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동성애자를 칭하는 레즈비언(lesbian)의 어원은 그리스 에게해에 위치한 섬 레스보스(Lesbos)에서 비롯됐다. 레스보스섬은 일찍부터 곡물·올리브·과일·알몬드·목화 등 농산물의 수확이 풍성하고 포도주와 올리브유로 유명해 기원전 7~6세기에는 에게문명의 중심 역할을 했다. 기원전 6세기 그리스의 여류시인 사포(Sappho)가 남편과 사별한 후 아름다운 소녀들을 이 섬에 모아놓고 예술활동을 했던 일에서 레스보스 사람을 뜻하는 레즈비언이 여성 동성애자라는 의미로 쓰여지게 됐다.
과거 동성애는 질병이나 범죄로 경멸받았던 적이 있지만 이제는 개개인의 성적 취향(sexual preference)의 하나로 용인 받게 될 정도로 세월이 변했다. 앤 헤쉬라는 비쩍 마른 미국 여자배우가 얼마 전까지 동거해 오던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새로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다는 뉴스나 홍아무개라는 한국의 연예인이 박박머리로 나와서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고백해도 거부감은 들지 않게 됐다.
여자 스포츠계 특히 프로대회가 활발한 테니스나 골프계에 레즈비언이 많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금은 은퇴한 ‘철의 여인’ 마티나 나브라틸로바가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밝힌 바 있었고 한때 LPGA에서도 활약했던 한국의 고참 여자골퍼 K도 동성애자로 알려졌다.
그러나 미국내 가장 막강한 여자 스포츠 기구인 LPGA에서는 레즈비언의 첫 글자 ‘L’의 언급도 터부시 해왔다. 물론 LPGA 관계자들은 LPGA 선수와 팬들 가운데 레즈비언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지만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가는 후원금과 스폰서 계약이 감소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스폰서 계약체결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대기업 간부들이란 대개가 시대에 뒤떨어진 보수적 섹스관을 가지고 있는 고지식한 백인 중년남성들이기 때문이다.
이같이 동성애 문제에 있어서는 일반사회보다 더 보수적인 LPGA에 대해 미최대의 레즈비언 사교클럽 ‘걸바’(Girl Bar)가 선전포고를 하고 나섰다. 미전국에 1만2,000여명의 회원이 가입해있는 걸바는 최근 여자프로농구 리그 WNBA소속 로스앤젤레스 스팍스 농구팀과 마케팅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LPGA를 다음 타겟으로 삼고 나선 것이다.
걸바의 공동 창설자이며 연인사이인 샌디 삭스와 로빈 갠스(사진)는 지금부터 11년 전인 1990년 LPGA 메이저대회중 하나인 다이나쇼 골프대회를 계기로 이 단체를 만들었다. 지금은 나비스코 챔피언십으로 이름이 바뀐 이 대회가 열리는 주말이면 대회장 인근 팜스프링스 지역에는 해마다 5,000여명의 레즈비언들이 몰려들어 대회 참관과 더불어 퍼레이드, 전시회등 각종 행사를 갖는다.
삭스와 갠스 커플은 일차 목표로 나비스코 챔피언십의 후원사 지정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 스폰서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타이 보타 LPGA 커미셔너는 "우리는 어느 특정 그룹만을 겨냥한 마케팅을 하는 단체가 아니다"며 걸바의 접근을 사전 차단시키고 있다. 스팍스는 새로 생긴 프랜차이즈이기 때문에 관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모든 마케팅 수단을 동원할 수밖에 없겠지만 50년 역사의 LPGA로서는 보편 타당성 있는 마케팅을 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에 대해 스팍스 구단의 관계자는 걸바와 계약을 맺었다고 해서 자기 팀이 레즈비언이라고 선포하는 것도 아니고 동성애를 장려하는 것도 아니라고 반박했다. 레즈비언 가운데는 스포츠팬들이 많고 그들이 구매력이 있는 집단이라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그들의 돈이 부정한 돈이 아닌 다음에야 레즈비언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을 마다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레즈비언이란 새빨간 립스틱에 매니큐어로 좋아하는 여자친구의 남자애인을 살해할 궁리나 하고 있는 못된 여인집단"쯤으로 치부하고 있는 한 세기 전 이미지를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LPGA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걸바의 투쟁이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두고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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