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축구의 일그러진 초상
▶ 높은 인기 뜨거운 열기탓... 치유도 어려워
’축구황제’ 펠레(브라질)는 축구를 일컬어 "아름다운 경기"라고 했다. 축구를 예술의 경지까지 끌어올린 펠레의 플레이는 아름다움을 넘어 환상이었다. 펠레만은 못해도 최소한 그의 명성에 누를 끼치지 않는 수퍼스타들의 명맥은 오늘날까지 끊기지 않고 있다. 프란츠 베켄바워(독일)·요한 크루이프(네덜란드)·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호나우도(브라질)·지네딘 지단(프랑스) 등등.
이같은 별들의 릴레이와는 별개로 축구 자체는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승부욕이 지나치다 못해 그라운드 안팎에서 ‘축구라는 이름의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축구의 살풍경한 몰골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은 잊을만 하면 불거지는 대형 참사. 때묻은 사고일지를 뒤적일 필요조차 없이 지난달만 해도 11일엔 남아공의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축구경기를 둘러싸고 팬들이 광란의 도가니에 빠져드는 바람에 무려 43명이 목숨을 잃더니 엊그제 29일에는 콩고의 남부도시 루붐바시에서 팬들이 충돌해 60명 안팎 사상자를 냈다.
축구의 종주국이자 사커훌리건의 종주국 잉글랜드의 일로만 여겨졌던 사커폭력은 돌림병처럼 브라질·아르헨티나 등 남미의 경기장 안팎까지 피로 물들이더니 축구의 신대륙 아프리카까지 돌림병처럼 덮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중국 경기에 패한 중국 홈팬들이 화풀이 난장판을 벌여 양국 외교문제로까지 비화하는 등 아시아권 역시 축구광풍에서 비켜나 있지 않다. 부드러움의 대명사처럼 인식된 프랑스 축구도 거친 파고에 올라탄 지 오래다. 프랑스의 명문클럽 생제르망이 지난 3월 터키 갈라타사라이와의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관중폭력 방치책임으로 59만2,000달러의 벌금을 문 것은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더욱 심각한 현상은 인종주의와 승부욕의 ‘잘못된 만남’으로 빚어지고 있다. 주로 백인선수 또는 백인관중들이 흑인 등 유색인 선수를 인종적으로 조롱하고 괴롭히는 형태다.
오슬로의 한복판에서는 최근 노르웨이인+아프리카인 혼혈의 15세 청소년 선수가 자신을 조롱하는 또래들과 입씨름을 하다 그 자리서 칼에 찔려 숨지는 사건마저 발생했다. 지난 3월 알바니아에서 벌어진 21세이하 대표팀간 경기도중 잉글랜드 흑인선수가 볼을 잡을 때마다 알바니아 관중들이 심한 야유를 퍼붓어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기도 했다. 또 이탈리아 프로리그에서 활약하는 유고 출신 수비수 사니사 미하일로비치(라찌오)는 잉글랜드 아스날과의 경기때 흑인선수에게 인종비하 발언을 늘어놓다 2게임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유럽축구연맹(UEFA) 레나르트 요한손 회장은 "인종주의가 도처에서 추악한 몰골을 드러내고 있다"고 개탄하며 강력대처를 호소하고 있지만 상대의 화를 돋궈 페이스를 망가뜨리는 데는 인종발언이 매우 효과적이어서 쉽사리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승부조작과 ‘선수고용’을 둘러싼 곪은 상처 역시 나을 날이 드물다. 지난 95년 리버풀의 골키퍼 브루스 크로벨라 등 4명이 승부도박사들로부터 돈을 받고 일부러 져줬다는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서야 했다. 82년 스페인월드컵 득점왕 파올로 로시(이탈리아)는 승부담합 ‘누범’이다. 지난달에는 이탈리아의 아틀란타팀 선수 4명과 피스토이에세팀 2명에게 최고 1년까지 자격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지난해 8월 이탈리안컴 대회때 ‘짜고 찬’ 행각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또 싱가포르에서 활약하던 독일 선수는 같은 혐의로 감방생활을 하고 있다. 96년 해고장과 함께 1년 자격정지를 받은 아스날의 조지 그래햄과 같이 감독이 선수의 이적을 둘러싸고 뒷돈을 받아챙기는 사례는 이제 서유럽을 넘어 크로아티아 등지에서도 숱하게 벌어지는 스캔들이 돼버렸다.
이탈리아검찰은 승부에 눈 먼 구단들이 브로커와 연계해 중남미계 선수들에게 위조여권을 만들어준 혐의를 잡고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고 있는가 하면 벨기에 의회는 얼마전 사기꾼들의 말에 속아 유럽에 왔다가 저임금 공장노동자나 부랑아로 전락한 ‘축구집시’들이 5,000여명에 달한다는 보고서를 발표하며 "새로운 형태의 인신매매가 횡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축구신동’ 마라도나까지 집어삼킨 마약의 손길은 돈많은 사커머신들을 끊임없이 유혹하고 있다.
축구의 일그러진 초상은 바로 축구의 인기가 워낙 높은 데서 비롯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집계로는 지구촌 2억4,000만명이 축구를 즐기고 축구구경에 기꺼이 시간과 돈을 축낼 태세를 갖춘 축구인들이다. 방송카메라가 집중되고 뭉칫돈이 오가는 단일종목 최대마켓이 축구다. 높은 인기만큼 승부열기는 뜨겁다. 축구병은 그 뜨거운 열기에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친다. 치유가 어려운 까닭도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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