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비교해 볼 때 독특한 점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미국에는 중앙과 지방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많은 나라들은 주로 인구가 많은 대도시를 수도로 삼고 있어 국가의 힘이 수도라는 중앙에 집중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한국은 ‘한국=서울’이라는 등식이 성립할 정도로 모든 것이 지나치게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다.
엄격히 말해서 미국에는 중앙이라는 개념이 없고 오직 여러 지방/지역만 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미국에는 한국에서 말하는 ‘서울’에 해당하는 개념이 없다는 말이다. 그래서 워싱턴에 백악관이 있고 정부관청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거기를 반드시 중앙이라고 하지 않는다. 또 뉴욕이나 LA같이 인구가 많고 도시가 크다고 해서 이를 중앙이라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중앙 개념이 없다는 이 사실이 미국을 튼튼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앙이 따로 없었기에 미국은 일찍부터 전국적으로 균형 있는 발전을 이룰 수 있었다. 전통적으로 정치, 경제, 교육, 문화활동이 어느 한 지역에 집중되지 않고 전국에 분산되어 왔기에 미국에는 도시와 시골의 차이가 두드러지지 않고 동서남북이 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
미국도 연방정부라는 ‘중앙’정부가 있긴 하지만 처음부터 각 주가 독립된 개체로 자치를 시행해 왔기 때문에 다른 나라처럼 중앙정부가 ‘막강’하거나 ‘비대’하지 않다. 미국의 산업도 각 지역이 갖는 자연적, 지리적 특성을 바탕으로 거기에 적합한 분야와 업종이 발전해 왔는데 역시 중앙에 집중되지 않고 지역에 흩어진 채로 발전해 왔다는 것이 미국의 특성이자 강점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대기업이란 대기업은 모조리 서울에 본거지를 두고 있지만 (심지어 ‘포항’제철도 서울 강남에 큰 사옥을 지어 놓고 있듯이), 미국에는 시골에 본사를 둔 기업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이름은 잘 알고 있는 기업들도 그 본사가 어디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살고 있는 중부 일리노이의 블루밍튼이라는 중소도시에 스테이트팜 보험회사의 본사가 있듯이, IBM은 뉴욕주의 아멍크라는 곳에 본사를 두고 있고, 월마트는 아칸소의 벤튼빌이라는 곳에, GE는 코네티컷의 페어필드에, K마트는 미시간의 트로이에 각각 본거지를 두고 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은행들도 원래 각 지역에서 출발해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방은행으로 존속해 왔었다. 시티뱅크나 체이스맨해턴 은행이 뉴욕의 지방은행이었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나 웰스파고는 캘리포니아의 지방은행이었는데 몇년전 은행의 전국적인 영업이 허용되자 전국은행으로 변모하게 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신문사들은 아직도 대부분이 지방신문으로 존재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나 뉴욕타임스, 시카고 트리뷴이나 LA타임스 등은 세계적으로도 권위 있는 큰 신문들이지만 그 이름 앞에 각각 도시 이름을 달고 있는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모두 그 지역의 지방신문들이다.
현재 미국에서 발간되는 전국지로는 USA 투데이와 경제지인 월스트릿 저널뿐이다. 한국처럼 전국지(중앙지)와 지방지가 따로 있는 것도 아닌데다, 또 재미있는 것은 우리 신문들이 하나 같이 ‘xx일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데 비하여 미국의 신문들은 이름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한국의 집중화, 획일화 성향이 얼마나 극단으로 흐르고 있는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한 가지 더 지적해야 할 것은 훌륭한 대학들이 전국의 구석구석에서 오랜 학문적 전통을 이어오면서 미국이라는 힘의 바탕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대도시마다 유명한 대학들이 있는 것은 물론이지만 중소도시나 작은 시골에도 예일, 프린스턴, 듀크, 스탠포드, 코넬 등과 같은 명문사립대학들과 유수한 주립대학들이 자리잡고 있어 미국의 힘을 고루 뻗치고 있다. 대충 서울대학을 비롯해서 ‘서울에 있는 대학’들만 대학으로 여기는 한국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빨리 ‘한국=서울’의 등식에서 벗어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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