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에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라는 개념이 있다고 한다. 사적 자아란 자신 스스로가 "자기는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는 모습이고, 공적 자아란 타인들이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고 여기는 모습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의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가 가까울수록 그는 자신을 잘 아는 사람이고, 거리가 멀수록 자신을 잘 모르는 사람이다. 따라서 두 자아 사이의 거리는 가까울수록 좋다.
이 같은 개인적 차원의 개념은 그대로 집단적 차원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한인 커뮤니티라는 하나의 집단으로서 우리 스스로가 "우리는 어떤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사적 자아가 있고, 타인종이 "한인은 어떤 사람들"이라고 여기는 공적 자아가 있다는 얘기다.
과연 한인 사회의 두 자아 사이의 거리는 어떨까.
우선 우리의 사적 자아는 "근면성실하며 교육수준도 높고 자녀 교육을 지상명제로 삼는 모범적 소수계로서 가히 ‘제2의 유대인’이라 불릴만한…" 정도 아닐까. 이 부분은 신뢰할만한 객관적 조사가 지금까지 없었기에 확실하게 무어라 말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공적 자아 역시 어떤지 잘 모르겠으나 대체로 어떨 것인가를 밝혀주는 조각들은 여기 저기 있다. 할리웃 영화에서 "문화란 없이 돈만 아는 리커스토어 주인"으로 정형화돼 그려지는 모습도 좋건 싫건 한 조각의 공적 자아다. 그런데 이 공적 자아는 왜곡된 것이라며 항변이라도 하겠지만 한인의 웰페어 수령 현황이라는 움직일 수 없는 통계가 그려내는 공적 자아에 대해서는 달리 할 말이 없다.
지난 3월말 연방 사회보장청이 발표했던 한인들의 SSI(연방정부 생계보조비) 수령현황 집계를 두고 하는 얘기다. 비시민권자를 대상으로 집계된 이 통계에 따르면 한인들의 SSI 수령 규모는 1996, 98, 99년 계속 9위였다. 결코 명예롭지 않은 수치다.
이 통계가 밝혀준 것으로써 순위만큼 혹은 그보다 더 의미 있는 또 다른 현상은 한인들의 SSI 수령 이유다. 전국 SSI 수령자의 수령 이유를 보면 ‘노령:병환’이 약 ‘1:1’이다. 그러나 한인 수령자는 ‘노령:병환’이 약 ‘3:1’이다. 말하자면 한인들은 늙어서 일을 하지 못한다면서 정부의 생계 보조비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비율이 다른 인종들에 비해 1.5배나 된다는 얘기다. 이 같은 통계가 한인사회의 웰페어에 대한 잘못된 인식, 나아가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의무와 권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점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이 같은 현상의 압권은 A라는 한인 할머니의 경우다. 이 분은 경제적으로 상당히 부유한 분인데 외견상 재산이 없는 것처럼 해놓고 SSI를 받는 것은 물론 노인아파트까지 배정 받아 B라는 다른 가난한 한인 할머니에게 세를 놓고 렌트 조로 매월 300달러씩 받는다. 이 부자 할머니가 SSI를 받는 것도, 노인 아파트를 받은 것도, 그것을 3자에게 세놓는 것도 모두가 불법이다.
이에 못지 않게 황당한 것은 한인들의 SSI 수령 실태와 문제점에 대한 본보 보도(4월2일자) 후 뉴욕에서 걸려온 한 통의 전화다. 뉴욕에 있는 한 한인 노인복지단체 관계자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힌 중년의 이 한인 남성은 "한인 언론이 한인들의 SSI 수령 실태를 이런 식으로 보도하면 연방정부가 이민자들에 대한 SSI 지급을 끊거나 줄이는 명분으로 사용한다"면서 "언론이 이 같은 문제를 보도할 때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항의성 충고(?)를 해왔다.
이쯤 되니 우리의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는 결코 가깝다고 할 수는 없겠다. 개인으로서 또 집단으로서 사적 자아와 공적 자아의 거리,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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