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시중에서 상영되고 있는 전쟁영화 ‘Pearl Harbor’(진주만)를 보면 미국이 1941년 12월 7일을 왜 국치일로 여기고 있는지 이해가 간다. 불과 1시간 50분동안 계속된 일본기의 공습에 미군 2,433명이 죽고, 1178명이 부상당했으며, 18개 전함이 침몰하거나 파괴되고, 미공군기 347대가 대파 되었다. 손한번 써보지 못하고 늘씬하게 얻어맞은 셈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 했을까. 미군관계자들의 회고에 의하면 일본이 태평양을 건너 미국을 기습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일본을 너무 우습게 본데서 허를 찔린 셈이다. 지금도 미국인들은 상대방을 너무 얕잡아 보지 말라고 할 때 “진주만을 기억하라”는 말을 빗대어 사용한다.
진주만 피습으로 미태평양함대는 거의 전멸 되었었으며 특히 전함 아리조나호의 최후는 처참한 것이었다. 함내의 화약고가 폭발해 1177명의 해군장병이 목숨을 잃었으며 아리조나호가 침몰되는 장면은 진주만 비극의 간판사진처럼 되어있다.
영화 ‘진주만’의 스토리는 그저 그렇지만 일본기의 진주만 폭격장면과 미전함 침몰장면, 그리고 히캄기지의 아비규환 현장은 영화 타이태닉호의 최후에 못지않는 압권이다. 미국의 진주만 피습은 너무 비참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동안 헐리웃에서도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묘사하는 것은 터부로 여겨져 왔었다. 요즘 미국과 중국 사이가 나빠져 미국인들의 마음이 편치않은 때이고 보면 매우 아이러니칼 하다. 왜냐하면 영화장면이 너무 리얼해 미국민의 마음의 상처에 소금을 뿌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진주만 기습에서 꼭 기억해야 할 하나의 교훈이 있다. 영화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장면이다. 그것은 진주만 사건이 미국에 살고있는 일본인들에게 “미국이냐, 조국이냐”의 선택을 강요한 계기가 된 점이다. ‘미국’과 나의 ‘조국’이 적이 될수도 있다는 것을 입증한 케이스이기도 했다.
미국의 일본 커뮤니티는 진주만 기습으로 인해 이민 1세와 2세가 갈라서는 뼈아픈 경험을 치렀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FBI는 전국적으로 일본인 1세들을 연행했다. 문제는 2세 단체들이 1세들의 연행을 찬성했을 뿐만 아니라 FBI의 일본계 조사작업을 도왔다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 커뮤니티는 일본천황을 하늘처럼 받드는 이민 1세와 미국밖에 모르는 2세의 인구비율이 거의 비슷했으며 1세와 2세의 문화차이가 심했다. 노동자들인 1세는 전혀 영어를 못했고 미국서 학교를 나온 2세들은 일본어를 못했다. 따라서 조국과 천황에 대한 인식도 다를수 밖에 없었다.
이민 1세의 고민이 어떤 것인가는 당시 FBI에 연행된 1세들의 답변에서도 엿볼수 있다. FBI 수사관들이 1세들에게 꼭 물어본 것은 “만약 당신에게 총이 주어진다면 일본군을 쏘겠느냐 미군을 쏘겠느냐”는 질문이었다.
사람은 분노하면 유치해지는 법이다. FBI가 어떻게 그런 유치한 질문을 할수 있었는지 이해가 안되지만 당시의 분위기에서는 그 질문이 심각했던 모양이다. 일본인 1세들이 대답한 내용도 걸작이다. “일본군도 쏘지않고 미군도 쏘지않고 공중에 쏘겠습니다”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건 중립이 아니라 이적행위다. FBI 입장에서 보면 말이다.
그러나 2세들은 달랐다. 일본군을 쏘겠다는 것이 이들의 자세였다. 2세들의 미군지원은 붐을 일으켜 2500명 모집에 9천명이 몰린 때도 있었다. 일본인 2세들로 구성된 제442연대는 북아프리카와 이탈리아 전투에서 용맹을 떨쳤으며 최고 무공훈장인 콩그레셔널 메달을 52개나 탔다. 대신 이들의 전사율은 일반미군의 3배나 되었다. 저패니스 아메리칸은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는 것을 피로 증명한 셈이다.
하와이에 가면 진주만에 ‘아리조나 전쟁기념관’이 있다. 후손의 교육을 위해 아리조나 전함은 침몰된 후 건져지지 않은 채 수장되어 있으며 바로 그 위에 수상 기념관이 세워져 있다. 일본계 4세 미군이 전쟁기념관을 안내하며 일본군의 무모한 진주만 기습을 설명할 때는 마음이 착잡해지기까지 한다. 만약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코리언 아메리칸은 어떤 자세를 취할까. 1세와 2세의 견해는 어떻게 다를까. 여러가지를 상상해 본다.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