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엇갈리는 평가 ‘부시취임 100일’
▶ 낙태기구 지원 중단, 종교단체 활동 확대, 감세 밀어붙이기등 파워기반 보수층 의식
언론이 신임 대통령의 ‘취임 후 첫 100일’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미국이 대공황의 수렁에 빠져 허우적대던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시절부터였다. 국가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결단과 행동’을 강조, 공화당 현역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에게 압승을 거둔 루즈벨트는 취임 후 첫 3개월 사이에 10여건의 뉴딜정책 기본법을 마련해 시행함으로써 미국을 경제위기에서 끌어올렸고, 이때부터 신임 대통령의 첫 100일은 새로운 행정부의 효율성과 국가 최고 지도자의 국정운영 능력을 엿볼 수 있는 평가자료로 자리 잡았다. 지난 1월20일 취임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9일로 취임 100일을 맡는다. 여론의 저울대에 올려진 ‘부시의 100일’을 달아본다.
조지 워커 부시 대통령의 100일은 ‘우측통행’으로 요약된다. 그의 보수적 성향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100일이었다는 얘기다.
민주당 정권을 힘겹게 밀어내고 백악관에 입주한 그가 제일 먼저 취한 조치는 낙태시술을 하거나 인공 임신중절을 옹호하는 국제단체들에 대한 연방지원금 중단이었다. 취임 후 두번째 주로 들어서면서 부시는 종교에 기초한 커뮤니티 자선사업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셋째 주에는 의회에 1조6,000억달러 규모의 감세안을 제출했으며 넷째 주에는 이라크에 대한 폭격을 감행했다.
적어도 취임 후 첫 한달 동안 그는 자신의 정치적 색깔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 보였다.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중도적’이고, ‘온정적’인 보수주의를 지향할 것이라고 밝힌 부시는 일단 중앙돌파를 미뤄둔 채 우측전선 확보에 치중했다. 중도라는 ‘정치적 구호’를 즐겨 입에 올리면서도 그는 자신의 파워기반이 ‘오른 쪽’에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이런 의미에서 부시의 100일은 그를 받쳐줄 정치적 받침대를 구축하는 기간이었다.
부시는 취임 100일을 앞두고 언론매체들과 가진 연쇄 인터뷰에서 자신의 최대 업적으로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 순화"를 꼽았다.
국민복리를 위해 무엇이 옳은지에 상관없이 서로 자신의 정치적 의제를 밀어붙이려 기를 쓰던 워싱턴 정가의 분위기가 그의 취임 이후 많이 누그러졌다는 자평이다.
사실 초당적 협력을 누누이 강조했던 그는 그동안 300여명의 여야의원들을 백악관으로 불러들여 대화를 가졌고 민주당 의총에 참석해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는 모험을 하는가 하면 ‘적장’인 딕 게파트 민주당 하원 원내총무의 생일을 백악관에서 챙겨주고, 쿠바 미사일 사태를 다룬 영화의 백악관 시사회에 케네디 일가를 모두 초청하는 예의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우측으로 한껏 몸을 뺀 채 손만 왼쪽으로 내미는 의전적 접근법이 어느 정도의 실효와 지속력을 가질지는 미지수다.
워싱턴의 독기 제거보다 조금 더 구체적인 성과로 그는 자신의 감세안이 상원과 하원을 각각 통과, 양원 합동회의의 절충과정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그러나 취임 후 그가 가장 먼저 내놓았던 교육개혁안이 갈피를 잡지 못한 데다 감세안 역시 1조6,000억달러의 몸집을 그대로 유지하기 힘든 형편이다. 결국 행정부가 원하는 법안의 의회통과 및 시행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아직 신통한 수확을 올리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온다.
게다가 고위 관리임명과 인준도 지극히 부진한 상태다. 상원 인준이 필요한 488개의 고위공직 가운데 이제까지 고작 35개를 채웠을 뿐이다. 물론 각료진은 구성을 완료했으나 실무 책임자들을 기용하지 못했으니 정책입안과 집행이 원활치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 의정서 탈퇴, 식수안전기준 강화규정 폐기 등 말썽을 빚은 환경정책도 따지고 보면 행정부내 전문가들의 제어판이 가동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해프닝이었다.
백악관과 공화당측은 부시가 개표와 관련해 36일 동안 법정싸움에 휘말렸던 사실을 지적해 가며 "진정한 100일의 평가는 136일 뒤에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의회의 일정을 감안, 여름 휴회에 들어가기 전까지 기간인 취임 후 180일을 기준 삼아 초반 평가를 내려야 한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이들의 반론은 부시가 아직 "무언가 확실한 것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사실을 사실상 시인한 것으로 보아 무방하다. 하긴 초반 끗발이 막판 점수와 연결되지 않는 것이 ‘정가의 법칙’인 것만은 분명하다.
