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해 돌아온 남편이 우울한 소식 한편을 전해준다. K형네가 이혼이 마무리 단계에 이르렀다는 소문이란다. 소문은 어디까지나 소문일 뿐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이번엔 진짜란다. 번번이 이혼 소리가 들릴 때마다 진짜인 줄 알았다. 그러니 이번에도 우리는 진짜로 알고 있을 테니 대강하고 원 위치로 돌아가길 바랄 뿐이다.
내가 주인공인 우리 가정을 위시해서 정말 이혼의 위기 없이 아기자기 행복만을 제조하면서 사는 가정이 얼마나 될까? 어쩌면 상상외로 많은 가정들이 오순도순 재미있게 살고 있을 것도 같다. 따지고 보면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지 않을까.
이 세상에 자신과 똑같은 사람을 찾을 수가 없는 것쯤은 우리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물론 외모야 다르지만 성격이나 생각하는 방향이 적어도 비슷한 사람은 있을 것 같은데, 만약 그렇게 자신과 같은 종류의 사람이 있다손 쳐도 막상 어떻게 찾아낸단 말인가?
나의 진짜 소망은 언제나 방글방글 웃으며 남편에게 애교 떨며, 남편이 순간 순간을 행복의 정점을 느끼며 살도록 해주고 싶다. 자라며 보고 배운 것이라곤 항상 밝은 미소와 무조건 순종하며 사시던 엄마의 삶의 태도뿐이다. 학교에서도 이담에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어떻게 하고 살아야 된다는 것은 가르치지 않았다. 그런데 은연중에 내 맘에 자리한 아내라는 위치의 역할은 행복 제조기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면 된다고 쉽게 생각했다. 결혼을 한다는 것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우선 아빠의 근엄한 보호와 감시 아래서 벗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신나는 일이었나. 밤늦도록 둘만 있을 수 있고, 그보다 더, 밤을 아예 둘이 지낼 수 있다는 묵인이 숨통을 확 터놓지 않았던가.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것도 해주고 싶고 뭐든 내 맘대로 내게 있는 것 다 주고 싶은 사람과 함께 산다는 그 자체가 행복이니 까짓 내 속에 있는 간이라도 빼주지 못하랴. 신혼 때 이런 마음 한번쯤 안 가져본 사람 있겠는가.
허기야 그렇게 신나 하던 나도 벌써 몇 번이나 이혼하고 싶다고 하늘에 부르짖었나 고백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렇게는 살고 싶지 않다. 혼자 자다가 무서워서 진땀을 빼며 밤잠을 설쳐도 차라리 혼자 사는 것이 백번 나을 것이라고 안간힘도 써본다.
문제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한번도 생각은 안 하면서 결과적으로 남편이 내게 소리 지르고 야단치고 비난하고 있다는 결과만이 내 앞에 나동그라져 있곤 한다.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느냐는 반문만이 고작이다. 그것도 혼자말로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한다. 그러니 속이 편할 리 없고 얼굴에 방실방실 웃음을 띨 리도 없다. 밥상을 차려도 퉁퉁거리며, 곱지 않은 행동이 며칠이고 이어진다. 이렇게 쌓이기 시작한 원망과 불편함이 급기야는 미움으로 연결되며 따뜻했던 마음은 식어 얼음 조각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함께 사는 것이 지겨워지고 이럴 바에는 이혼하자는 성급한 마음이 들곤 했다. 도무지 이 남자는 시비 걸기 위해 나랑 결혼을 했나 싶게 사사건건 모두 못마땅해 야단이다. 무엇을 사겠다면 안 된다며 반론을 펼친다. 귀찮은 생각에 그냥 사버리곤 말을 안 한다. 그러면 나중에 알았을 때 의논도 없이 샀느냐고 난리가 난다.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시어머니 시집살이도 아닌데.
나는 너무 고상해서 그런 문제들을 말로 따지고 설명을 구하고 하지 않았다. 적어도 우린 배운 사람들인데 유치하게 그러고 살아야 하느냐고 입을 다물곤 했다. 그래서 언제나 일방적으로 남편이 화내고 남편이 소리지르고 남편이 잘난 척 하는 걸로 끝낸다.
그러면서 살자니 사는 게 오죽하겠나. 밖에선 활짝 핀 얼굴에 만인에게 웃음을 주는 천성이 밝은 여자가 집에선 입에는 지퍼를 달아 닫고, 얼굴은 무표정, 겨우 최소한의 의무만을 이행하면서 아침만 기다리며 사는 생활이다. 아침이면 남편은 출근을 할 것이니 떨어져 있게 되는 시간만 고대하는 꼴이다.
그러다가 하루는 죽기를 결심하고 남편한테 따져 물었다.
"내가 자기 딸도 아니고 우린 같은 선상에 있는 인격을 갖춘 사람들인데, 자기가 나한테 하는 건, 자식한테도 그러면 안 되는 식으로 나를 대하니까 난 자기랑 살기 싫어. 내가 뭐 죽을죄를 짓는 것도 아니고 의논을 안 하면 안 한다고 야단, 하면 번번이 반격, 나보고 어떻게 하란 말야? 아무래도 난 너무 부족해서 자기 짝이 못되나 본데 사실은 노력하고 싶지도 않아. 나도 밖에 나가보면 정말 괜찮은 여자거든.”
말을 안하고 속으로만 이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보다는 훨씬 마음이 시원해져서 이 정도면 이혼 안 하고도 살만 하다라고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내가 본래의 밝은 성격으로 돌아가려면 남편의 부드러움이 우선이라고 우기고 있다. 처방전은 자가진단으로 받았는데 치료를 담당한 남편의 역할이 아직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
K형네도 무슨 처방전이 있긴 있을 텐데 아무도 주어진 역할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하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이혼이란 해봤자란 걸 우린 모두 알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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