 한인노인단체를 위해 2시간동안 연설을 했다. 여러분은 특히 한국어구사가 유창하지 못한 나를 염려하는 아내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지난 몇 년동안 나의 일을 줄이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이야기해 왔다. 예를 들면 아시안 아메리칸협회에서 사람들에게 이번이 회장으로서 마지막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매번 그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번 재발 후 지금은 받아들여졌다.
두 번의 뇌일혈로 부터 회복된 후 나는 나의 인생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확실히 갖게 되어 활동의 우선 순위를 바꾸었다. 또 내가 갖고 있는 것-가족,친구, 삶 그 자체-을 감사하며, 무엇보다도 하나님이 나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고 이 지구상에서 좀 더 오래 살기를 원한다는 것에 대해 새로운 고마움을 갖게됐다. 요령은 병고를 치르지 않고도 인생의 다양한 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것이다.
결론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는 것은 첫째 지난번 2회에 걸쳐 썼던 내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소한 일에 괴로워 하지말고 항상 웃으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을 잘 돌보고, 셋째는 인류에게 봉사하는 삶을 허락한데 대해 감사하라는 것이다.
이중식 (Joseph Yi) 씨는 1940년 10살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와 주로 미국사회에서 전문직업인으로 활동해 왔지만 한인사회 봉사회 이사장을 역임하고 이화여대 국제재단 이사로 활약하는 등 한인사회에서도 많은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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