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D-13 > 정의로운 지식인 <3000마일> 못말리는 갱단 두목
케빈 코스트너가 두 얼굴로 다가온다. 우리에게 익숙한 정의의 지식인과 처음으로 맡은 양심이라고는 털끝만치도 없는 악당. 어느 쪽일 더 잘 맞을까.
< D-13 >
<노 웨이 아웃> <언터처블> <늑대와 춤을> < JFK > <보디가드> <포스트 맨> . 야구와 골프영화 몇 편을 제외하면 영화에서 케빈 코스트너는 미국의 정의를 상징한다. 결코 호들갑스럽지 않은 용기를 가진 품위와 타협하지 않는 지성.
< D-13 >(로저 도날드슨)은 < JFK > 에 이어 그가 존 F 케네디 대통령(브루스 그린우드)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번 입증한 영화이다.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자 특별 보좌관인 케네스 오도넬로 나오는 그는 로버트 케네디(스티븐 컬프)와 삼총사를 이루며 1962년 10월의 쿠바 미사일 위기를 수습한다.
백악관에서 시사회까지 가진 < D-13 >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만큼 체계적이고 사실적이다. 그 해 10월16일, 미국 U-2 정찰기가 쿠바에서 핵미사일기지가 건설되고 있음을 포착한 후 13일 동안 벌어지는 위기와 긴장 속에 백악관의 대응, 미국 정치권의 갈등, 공포에 떠는 국민의 반응 등을 때론 뉴스화면처럼, 때론 고뇌하는 정적인 영상으로 정리해 간다. 영화는 필리핀 정글에 쿠바 미사일 기지를 세우고, 미국 공군본부도 세트로 지을 만큼 사실성에 중점을 두었다. 배우의 말이나 행동까지 케네디 형제와 비슷하다.
실화와 실존 인물을 토대로 한 영화는 상상력이 끼어 들 여지가 적다. 때문에 < D-13 >은 사건을 치밀하게 재구성하고, 편집하는 방식을 통해 영화적 긴장감을 살린다. 그리고 그나마 셋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오도넬을 통해 단순한 사건 다큐멘터리가 아닌 영화적인 상상력을 발휘한다. 오도넬에게 주어진 과제는 두 가지. 하나는 대통령 형제의 정책결정에 기여하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냉철한 판단력. 여기에 군부의 강경파에게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하는 철저함, 케네디 형제를 영웅으로 부각시키는 역할까지 맡았다.
또 하나는 남편으로서, 보통 사람으로서 고뇌와 심리 표현. 영화는 이따금 그가 혼자일 때, 잠깐씩 자기 시간을 가질 때 아내와 겪는 갈등, 인간으로서 엄청난 재앙에 대한 두려움을 보여준다. 그러나 케빈 코스트너는 ‘공적’인 인물일 때가 자연스럽고 멋지다.
개인적인 감상은 그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양이다. 26일 개봉.
/< D-13 >에서 케빈 코스트너. 케네디 대통령의 특별보좌관이다.
<3000마일> 아무래도 케빈 코스트너는 천성적으로 악당은 못 되는가 보다. 갱단 두목으로 라스베이거스 호텔 카지노를 털고, 그 돈을 혼자 차지하기 위해 술수를 부리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악랄하고 거칠 것 없는 폭력을 휘두르지만 <3000마일>(19일 개봉)에서 그의 모습은 어쩐지 어색하고 낯설다. 고정관념에 따른 혼란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연기 탓이 더 커 보인다. 과장된 그의 악당 기질은 몸에 배지 않았고, 괴팍한 행동은 날카로운 긴장감 보다는 희화적인 느낌을 준다.
<3000마일>에서 그는 처음으로 악당 머피가 됐다. 그는 다섯명의 ‘엘비 파이브’를 이끄는 두목이다. ‘엘비 파이브’란 이름은 머피 스스로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생아라고 할만큼 킹의 추종자이기 때문. 그는 번쩍거리는 킹(엘비스 프레슬리) 복장에 구레나룻까지 길렀다. ‘2001 인터네셔널 엘비스 대회’가 열리는 호텔에서 320만 달러의 거금을 강탈한 뒤 배신과 폭력을 일삼는다. 거친 말투, 어린 아이까지 인질로 삼아 동료인 마이클(커트 러셀)과 벌이는 마지막 단판까지, 마치 1960년대 ‘이지라이더’ 의 주인공처럼 로큰롤과 총의 향연을 연출한다.
그러나 세상에 대한 저주도, 사회에 대한 환멸과 자기 파괴도 어설픈 서부극의 변주에 머물렀다.
머피는 들떠있고 그의 맞수인 마이클의 감정대응도 자연스럽지는 않다. 둘 사이에 변수로 등장하는 <스크림>의 여기자 커트니 콕스 역시 악녀(팜므 파탈)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평범한 한 아이의 어머니로 주저 앉는다.
<3000마일>은 엘비스에 오마주(숭배)이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서른 다섯살의 신인 데이안 리텐스타인은 데뷔작을 통해 60년대 로큰롤 스타인 그의 스타일로 한 편의 갱스터 무비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화려한 편집과 시각효과가 단조롭고 상투적인 구성까지 가려주지는 못한다. 케빈 코스트너가 왜 이런 영화로 악역을 시작했을까.
/케빈 코스트너는 <3000마일>에서 엘비스 프레슬리를 존경하는 악당이 됐다.
이대현기자 leedh@hk.co. 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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