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 비둘기는 요긴한 통신병 역할을 했다. 발목에 편지를 묶어서 날려보내면 아무리 멀고 험한 지역이라도 어김없이 찾아갔다. 뛰어난 귀소성 덕분이다. 비둘기의 이런 놀라운 귀소능력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생물학자들은 비둘기와 둥지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고무줄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닐까 추측을 한다. 그래서 비둘기가 궤도를 벗어날 듯 싶으면 고무줄이 둥지 쪽으로 끌어당겨 주는 것이라는 풀이다.
세상에는‘보이지 않지만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줄’이 또 있다. 어머니와 자식 사이를 잇는 줄이다. 자식은 어른이 되어서도 끊임없이 어머니 품을 그리워하고, 어머니는 자식의 아픔과 슬픔을 자신의 것보다 더 생생히 느낄 수 있는 것은 이 신비로운 끈 때문일 것이다.
지난해 이때쯤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한 독자가 전화를 해왔다. 말썽 많은 아들을 지극 정성으로 보살피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어머니’라는 존재가 어떤 것인지를 알겠더라는 내용이었다.
“우리 아들은 굉장히 속을 썩였습니다. 나이 24세에 별이 5개예요. 중학교 때부터 마약에 손을 대더니 감옥을 제집 드나들 듯 합니다. 나는 그런 아들이 미웠습니다. 자동차든 뭐든 집에 물건이 붙어있질 않았거든요. 그런데 아내는 한결 같아요. 지금도 아들이 교도소에 있는 데 아내는 한번도 면회를 거른 적이 없습니다.”
아들을 향한 아내의 포기하지 않는 사랑은 두 사람을 바꾸어놓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우선 아들이 변했습니다. 이젠 마음 잡고 많이 사람이 되었어요. 다음은 내 마음이 변했습니다. 전에는 아들이 밉기만 했는데 이젠 ‘그놈도 내 아들이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의 아내는 기독교인이라고 했다. 기독교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면 불교는 자비심을 가장 중시한다. 자(慈)는 기뻐하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 마음, 비(悲)는 괴로워하는 자식을 보는 어머니 마음 같은 상태를 말한다. 큰 보자기 같아서 모든 것을 감싸안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사랑이고 자비심이며 그 추상명사들이 현실에서 풀어 보여지는 것이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한민족 역사에서 여성이 가장 대우를 받았던 시기는 신라시대였다. 신라에 여왕들이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신라에는 여성 숭배사상이 있었다. 해를 생명력의 원천으로 숭상하면서, 인생에서의 해는 여성이라며 소중히 여겼다. 생명을 이 세상에 내는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성이 아기를 낳으면 전에 지은 모든 죄가 소멸되고, 아기를 낳음으로써 신이 된다는 것이 민간의 믿음이었다. 자기를 버리는 희생으로 자식을 기르는 어머니 마음을 신의 마음으로 이해한 것이다.
자식을 위해 자신을 버린 신라의 어머니로는 원효의 어머니가 있다. 원효의 어머니는 산길에서 아들을 낳고 죽었다고 한다. 아기를 낳고 보니 갓난 생명을 감싸줄 것이 없어서 자기의 옷을 벗어 아기를 싸주고는 자신은 그 후유증으로 목숨을 잃었다. 아기를 살리느라 자기 몸을 버린 것이었다.
이런 희생적 어머니들 이야기를 들으면 요즘의 엄마들은 마음이 불편하다. "나는 자식을 위해 뭘 버렸는가. 내가 너무 이기적인 엄마는 아닐까"하는 가책을 대개의 엄마들은 가지고 있다.
가족을 위한 희생과 헌신이 여성이 사는 유일한 길이었을 때 여성들은 고생은 되어도 갈등은 없었다. 여성에게 자아 실현이라는 새로운 길이 열린 지금 어머니들은 내적 갈등에 시달린다. 자기 희생적 ‘모성’과 자아 실현적 ‘여성’ 사이의 갈등이다. 자녀들에게 삶 전체를 투자하며 모성에 충실하자니 사회에서 뒤쳐진 느낌이고, 성취감을 위해 커리어를 갖자니 자녀들에 대한 걱정과 미안함으로 항시 불안하다.
’자기 희생’이든 ‘자아 실현’이든 어느 쪽이 자신에게 행복을 주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엄마가 행복해야 자녀들도 행복해질 수가 있다. 24시간 자녀와 같이 하는 것이 반드시 최선의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끈 저편 아이의 기쁨과 아픔이 내게 생생히 전해오는 가, 자녀를 넉넉히 감싸안을 수 있는 큰 보자기 같은 사랑이 내게 있는가를 어머니들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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