국민의 눈에 비친 부시지난 100일 동안 국민의 눈에 비친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일반 대중의 머릿속에 그려진 그의 모습을 엿보려면 여론조사 결과를 들여다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취임 100일을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시는 60% 이상으로부터 긍정적인 업무수행 평점을 받았다. 출발은 그런 대로 무난한 셈이다.
하지만 그는 아직도 ‘법선’의 딱지를 떼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USA투데이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의 48%는 그가 정정당당한 표 대결로 백악관을 차지한 것이 아니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걷어들이지 않았다.
그의 지도력에 대해서도 미국인들은 여전히 불안스런 표정이다. 절반에 가까운 43%가 백악관을 움직이는 실세가 따로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딕 체니 부통령이 백악관의 실제 주인노릇을 하고 있거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상왕’ 역할을 맡고 있지 않느냐는 의구심을 접지 못한다.
이를 의식한 듯 부시는 이번 주 방송매체들과 가진 연쇄 인터뷰에서 "대통령 혼자 국정을 모두 챙길 수는 없는 일"이라며 "목표를 정한 후 일 처리에 필요한 권한을 과감히 넘겨주는 게 내 업무처리 스타일"이라고 소개했다.
미국인들은 해군정찰기 문제 해결을 위해 그가 보여준 중국 ‘요리법’에 박수를 보냈으나 그가 귀환 승무원을 직접 맞아들이지 않고 텍사스 농장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자 "정치 지진아"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클린턴과 부시의 차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그의 강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미국인들은 실추된 백악관의 위엄을 회복시킬 수 있는 도덕감과 백전노장의 보좌진이 주는 신뢰감을 꼽았다.
반면 여론조사에서 빠짐없이 제기되는 대표적 불만사항은 그가 부유층을 위한 정책에 치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에 기초해 그려낸 부시 대통령의 100일째 초상은 다소 고단한 표정을 짓고 있다. 여전히 선거의 후유증을 앓고 있고, 자신의 지지기반을 유지는 하고 있으나 확대하진 못했으며 끈질기게 따라붙는 지도력 시비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지도자의 모습이다. 의회의 팽팽한 세력구도로 인해 입맛대로 국정을 끌어나갈 수 없다는 현실적 부담 역시 그의 피곤한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한몫하고 있다.
취임 1백일 파티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취임 100일 기념행사 가운데 백미는 여야의원 533명 전원이 참여하는 백악관 오찬이다. 취임 100일째 되는 날이 마침 일요일이라 대오찬은 30일에 열린다.
부시는 연방상원 의석을 정확히 반분한 100명의 양당 의원들과 210명의 민주당 하원의원, 221명의 공화당 하원의원 및 2명의 무소속 의원 전원에게 지난 22일 일제히 초청장을 발송했으나 이 가운데 몇 명이 참석할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사상 유례 없는 초대형 오찬에는 행정부 각료들도 총출동한다.
캐런 휴스 대통령고문은 백악관 오찬행사가 민주, 공화 양당의 공조 가능성을 보여주는 또다른 계기가 될 것이라며 "대통령은 이 오찬을 그동안 이룩한 실적을 함께 나눠 가질 수 있는 기회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백악관측은 이외에 부시 대통령이 집권 100일 동안 추진해온 교육개혁, 감세 및 환경보호 계획의 진전상황을 홍보하는 행사도 주재한다.
로라 부시의 내조 스타일백악관의 ‘내실’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일단 조용하고 평화롭다.
힐러리 클린턴이라는 폭풍이 휩쓸고 간 자리를 로라 웰치 부시의 부드러운 미풍이 어루만지면서 생긴 변화다.
9년전, 클린턴은 "나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힐러리까지 덤으로 얻을 수 있다"며 똑똑한 아내를 표밭으로 사용했고, 백악관에 들어온 힐러리는 곧바로 의료개혁의 지휘봉을 잡았다가 남편에게 커다란 정치적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러나 로라는 자신의 활동영역에 ‘국정 훈수’를 포함시키지 않았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로라는 대통령을 어떻게 내조할 것이냐는 질문에 "내 본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그를 돕는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한다"는 ‘정답’을 내놓았다. 자신의 본령인 교육문제에 관심을 쏟고 대통령을 비롯한 가족들의 사생활을 지키고 보호하는데 주력하겠다는 분명한 의사 표시였다.
부시 부부를 잘 아는 측근들은 로라를 남편의 감정지원 시스템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로라가 부시에게 절대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낸시와 베스가 로널드 레이건과 해리 트루먼에게 가졌던 힘을 로라도 소유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부시를 술독에서 건져 올린 것도 로라였고 그에게 신앙심을 갖게 만든 장본인도 로라였다. 지난 24년 동안 로라는 부시의 감정수위를 조절해주는 방파제이자 정신적 안식처였고, 지금도 그 역할에는 변화가 없다.
조용하고 따스하면서도 빈틈이 없는 로라는 힐러리가 클린턴의 부담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부시의 최대 자산이 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중적 호감도는 60%. 아직은 평가 절하된 상태라는 게 주변의 일치된 견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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