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칼렛 오하라는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의 매력에 사로잡히면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로 시작되는 마그렛 미첼의 유일한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1936·사진)는 지금도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이 팔리고 있는(Warner Books 페이퍼백 7.99달러) 미국인들에게는 하나의 신화가 돼버린 작품이다.
그런데 최근 이 소설을 흑인의 관점에서 비판한 앨리스 랜달(41)의 패로디 ‘바람은 사라졌다’(The Wind Done Gone·사진)가 법원으로부터 출판금지 가처분 판결을 받으면서 미 소설계에 때아닌 ‘바람 소동’이 일어나고 있다. 애틀랜타의 연방판사는 지난 20일 미첼 여사의 재단측이 낸 출판금지 고소를 받아들이면서 ‘바람은 사라졌다’가 "노골적 해적판이요 불법적인 속편"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다.
하버드 출신의 흑인으로 컨트리송 작사자인 랜달의 소설 교정쇄는 이렇게 시작된다. ‘나의 이복 여동생 아더(Other)는 5개 카운티의 미의 여왕이었다. 그는 미인은 아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가 움직이면서 뿜어내는 향기로운 체취와 그가 자아내는 열광적인 혼란에 사로잡히면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스칼렛의 아버지와 그의 대저택 타타(원작에서는 타라)의 흑인 쿡 매미(원작에서는 스칼렛의 유모)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 시나라의 일기식으로 진행되는 ‘바람은 사라졌다’는 또 스칼렛의 남편 렛 버틀러는 R로 개명하고 있다. R은 스칼렛을 만나기 전 이미 시나라를 정부로 두고 동거하다가 나이 먹어서 시나라와 결혼하고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미첼의 소설에서는 이로 인해 스칼렛이 유산한다) 죽은 스칼렛이 남겨준 타타를 시나라에게 준다.
미첼 재단측은 랜달의 소설은 원작의 인물들과 사건, 대사와 장면들을 조금씩 바꿔 놓은 해적판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랜달은 자기 글은 흑인을 짐승처럼 그리고 KKK단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미첼의 소설에 대한 분노한 비판이지 결코 속편이나 해적판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바람은 사라졌다’의 교정쇄를 본 서평가들에 따르면 소설 속에서 흑인들은 비록 노예 신분이긴 하나 영리하고 감정 풍부하며 또 책임감 있는 사람들로 묘사된 반면 백인들은 우유부단하고 실수를 연발하는 자들로 많은 사람들이 흑인들의 후손으로 돼 있다. 이들은 그래서 이 책이 출판되면 미첼의 팬들로부터 큰 실망과 함께 분개한 반응을 받을 것 같다고 말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진짜 속편은 1991년 알렉산드라 리플리가 ‘스칼렛’(Scarlett)이라는 이름으로 써 냈었다. 이 책은 비평가들의 혹평을 받았으나 판매성적은 좋았다. 그런데 세인트 마틴스 프린트사는 미첼 재단측에 출판권료 100만달러를 내고 제2의 속편을 내놓을 예정이다.
한편 ‘바람은 사라졌다’ 출판금지 판결이 내린 뒤 하퍼 리(’앵무새 죽이기’)와 존 슐레신저 주니어 등 20명의 소설가와 학자들은 성명서를 통해 "이제야말로 미국의 대중들이 이 전설에 관한 다른 견해를 들을 때"라고 랜달을 옹호하고 나섰다. 그런데 ‘바람은 사라졌다’의 초판은 3만부를 6월6일에 출간할 예정이었던 휴턴 미플린사는 1심 판결에 불복, 항소했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 남부의 노예제도와 대농장(목화밭)의 생활양식 그리고 남북전쟁과 스칼렛과 렛의 사랑을 그린 대하 역사 로맨스 소설로 이 책의 끊임없고 힘찬 생명력은 스칼렛에게서 나온다.
비록 미인은 아니지만 백목련 피부에 순초록 눈동자와 두터운 검은 눈썹, 그리고 새카만 속눈썹에 사각형의 턱을 지닌 남의 눈을 잡아끄는 얼굴의 스칼렛은 충만한 에너지와 불굴의 정신을 지닌 여권 해방의 기수였다. 그는 또 이기적이고 불같고 용감하며 측은하고 어리석고 교활한 요부이기도 하다.
이런 스칼렛의 특징은 영화(1939)에서 영국 태생의 미녀 비비안 리에 의해 강렬하게 표현된다. 이 7전8기의 오뚝이 스칼렛은 렛에게 버림받은 후 턱을 높이 올린 채 자신의 패배를 모르는 정신을 소설 맨 끝의 독백에서 힘차게 부르짖는다.
"난 그런 것 모두를 내일 타라에서 생각하겠어. 그때 난 떳떳이 서 있을 수 있지. 내일, 난 그를 다시 되찾아올 방법을 생각할 거야. 결국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니까." 여자 알기를 우습게 아는 한국 남자들에게는 건방진 소리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브라바’다.
150cm의 키에 왜소한 체구를 지녔던 수줍은 많은 단아한 모습의 미첼 여사가 어떻게 이렇게 도도하고 정열적인 글을 쓸 수 있었을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본고장 애틀랜타에는 지금 한창 순백의 산딸나무 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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