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신문사와 자매회사인 라디오 서울 프로그램 중에 ‘고백합시다’라는 순서가 있다. 방송시간이 오후 4시로 신문사 업무가 한창 바쁜 때여서 자주는 못 듣지만 가끔 기회가 있어 들으면 재미있는 사연들이 많다.
얼마 전에 들은 신혼의 주부 K씨의 고백.
부모를 속이고 남자 찾아 LA로 오게 된 얘기였는데 구김살 없고 정감 있는 목소리가 입가에 웃음을 돋게 했다. K씨가 ‘남자’를 만난 것은 시애틀에서 대학을 다닐 때였다. 친구들과 LA에 놀러왔다가 만났는데 집으로 돌아가서도 ‘남자’가 마음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부모님께 LA로 학교를 옮기겠다고 했어요. 당연히 반대였지요. 그래서 단식투쟁을 시작했어요. 이틀을 굶고 나니 너무 배가 고파서 친구에게 먹을 것을 몰래 2층의 내 방으로 던지게 했어요. 부모님께서는 내가 꼬박 굶은 줄 아셨지요. 단식투쟁 4일이 지나자 드디어 허락이 떨어졌어요”
그렇게 해서 LA로 온 후 역시 자신이 공부하러 온 줄만 아는 ‘남자’를 다시 만나고 연애를 해서 그가 지금의 남편이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밸리의 주부 L씨도 10여년 전 남편을 속인 사연이 있다. 이민 와서 살다가 한국에 나가 결혼한 케이스였는데 “어느 모로 보나 빠지는데 없는 남편이 너무 불안했다.” 친구 중에 한국서 온 남편이 영주권을 받자마자 도망친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들 하나 낳기 전에는 남편에게 영주권을 주지 말아야겠다 마음을 먹었어요. 그래서 영주권 나온 걸 계속 숨기다가 아들이 태어나고 나서 그때 나온 척하며 남편에게 주었지요.”
쌀이 귀하던 시절 임신을 하고 나니 쌀밥이 너무 먹고 싶어서 시어머니 몰래 쌀밥을 지어 혼자 먹었다는 할머니의 고백, 아내가 출산이 임박해 병원에 누워있는 사이 다른 산모 돌봐주던 아가씨와 데이트한 남편의 고백,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보낸 것처럼 가짜 쪽지를 보냈는데 그 친구가 폭설 속에 몇 시간씩 기다리다 동상에 걸려 정말 미안했다는 주부의 고백 … 사연은 끝이 없다. 남의 차를 들이받고 도망친 일등 ‘고백’ 아닌 ‘자백’을 하는 경우들도 드물지만 있다.
방송 진행자 이영돈씨는 1년반 동안 ‘고백’을 진행하며 “사람들이 참 다양한 사건들 속에 살아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갈 줄 알았는데 이렇게 털어놓으니 속이 시원하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하는 모든 경험들은 시간이라는 강물과 같이 엮이며 흘러 과거의 시간대로 편입된다. 그런데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흘러가지 않고 강바닥에 박혀서 다음에 오는 시간들을 계속 할퀴는 암초와 같은 경험들이 있다. 마음으로부터 해결되지 않는, 그래서 ‘지난 일’로 돌릴 수 없는 사건들이다.
고백이란, 묵직한 아픔으로 남아있는 그 암초를 뽑아 강물 위로 들어올려 살펴보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강바닥, 마음의 바닥에 박혀 있을 때는 그렇게 아프던 것이 꺼내 놓고 객관적인 눈으로 보니 “사실은 별게 아니었구나!” 싶으며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이 고백의 카타르시스 효과이다.
지금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을 꼽는다면 오프라 윈프리를 빼놓을 수 없다. 미시시피 빈촌의 흑인 소녀가 미국 400대 부자 대열에 오르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인에 꼽히게 된 비결은 무엇일까. 그에게 성공의 문을 열어준 것은 토크쇼였고, 토크쇼의 성공을 가능하게 한 것은 하소연할 데 없는 사람들의 답답한 마음이다. 출연자들이 자신을 세상에 없는 살뜰한 친구로 느끼게 만들며 가슴속 사연들을 술술 고백하게 만드는 오프라의 탁월한 친화력이 성공 비결이다.
이민 와서 살면서 가장 아쉬운 존재는 마음 터놓을 수 있는 친구이다. 경제적 안정도, 사회적 지위도 노력하면 얻어질 수 있지만 참된 친구는 나이 들수록 얻기 어렵다. ‘고백합시다’‘오프라 윈프리 쇼’같은 매체도 좋지만 가슴을 열고 나를 들어줄 친구가 필요하다. 주위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다면 내가 먼저 그런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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