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아가자면 합리성을 추구해야 위기를 모면할 때가 있다. 합리성이란 자기 고집만 부릴 수 없는 상황에는 기꺼이 양보 할 수 있는 아량도 포함된다. 합리성은 어떤 경우엔 자기합리화를 재촉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합리화’는 조심해야 할 심리 처세 중 하나다.
3년 동안 진행된 일이다. 그리고 앞으로 1년은 더 계속돼야 한다. 그 일이란 막내를 아침마다 학교에 태워다 주는 일이다. 막내는 고등학교 11학년이다. 집에서 학교까지 가려면 자동차로 약 30분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막내를 학교에 내려주고 다시 직장에 오려면 서둘러야만 한다. 직장 생활 중 지각은 금물이기에 그렇다.
9시까지 출근해야 하는 오전엔 항상 막내딸과 신경전을 벌인다. 아침 출근시간엔 5분 정도의 시간만 늦어도 교통체증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5분 동안에 수없이 많은 차량이 밀려나온다. 늦어도 오전 7시30분엔 집 앞에서 출발해야 학교에 8시에 도착한다. 이렇게 정시에만 떠나면 학교까지 갔다 차를 되돌려 직장까지 와도 지각은 걱정 없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는 것이다. 막내는 늦게까지 공부하다 지쳐서 자버린다. 매일 아침, 잠에서 깨울 땐 늘 안스럽다. 아침마다, 여학생이라 그런지 준비하는 게 많다. 7시30분에 떠나야 여유를 갖고 운전하는데 항상 40분이나 50분에 떠나게 된다. 그러니 늘 허둥대게 된다.
하루는 집 앞에서 기다리는데 지친 적이 있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막내가 영 안나오는 것이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이날은 학교 앞까지 가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딸이 차에서 내리는데도 ‘공부 잘 하거라’란 짧은 말 한마디가 나오질 않았다. 그 때까지도 화가 풀리지 않은 탓이다. 그날은 지각을 했다.
다음날. 딸은 엄마한테 “전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게 아빠가 데려다 주는 것보다도 좋겠다”는 의사표시를 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유인즉, 아빠가 무서워서 차를 못타고 다니겠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하다. 30여분을 같이 차에 타고 가는데 아빠의 얼굴은 쌍심지가 그어 진 채 아무 말도 없었고 차는 있는 대로 달렸으니 말이다. 경찰한테 잡히지 않고 사고 안 났던 게 천만다행이었다. 다행히 잘 타일러 다시 차로 데려다주게는 됐다.
지난 3년 동안 막내를 학교에 데려다 주며 수 없이 많은 자기합리화를 합리성에 결부시키려 했다. 그 합리화 중엔 「딸을 매일 학교에 바래다주니 얼마나 좋은 아빠인가」 「막내와 매일 아침 데이트를 하니 딸은 시집간 후에도 아빠를 잊지 못할 것이다」 등등. 그러나 막내가 늦어 차가 빨라지면 이런 생각은 언제 있었냐는 듯 사라지고 만다. 지각하지 않아야 된다는 그 일념 때문에 더 속력을 내게 된다.
그러다, 요즘은 자기합리화가 한 단계 더 발전했다. 「지각을 할지언정 딸에겐 절대 화내지 말자」 「지각을 할지언정 절대 과속하지 말자」 등등으로.
왜 이런 자기합리화가 나올 수 밖에 없었을까.
합리화의 변은 이렇다. “딸이 늦는다고 화를 내면 딸의 하루 일과를 완전 그르칠 수가 있다. 막내는 가장 예민한 사춘기를 살고 있다. 사춘기 때 잘못되면 걷잡을 수 없는 일이 발생될 가능성이 많다. 딸의 마음에 상처 주는 말을 해 혹여 딴 마음이라도 품어 학교생활을 충실히 안 한다 면 끔찍한 일이다. 또 딸이 아침에 늦게 나왔다고 과속하다 사고라도 나면 그건 지각하는 것 보다 훨씬 나쁘다.
아니, 나쁜 정도가 아니다. 생명과 직결되는 대형사고도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생명에 관한 문제다. 지각이야 한 번 하면 된다. 그러나 과속하다 사고라도 발생해 딸과 아빠의 생명이 왔다 갔다 한다면 그 차원을 누가 감당하겠는가.” ‘자기합리화’ 쳐놓고는 그래도 그럴듯하지 않은가.
지각에 연연하지 않고 막내를 학교에 기분 좋게 바래다 줄 방법은 없을까. 있다. 아침 기상시간을 조금만 일찍 앞당기는 것이다. 막내와 합의점을 찾아 둘이 다 그렇게 한다면 남은 1년은 과속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이게 바로 합의성의 도출이다. 대화를 통한다면 가능할 것이다.
3년 동안 막내를 차에 태워 학교에 다니며 많은 정이 들었다. 끝까지 좋은 아빠로 남으려면 ‘자기합리화’만 추구할게 아니다. 합리성을 찾아 더 나은 방향으로 나간다면 모두가 좋아질 것이다. 「지각 한번 하면 된다」는 발상은 자기합리화의 구체적 실증이다. 잘못된 것이다. 세상만사 모두에 합리성은 들어있다. 자기합리화가 아닌 합리성 추구야 말로 사고와 위기를 예방할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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