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장바이츠와 오천련, 중국의 장쯔이. 일본은 사이고 쇼지로, 고가 유코, 에노키 다카아키, 우에미야 마사코 등 10여명이 있다.
’성원’의 장바이츠는 상영중인 한국영화 ‘파이란’(감독 송해성)에서도 특유의 슬프고 가슴 아픈 멜로 연기를 유감없이 발휘했고, ‘와호장룡’ 으로 올해 아카데미영화제 무대에 시상자로 섰던 장쯔이도 60억원짜리 대작 ‘무사’(감독 김성수) 촬영을 끝내고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오천련은 일본 여배우 고가 유코와 함께 ‘비너스’ (감독 이승수)에 출연하고, ‘젠 엑스캅’ ‘동경공략’으로 이미 홍콩까지 진출한 일본 톱스타 사이고 쇼지로는 장동건과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를 찍고 있다.
’싸울아비’(감독 문종금)는 하에노키 다카아키와 우메미야 마사코가 주연을 맡았다. 다치바나 미사토와 오스기 렌은 ‘순애보’로, 홍콩의 리밍은 ‘천사몽’으로 이미 한국영화에 데뷔했다. 몇 년전만 해도 꿈도 꾸지 못했던 아시아 톱스타들의 ‘한국영화 사랑’ 이다.
<한국영화가 달라졌기 때문에> 지난해 봄 김성수 감독은 장쯔이를 캐스팅하기 위해 ‘와호장룡’ 을 찍고 있는 그를 만났다. "일단 부딪쳐 보자" 는 생각이었다.
장쯔이는 김성수 감독을 알고 있었고 ‘폭발력과 힘이 있는 감독’ 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에서 열린 한국영화제에서 폐막작으로 상영한 ‘태양은 없다’ 를 본 친구가 그렇게 말해주었다고 했다.
뜻밖이었다. 그러면서 장쯔이는 "한국의 좋은 감독과 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장바이츠도 비슷했다. 그가 영문 시나리오를 보고 ‘파이란’ 출연을 결심한 이유의 하나가 한국영화에 대한 달라진 인식 때문이었다.
그는 홍콩 평론가들이 극찬한 ‘8월의 크리스마스’ 를 봤고, 홍콩과 일본에서 흥행에 성공한 ‘쉬리’ 이야기도 했다.
’파이란’ 제작사인 튜브엔터테인먼트의 황우현 이사는 "사전에 이런 것들이 없었다면 아무리 좋은 소재, 시나리오로도 캐스팅 하기 어려웠을 것" 이라고 했다.
결국 한국영화의 완성도, 해외에서의 평가와 흥행 성공이 아시아 톱스타들을 한국영화로 오게 한다는 것이다.
한국영화시장이 큰 것도, 최근 영화자본이 아시아 어느 나라보다 풍부해져 블록버스터나 다양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와타세 쓰네히코 주연의 ‘미션 바라바’ (감독 사이토 코이치)처럼 최근 일본이 배우 출연과 함께 공동제작에 적극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제는 아시아시장이 필요하다> 국내 영화사 입장에서 보면 커진 제작비 부담으로 이제 더 이상 국내 시장으로는 수지를 맞추기 힘들기 때문에 아시아 시장, 나아가 세계 시장을 겨냥한 제작이 필요해졌다. 당연히 소재부터 아시아시장을 겨냥한 것들이 많아지고 있다.
’파이란’은 일본 원작(아사다 지로의 ‘러브 레터’)과 한국제작에, 홍콩 배우이다.
’무사’ 는 중국을 무대로 고려말 사신들의 이야기이고,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는 미래 한일 양국의 경찰이, ‘싸울아비’ 는 백제 무사와 일본 사무라이들이 펼치는 액션물이다.
이 같은 전략은 당장 수출에서 효과를 보고 있다. ‘파이란’ 의 경우 제작도 하기 전에 중국 홍콩 대만 필리핀 싱가포르 등에 30만 달러를 받고 수출했다.
’쉬리’로 알려진 최민식과 장바이츠의 유명세를 감안하면 수출로 100만 달러를 벌어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것이 제작사의 분석. ‘무사’ 역시 중국어권 4개국으로부터 제작비의 절반 가까이를 벌어 놓고 시작했다.
제작사인 우노필름측은 ‘와호장룡’ 의 북미지역의 흥행성공과 아카데미상을 수상하면서 세계적 스타로 부상한 ‘장쯔이 효과’까지 기대하고 있다.
벌써 미국 메이저사가 세계배급을 하겠다는 제안을 해오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2009 로스트 메모리즈’ 도 일본 투자사인 스페이시 샤워로부터 5억원을 투자 받았으며, 한일 동시 전국개봉까지 노린다.
<철저한 준비가 성공의 길> 한국영화가 아시아 스타 캐스팅에 적극적인 데는 터무니 없이 많은 국내 배우들의 출연료, 그나마 몇몇 영화사가 그들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다.
국내 톱스타 출연료인 2억원이면 장바이츠나 장쯔이 같은 아시아 톱스타들을 쓰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화에 대한 애착이나 연기력은 오히려 더 낫다는 게 감독이나 함께 공연한 배우들의 한결같은 평가이다.
송해성 감독은 "장바이츠가 한국어 대사를 현장에서 외울 만큼 집중력이 뛰어나다"고 했고, ‘무사’의 주연배우 정우성은 "한국에도 장츠이처럼 탄탄하고 안정된 연기를 하는 여배우가 있었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사이고 쇼지로는 일본문화에 낯선 감독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등 적극적이다. 이런 것들이 국내 배우들에게도 자극이 돼 전반적인 연기의 수준을 높이는 역할도 해준다.
물론 다국적 캐스팅이 무작정 좋은 것만은 아니다. ‘천사몽’처럼 언어와 문화의 차이가 작품의 완성도를 떨어뜨릴 수 있고, 제작관행의 차이가 자칫 연기력의 부실로 이어지고 소재나 성격에 관계없이 단지 배우의 이름만 노린 3류 무국적 영화가 양산될 우려도 있다.
황우현 이사는 "꼼꼼히 기획하고 오랜 시간 준비한다면 무모한 캐스팅도, 부자연스런 연기도 막을 수 있다" 고 말했다.
아시아 스타들의 진출로 한국영화는 인력이 풍부해졌고, 기획이 다양해졌으며, 시장도 넓어졌다.
아시아 영화도 유럽처럼 제작사와 배우와 감독의 국적이 다른 다국적 시대가 됐고, 그 중심에 한국이 서게 됐다. 수준 높아진 한국영화의 힘이다. 결국 영화환경의 변화는 영화가 만든다.
이대현 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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