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수, 종군위안부, 광주민중항쟁... 여전히 아물지 않은 채 상채기로 남아 있는 우리 역사의 미완의 과제들이 잇따라 영화로 제작될 예정이어서 관심을 끈다.
현재 시나리오 작업중이거나 크랭크인을 눈앞에 둔 이들 영화의 특징은 `대중과의 타협’이다. 작품성과 메시지만을 강조하느라 흥행을 외면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겠다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 있는 듯 하다.
<선택> ㈜씨네월드와 영필름은 미전향 장기수로 무려 45년간 복역한 김선명씨의 삶을 다룬 <선택>을 공동 제작한다. 92년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이후 10년 만에 메가폰을 잡는 홍기선 감독의 차기작이기도 하다.
89년 장산곶매의 대표로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단편 <오! 꿈의 나라>를 연출했는 가하면 80년대 `얄라성’, `서울영화집단’ 등에서 활발한 영화운동을 펼치는등 지금까지 사회문제에 대한 관심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였다.
그러나 김선명씨의 삶을 영화로 옮기겠다고 마음먹기까지 고충도 많았다고 한다.
정확히 43년 10개월을 신념 하나로 버티며 영어(囹圄)의 세월을 보냈던 김씨의 `단조로운’ 삶이 액션과 환타지가 주류를 이루는 우리 영화계 현실에서 얼마나 주목받을 수 있을 지 자신할 수 없었던 탓이다.
홍 감독은 실제로 "드라마틱한 인생의 역정도 없이 0.75평의 독방에서 반평생을 보낸 김선명씨의 삶이 일반 관객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이야기는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동시대인들이 그런 김선명씨의 삶에서 자유로울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분단상황과 이념의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김선명씨 얘기는 현재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 세계적으로도 실효성이 상실된 이념이 아직도 우리 사회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우리의 사고와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한, 우리 모두 이 얘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가 밝힌 연출의 변.
배우 김갑수와 <가슴에 돋는 칼로 슬픔을 자르고>로 홍 감독과 인연을 맺은 조재현 등이 출연하며, 김선명 역은 현재 캐스팅 중이다. 올 8월초 크랭크인 한다.
<더 컴포터>(The comforter) 영화사 퍼시픽엔터테인먼트가 기획 중인 종군위안부 문제를 다룰 <더 컴포터>는 한국도 일본도 아닌 제3자의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바라보는 점이 특징이다.
영화는 UN인권위원회 앞에서 인권 단체들과 정신대 할머니들이 시위를 벌이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시위 현장을 취재하던 미국 CNN 기자가 `이들이 왜 시위에 참여하게 됐는가’라는 의문을 갖게 되면서 이야기는 과거로 흘러가 종군위안부의 실체를 드러낸다. `우리 인생에서 끝나지 않은 이야기(The Unending story in our lives)’라는 부제가 달렸다.
퍼시픽엔터테인먼트의 전영택 사장은 "국내 시장이 아닌 세계 시장을 염두에 뒀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흑백 논리로 접근하는 게 아니라 당시 전쟁에 참여했던 모든 개개인은 역사와 전체주의, 그리고 전쟁의 희생양으로 그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한국의 정신대 할머니 뿐만아니라 캠프에 끌려갔던 각 국의 종군위안부여성들의 모습, 그리고 이들과 일본군과의 로맨스도 시나리오에 포함됐다.
태평양의 한 섬에서 올로케이션으로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며, 현재 영어로 시나리오 작업 중에 있다. 외국 영화사와 감독, 스태프들이 제작에 함께 참여한다.
<은지화>영화 <블랙잭> <까>로 잇따라 실패를 맛 본 중견 정지영 감독은 광주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은지화>로 재기를 노린다.
정 감독이 직접 시나리오를 쓴 이 작품은 국내 최대 비디오 제작ㆍ유통사인 `스타맥스’가 제작하는 첫번째 영화다.
무거운 주제를 쉽게 풀어 가겠다는 것이 정 감독의 구상이다. `80년 광주’를 말하지만 영화의 시점은 현재이며, 멜로와 미스터리가 중심축이다.
당시 공수부대원으로 광주에 있었던 한 남자가 어떤 충격으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뒤 기억의 단초를 제공해 주는 한 여자를 만나면서 조금씩 기억을 찾아간다는 이야기.
영화 제목 `은지화’는 화가 이중섭씨가 그린 그림에서 따왔지만, 이 작품에선 주인공의 기억을 되살리는 모티브로 등장한다.
정감독은 "2001년 초반에 광주항쟁은 우리에게 어떤 모습으로 남아야 하는가를 멜로 드라마를 통해 말하고 싶었다. `광주’는 감춰지거나 잊혀져야 할 것이 아니라 우리 가슴에 남아 있으면서 극복돼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1년 반 정도의 시나리오 작업을 거쳤고, 올 7월께 촬영에 들어간다.
(서울=연합뉴스) 조재영기자 = fusionjc@yna.co.kr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