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초여름 시네마천국
▶ 9~20일 열린 프랑스 ‘칸 영화제’ 르포
예술성과 상업성 그리고 권위에 있어서 최고로 꼽히는 칸영화제와 세계 영화인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영화시장인 칸마켓이 9일부터 20일까지 프랑스의 해변도시 칸에서 열렸다.
프랑스 남부의 휴양도시 칸은 매년 이맘때면 전세계에서 몰려든 영화인들과 영화 관람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 오전9시부터 새벽2시까지 쉴새없이 영화가 상영되고 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엔 방금 본 영화에 관한 평들이 오간다.
찬사와 비난이 쏟아지고 걸작과 졸작이 공존하며 제작자와 배급업자간의 사고 팔기가 만연하는 칸. 유명 영화배우 및 감독들과 어깨를 마주하고 영화를 관람하기도 하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는 곳.
청바지 차림의 왕가위감독이 바로 옆을 지나가고 닉 놀티와 함께 신호등이 바뀌길 기다리며 극장 앞에서 핸드폰으로 열심히 전화를 하는 장즈이와 호텔 라운지에서 와인을 마시는 이산 호크를 발견해도 사인 공세를 펼치기가 겸연쩍은 도시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얼굴을 지닌 칸은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프로 소매치기들이 극성을 부리고 호텔 방이 털리는 모습도 함께 갖고 있다. 올해 칸영화제 기간동안에도 ‘10초의 마술사’인 이들 소매치기들에게 지갑을 털린 영화사 사장들의 경찰서 출입은 예사였으며 한국인들이 대거로 묵고 있던 칸 비치 숙소는 한 층 전체가 털려 쓰레기통에서 수십 개의 여권이 발견될 정도였다. 기자도 사흘째 되던 날 영주권과 크레딧 카드들, 상당액의 현찰이 든 지갑을 통째로 소매치기 당해 한동안 우왕좌왕하는 고충을 겪었다.
▲제54회 칸영화제올해로 54회를 맞이한 칸영화제의 경쟁부문에 오른 영화 23편 외에 전세계에서 제작된 영화 700여편이 영화제가 열리는 ‘팔레 드 페스티벌’을 비롯해 ‘리비에라’ ‘시네마 러 아케이드’ ‘시네마 올림피아’ ‘시네마 스타’ 극장과 ‘샐 노가 힐튼’ ‘에스페이스 미라말’에 마련된 상영관에서 상영됐다.
’팔레 드 페스티벌’내 레드 카펫이 깔려있는 뤼미에르 오디토리움(경쟁부문에 오른 영화 주 상영관)과 블루 카펫이 깔려있는 드뷔시 극장(주목할만한 시선에 오른 영화들의 상영관)이 칸영화제의 대표적인 상영관이다.
매일 저녁 칸영화제 경쟁부문 출품작과 주목할만한 시선부문 출품작, 비경쟁 공식상영작인 감독주간과 비평가주간에 오른 영화들이 시사회를 개최하는데 세계영화제로부터 작품성을 인정받은 영화 관람을 보다 들뜨게 하는 건 극장 계단에 깔린 레드 카펫을 밟는 ‘계단 오르기’ 행사다.
영화제의 하일라이트는 오후10시30분에 상영되는 영화제 출품작 시사회. 올해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 및 여우주연상 남우주연상을 휩쓴 ‘피아니스트’ 시사회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기이한 성적 취향을 지닌 피아노 선생을 연기해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자벨 위페르가 등이 파진 드레스위로 어깨와 팔을 따라 검은색으로 영어 문신을 하고 등장해 카메라를 고정시킨 것.
늦은 시각에 개최되는 시사회에 입장하기 위해선 남자는 턱시도 정장을 여자는 드레스를 입어야한다. 계단 오른편에 설치된 대형스크린을 통해 감독과 배우들처럼 입장객들이 계단을 오르는 모습이 방영되고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진다. 시사회 티켓을 구하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 보람을 느끼는 순간이다.
