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타크루즈에 기독교인들의 수양원인 ‘세계 금식기도원’이 있다. 산 속 깊숙이 위치한 기도원은 누구든지 하나님과 대화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문이 열려 있다. 전해들은 이야기인데, 이 기도원은 한국 여자 한 분의 비전으로 시작되었다 한다. 샌호제에 살던 그 여자 분은 갑작스레 남편의 죽음을 당하고 앞이 캄캄하였을 때 기도원을 찾아 한국까지 가야 하였다. 샌호제 근처에 기도원을 세우는 비전을 가지고 한국에서 돌아온 후에 샌타크루즈 산 속에 기도원을 세웠다 한다. 놀라운 이야기는 이처럼 크고 아름다운 산 속에 가진 돈 없이 기도원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렇게 하였을까? 물론 기도와 금식을 통하여서였다. 그래서 이 산의 이름이 ‘기도와 금식의 산’이다.
나도 그 기도원에 몇번 가본 적이 있다. 레드우드 숲 속에 감추어진 캐빈 속에서 마음놓고 기도할 수 있고,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걸으면서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는 영혼의 안식처로 안성맞춤이다. 호화 호텔과는 거리가 멀다. 캐빈은 난방장치도 되어 있지 않고 가구도 없다. 슬리핑백을 펴고 누우면 한 사람 정도 잘 수 있는 작은 공간이다. 그러나 기도원은 육체적으로 불편한 점을 보상해 주고도 남기에 나는 기도원을 ‘영혼의 호텔’이라고 부른다.
지난 겨울, 인생의 고뇌와 번민을 가득 안고 어디론가 혼자 여행을 떠나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아들은 기도원을 소개받고 산으로 올라갔다. 아내는 아들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기도원에 전화를 걸었던 모양이다. 여자 전도사에게 아들의 모습을 설명하며 미국 청년이 기도원에 있느냐고 물었다. 여자 전도사는 "아, 사이먼 어머니세요?" 하면서 아들을 한참동안 칭찬하더라고 아내가 전해 주었다. "우리 아들 사이먼을 이야기하는 것이 맞아?" 하고 아내에게 물었다.
사이먼이 산에 다녀온 후에 아내가 기도원에 가겠다면서 예약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아내를 인식하지 못하는 여자 전도사에게 한달 전에 그 곳에 간 청년을 기억하느냐고 하였더니, "아, 사이먼 엄마이군요" 하여서 아내는 웃으며 "네 맞아요. 사이먼 엄마예요" 하였다.
우리가 기도원에 도착하였을 때는 늦은 밤이었다. 플래시 라이트를 비치며 예약된 캐빈으로 갔더니, ‘사이먼 아버지 방’이라고 써있는 쪽지가 캐빈에 붙어있었다. 아내가 자기 캐빈에서 쪽지를 떼는 것이 보였다. ‘사이먼 엄마의 방’이라고 적힌 쪽지였다.
나의 아이덴티가 나의 아들로 인하여 확인되는 것을 처음 경험하였다. ‘사이먼 아버지’라는 말이 낯설었다. 더군다나 영어로는 더 이상했다.
’Simon’s Father’이라는 말을 좀 더 깊이 생각하고 보니, 관계를 표현하는 정다운 말이다. 예를 들어 처 동생의 이름이 현희이다. 미국 사람들은 그녀를 낸시라고 부르는데, 한국 사람들은 그녀를 ‘성경이 엄마’라고 부른다. 아내 역시 친지들이 부르는 이름이 있다. ‘큰딸, 큰언니, 큰누나" 등등 관계를 나타내는 여러 종류의 호칭이 있다. 한국 전통적인 풍습으로 특히 여자의 호칭은 관계적인 호칭으로 불리는 것 같다. 결혼 전에는 ‘아버지의 딸’, 결혼을 한 후에는 ‘남편의 아내’, 자녀를 가진 후에는 ‘아들의 엄마’로 불린다고 배웠다.
미국 여자들을 이런 식으로 호칭한다면 모욕당하였다고 야단일 것이다.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나타내 주는 이름이 있는데, 관계를 강조하는 호칭으로 대치되었을 때 ‘나’가 이차적으로 취급되기 때문이다. 미국 풍습과 달리 한국식은 오히려 ‘현희’라고 처제를 부르는 것보다’성경이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예의라고 아내가 일러주었다.
’Simon’s Father’이라고 쓴 쪽지를 나의 서재 문에 붙여 놓았다. 그리고 오가면서 그 쪽지를 볼 때마다 나는 미소를 머금는다. 든든한 아들을(한때는 청개구리였지만) 볼 때마다 내가 사이먼의 아버지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집을 방문한 손님들에게 나는 쪽지에 적힌 뜻을 설명하여 주며 사이먼 아버지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말해 준다. 독자들도 나와 만날 때 닥터 포어먼, 또는 크리스라고 부르는 것보다 나와 아들의 관계를 다시 한번 확인하여 주는 정다운 말, ‘사이먼 아버지’라고 부르면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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