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ook Review
▶ 패스트푸드의 나라-에릭 슐로서
지난 연말 한국에서 이색 행사가 열렸다. 롯데호텔 조리사들이 주최한 ‘세계환경 먹거리 축제’였다. 패스트푸드 기세에 밀려나는 전통적 자연주의 조리법을 되찾아 ‘우리의 건강을 지키고 음식 본래의 존엄성을 되찾자’는 것이 취지였다. 패스트푸드의 기세로 보자면 미국을 당할 나라가 없다. 벽촌 구석구석까지 파고들어 존재를 과시하는 맥도널드, 버거킹, KFC들. 1970년 전후해 급속히 퍼지기 시작한 패스트푸드는 미국인들의 입맛이나 식문화뿐 아니라 농업, 경제, 노동시장 구조까지 바꾸어 놓았다는 것이 연초 출간된 베스트셀러, ‘패스트푸드의 나라’(Fast Food Nation)가 펼치는 주장이다.
패스트푸드는 청바지, 할리웃 영화, 팝뮤직과 함께 미국의 대표적 수출품이 되었다. 국경을 넘어 전 세계적으로 위세를 떨치는 패스트푸드가 미국 내에서 확보한 위치는 확고하다. 공항, 스테디엄, 동물원, 학교, 병원, 비행기등 어디를 가나 패스트푸드 없는 곳이 없다. 패스트푸드가 이렇게 사회 구석구석에 침투한 것은 지난 30년 사이의 일이다.
1970년 미국민이 연간 패스트푸드에 지출한 액수는 60억달러였다. 2000년 현재 패스트푸드 사먹느라 쓰는 돈은 1,100억달러다. 연간 고등교육비로 나가는 돈보다 많은 것이고, 자동차 구입에 나가는 돈보다도 많은 액수다. 연중 어느 날이건 미국의 성인중 1/4은 그 날 패스트푸드 식당에 간다는 통계도 있다.
저자 에릭 슐로서는 처음 롤링스톤스 잡지사로부터 ‘패스트푸드를 통해본 미국’이란 주제로 글을 청탁 받고 취재를 시작했다. 그런데 취재를 해나갈수록 햄버거나 프렌치 프라이가 미국 사회에 끼친 영향이 혁명적이라는 인식이 들면서 책을 쓰기에 이르렀다.
대표적인 예로 저자는 맥도널드사를 자세히 관찰했다. 1968년 미 전국에 약 1,000개소가 있던 맥도널드사는 현재 전 세계에 2만8,000개 식당으로 늘어났고, 매년 2,000개소를 새로 연다. 연간 100만명을 고용하는 미국 최대 고용주이고, 미국의 근로자 8명중 한 명은 맥도널드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광고, 마케팅 지출면에서 미국 최고이며, 장난감을 가장 많이 배포하는 기업 중의 하나이자 사설 어린이 놀이터 운영면에서는 미국 1위다. 그 결과 로널드 맥도널드는 미국 어린이들에게 산타클로스 다음으로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또한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선전을 해서 맥도널드의 황금색 아치는 십자가보다 더 유명한 마크가 되었다.
패스트푸드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48년 LA 인근 샌버나디노에서였다. 2차대전후 자동차 문화를 타고 붐을 일으킨 드라이브 인 식당으로 돈을 번 리처드와 모리스 맥도널드 형제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식당에 도입했다. 공장의 일렬 조립작업(assembly line) 아이디어였다. 햄버거 굽는 사람, 감자 튀기는 사람, 다된 햄버거 종이에 싸는 사람, 밀크 세이크 만드는 사람등 각 분야별로 담당자를 두어 한 사람이 조리의 한 단계씩만을 맡게 했다. 그 결과 전문 조리사가 필요 없게 되었다.
조리를 일련의 단순 노동으로 바꾸고, 메뉴를 포크나 나이프 없이 손으로 먹을 수 있는 음식들로 줄이면서 얻어진 것은 신속한 서비스와 경비 절감이었다. 서민층 가족들이 외식이라는 것을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값싸고 편리하며 맛있는 것 - 패스트푸드의 좋은 점이다.
샌버나디노‘맥도널드 유명 햄버거’(McDonald’s Famous Hamburgers)의 성공은 미 전국에 소문이 났다. 전국의 식당 업주들이 맥도널드를 둘러보고는 똑같은 방식의 식당들을 열기 시작했다. 애나하임의 칼스 주니어, 플로리다의 버거킹, 오하이오의 웬디스, 샌버나디노의 타코 벨등 맥도널드를 본 딴 식당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렇게 등장한 패스트푸드가 붐을 일으키게 된 배경으로는 50년대의 고속도로 건설로 인한 자동차 문화 확산, 여성들의 사회 진출을 들 수 있다. 여성 취업이 늘어나면서 전통적으로 여성이 맡던 일들을 대신 해줄 서비스업의 필요성이 높아졌다. 한 세대 전만 해도 미국에서 식품비의 3/4은 음식장만에 필요한 재료 구입비였다. 지금 식품비의 1/2은 외식비이고 그중 대부분이 패스트푸드 비용이다.
한편 이렇게 패스트푸드가 공룡처럼 힘을 얻어가면서 노동시장과 농업, 축산업에 대단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1970년대 초 농부 권익옹호 운동가 짐 하잇타워는 ‘미국의 맥도널드화’를 경고했다. 패스트푸드 업계의 급성장으로 거대 기업이 식품경제를 지배하면서 소규모 자영업들이 위협을 받는다는 경고였는데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패스트푸드 체인들은 중앙 본부에서 어마어마하게 많은 재료들을 한꺼번에 구입하는 데다 모든 재료가 규격에 맞게 일률적이어야 한다는 필요성 때문에 소수의 대형 식품 공급업체로부터 모든 재료를 구매한다. 예를 들어 아이다호의 프렌치 프라이 공장에서는 하루 24시간 기계가 돌며 매일 100만파운드의 감자를 프렌치프라이로 만든다. 육류 공급 역시 매시간 400마리의 소를 도살하는 초대형 도살장을 갖춘 거대 공급업체들이 장악하고 있다.
결과는 농촌의 중산층 실종이다. 무수한 일반 개인 농장주, 목축업주들이 대기업의 힘에 밀려나 빈곤층으로 전락했고, 살길을 잃어버린 농부들이 자살하는 사태들이 벌어졌다.
아울러 패스트푸드의 확산은 빈부 격차를 심화했다. 패스트푸드 식당은 거의 전부가 전문 기술 없는 저임금 노동력으로 운영된다. 이들중 중간 간부급으로 올라가는 사람은 선택된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은 바닥 임금에 머문다. 패스트푸드 업계는 최저임금 근로자를 가장 많이 고용하는 업종. 인플레를 감안하면 최저임금은 지난 25년 사이 오히려 40%가 떨어졌는데 이는 맥도널드를 선두로 한 패스트푸드 업계의 재력을 동원한 로비와 무관하지 않다. 매일 수백만명이 먹는 패스트푸드, 우리 생활의 일부처럼 굳어진 맥도널드나 버거킹의 매끈하게 포장된 음식 뒤에는 어떤 것들이 숨어 있나, 그 음식들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가. 패스트푸드로 이룩된 문화적 획일화는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등을 이 책은 생각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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