▲영화시장 칸마켓칸영화제와 동시에 열리는 칸마켓에는 세계 영화의 3분의 1이상이 선보이며 이중 절반이 세계적으로 첫 선을 보이는 작품들이다. 매년 70여개국에서 엑시비터와 바이어 등 7천여개 영화사가 수백 편의 영화를 들고 칸을 찾는다.
칸마켓이 열린 곳은 팔레 드 페스티벌에 연결된 리비에라 구역과 칸비치를 따라 천막형으로 설치된 인터내셔널 빌리지. 배급사들은 리비에라 구역에 개별부스를 마련해 자사의 영화를 판매했고 인터내셔널 빌리지에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영화기관들이 자국의 영화를 홍보했다.
아시아영화의 열풍을 타고 한국영화진흥위원회에서도 코리아 파빌리온을 마련해 한국영화 홍보활동을 펼쳤고 ‘CJ엔터테인먼트’ ‘시네클릭’ ‘강제규 필름’ ‘시네마서비스’ 등의 영화사들이 리비에라 구역에 마련된 마켓부스에서 자사 영화를 판매하는데 열을 올리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영화제 기간 중 매일 영화제 소식지를 발행한 영화전문 주간지 ‘스크린 인터내셔널’이 한국영화 특집을 다뤘다.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와 배우, 감독 등을 소개했는데 이 잡지는 ‘무사’ ‘친구’ ‘파이란’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수취인 불명’ ‘와이키키 브라더스’ 등을 주목할 만한 한국영화로 꼽았다.
칸 마켓이 끝나는 오후6시께는 선착장을 죽 둘러싸고 있는 보트마다 영화사들이 주최하는 선상파티가 열리고 칸 비치의 여기저기에는 파티입장을 위해 길게 늘어선 행렬을 볼 수 있다. 샴페인과 와인, 맥주가 무료로 제공되는 파티들은 영화인들에겐 빠질 수 없는 사교장.
사진기자들에게 가장 인기를 누렸던 파티는 성인잡지 ‘플레이보이’를 창간한 휴 헤프너의 75세 생일파티. 플레이보이 깃발을 단 보트 앞에서 2명의 바니를 대동하고 나온 휴 헤프너는 짧은 시간 사진기자들을 향해 포즈를 취하면서도 파파로치들이 몰려들 것을 걱정했다.
칸 비치 곳곳에서 열리는 소규모의 파티외에 머제스틱호텔, 노가 힐튼 호텔, 칼튼 호텔의 행사장마다 각 나라별 파티가 펼쳐졌다.
미처 입장하지 못한 사람들로 행사장 입구까지 장사진을 이룬 ‘홍콩 나이트’는 최근 ‘와호장룡’의 흥행으로 무술영화의 치솟은 인기를 여지없이 반영했다. 홍콩 나이트 주최측은 칸 최고의 호텔인 머제스틱 호텔내 행사장을 빌어 성룡(재키 챈)과 유덕화, 홍금보, 주윤발 등 유명스타들을 총동원시킴으로서 중국 영화의 면모를 과시했다.
한국영화진흥위가 야외행사장에 마련한 ‘코리아 나이트’에는 강제규 감독, 이광모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이강복 대표와 마크 윤 부사장 등 한국영화계 유명인사들이 참석했다. 한국영화에 관심을 지닌 각국의 영화사 대표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은 영화사 대표들이 한국음식을 대접하는 모습과 한국내 최고흥행작 ‘친구’ 제작사 직원들의 검은 색 교복 의상이 눈길을 끌었다.
▲포르노 영화제영화제가 벌어지고 있는 칸에서 또 다른 주목을 받은 행사는 ‘포르노 영화제’. 언젠가부터 칸영화제 기간 포르노계의 국제적인 스타들이 모여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더니 아예 고정적인 부대행사로 자리를 잡아버렸다.
칸영화제의 ‘황금종려상’(올 수상작은 이탈리아출신 나니 모레티 감독의 ‘아들의 방’)을 그대로 본따서 ‘황금외설상’을 수상하는 ‘포르노 영화제’는 영화제를 위해 칸을 방문한 이들에게 또 다른 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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