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피니언
▶ 이영호 목사(뉴비전 청소년복지재단)
강남… 거기는 어디인가? 겨울이 되면 제비가 날아가는 곳이 강남이었다.
그런데 봄이 되면 그 제비가 그 강남에서 돌아온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강남은 그렇게 머나먼 따뜻한 곳이었다. 강남이니 강북이니 따질 것 없이 그냥 내가 사는 곳에서 살면 됐기 때문에 강남은 우리의 아름다운 봄날이 계속되는 그런 꿈속의 마을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강남 하면 제비까지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리라. 거기가 금방 생각나기 때문이다. 한강 남쪽의 서울 말이다. 하긴 난 아직도 그 강남이 어떤지 모른다. 안 가봤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으나 그곳의 문화와 풍토를 알기에 그곳은 나와는 너무나 상관이 없는 곳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도 강남 출생이 아닌가. 출생뿐만이 아니라 나는 군대를 가기까지 내 전 생애를 강남에서 살았다. (이 대목에서 나는 입을 크게 벌리고 웃고 싶다. 흠하하하... 나도 강남 사람이란 사실 때문에..) 그래도 나는 요즘 말하는 강남을 모른다.
내가 태어난, 그리고 자라난 강남은 미국에서 제일 가까운 동네, 케이. 아이. 엠. 피. 오… 킴포, 김포공항 주변 시골이기 때문이다. 화창한 햇볕 아래서 팍, 퍽, 혹은 뽕… 보릿짚 터지는 소리를 들으며 벌판 건너 미군 수송기가 뜨고 내리는 것을 수도 없이 바라보던 그 김포…
그 강남, 내가 살던 강남이 아니라 요즘 말하는 서울 강남에는 거지가 없단다. 거지 없는 것이 어찌 강남만의 자랑이랴. 거지의 도시라고 했다 해서 얻어맞을 일은 없던 뉴욕도 요즘엔 거지가 엄청 줄었다. 루디 아저씨가 국제 도시 뉴욕에 거지가 많아서야 쓰겠냐고 어떻게 손을 좀 본 모양이다.
그래서 뉴욕에도 거지 보기가 옛날 같지는 않다. 그런데 강남에 거지가 없는 이유가 자못 충격적이다. 거지들이 강남에서는 얻어먹을 것이 없어서 피난을 갔다는 것이다. 강남이 그렇게 가난한 동네인가? 그것은 아니리라. 듣자하니 아이들도 강북 애들과 강남 애들은 틀리단다. 강남 애들은 다른 지역과는 구별되는 자신들만의 문화를 이루고 살아간단다.
다시 말해서 고소득층이 많이 사는 곳이 강남이라는 것이다. 온갖 유흥업소와 놀이문화도 많다고 한다. 그런데 거지 먹을 것이 없다니? 음식이 없어서가 아니리라. 돈이 없어서가 아니리라. 나눠주는 인정이 메말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인정 많은 강남인들에게 엄청난 미안함을 느낀다. 강남에 대해서 쥐뿔도 모르는 내가 강남 운운하는 것은 순전히 인터넷 때문이다. 거기 신문에 가보니까 이런 기사가 실렸더라니까. 하긴 그 기사도 어느 정도는 일반화를 했으리라. 그러므로 강남에 연고가 있는 제위들께서는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소생을 용서하시기 바란다.) 그래서 제 2의 IMF를 운운하는 요즘 같은 불경기에도 강남엔 거지가 없다는 것이다.
거지가 기특하다는 것도 아니고 장려할 만한 직업이라고 말하는 것도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식주에 문제가 없어서 거지 없는 사회를 이룰 수 있다면 그 얼마나 행복한 사회이랴! 아마도 천국이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전쟁, 자연재해, 혹은 개인의 허물과 실수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서 재난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하긴 거지도 알고 보면 괜찮은 직업이라는 괘씸한 생각에 남의 신세로 살아가려는 기생충 같은 인생도 없지는 않으리라. 그러나 우리가 거지 운운하는 것은 꼭 거지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주변에 이런 일, 저런 일들로 고통받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겠느냐는 것이다. 그것은 어제오늘의 일만도 아니고 동과 서의 문제만도 아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기쁨도 있지만 또한 아울러 고통과 아픔도 끊임없이 우리의 삶을 비집고 드는 것을…
삶의 아픔을 남의 것으로만 생각하기에 우리 자신은 얼마나 연약한가! 나만의 안일함을 즐기기에 우리 자신은 얼마나 작고 짧고 얕은 존재인가! 나 살던 강남에는 거지도 많았고 미친 사람도 간혹 있었다. 그래도 그들은 배는 곯지 않았다. 함께 나눠먹었기 때문이다.
그들도 이웃이기에, 그들도 사람이기에,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조물주가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삶의 복락이기에 우리는 있으나 없으나 나눠 먹으며 살았다. 거지 없는 것을 자랑하지 말자. 우리가 못 본다고 없는 것이 아니다. 눈을 뜨자. 멀리 못 보더라도 우리 가정과 한인 사회, 나아가서는 우리가 살아가는 미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돕는 손길들이 텅 빈 바가지를 들고 얼마나 안타깝게 여러분의 도움을 기다리고 있는가! 비록 거지가 좀 있다 하더라도 더불어 함께 나눠먹으며 살아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천국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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