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닷컴? 나도 닷컴"은 불과 몇 달전 이야기였다. 불쑥 나타나 명함을 내밀면 닷컴이고, 벤처여서 혼란스럽던 때가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완전히 반전돼 닷컴은 되도록 피해 가자는 쪽이다. 한인사회의 닷컴 신용은 갈수록 바닥권이다. 닷컴하는 사람은 동네 구멍가게에서 라면 한 봉지 외상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 같은 것이 요즘 분위기다.
닷컴 명함을 들고 나타났던 사람들에게서는 다시 연락이 끊겼다. 다들 어디선가, 무슨 일인가 하며, 열심히 살고 있으려니 생각은 하지만 두들겨 보면 사이트 자체가 없어진 곳이 숱하다. 남아 있는 곳도 납작 엎드린 채 제발 내버려뒀으면 하는 눈치다.
한인 신경제의 산실이라던 미드윌셔도 조용하다. 한국 벤처업체를 유치해 상설 전시관을 만들겠다던 계획은 돈만 한 20만달러 까먹고 없던 일이 됐다. 의욕적으로 앤젤 투자, 비즈니스 인큐베이터를 이야기하던 한인 증권사도 알아봤더니 관련 부서를 없앤지 오래라고 한다.
실리콘밸리 벤처기업의 스탁옵션으로 어느 집 아들은 몇 백만달러, 어느 집 아들은 천만달러 이상을 벌었다더라는 부모세대의 부러움 섞인 이야기들도 쑥 들어갔다.
한인 닷컴 업계의 기수 코즈모 닷컴은 얼마전 문을 닫았다. 아마존 닷컴에서 6,000만달런가를 투자 받았던 코즈모는 한 때 뉴욕타임스가 업무제휴를 저울질했고, 월스트릿 저널이 사소한 기업 동정도 빠뜨리지 않고 알려주던 자랑스런 한인기업이었다.
실리콘밸리 주고용개발국(EDD) 오피스에는 실업수당을 신청하는 줄이 길어지고 있다고 한다. 연봉 10만달러가 우습던 실리콘밸리 주민 중에는 직장을 잃고 EDD를 찾는 이가 늘어나고 있지만 실업수당은 한 주 230달러가 최고라는 것을 알고 놀라고 있다고 근착 뉴스는 전한다.
개인적으로 만나본 닷컴 한인들의 최대 맹점은 너무 그 자신의 이야기에만 취해 있었다는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사줘야 할 남의 마음, 남의 집 사정은 헤아려 보지도 않고 성공의 자기 최면에 빠진다는 것은 사업하는 사람의 기본자세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 대로면 100% 성공해야 하는데 지난 1년간 지켜본 결과는 100% 실패였다.
아이디어 하나로 떼돈을 노렸다면 생각을 고쳐 먹어야 한다. 아이디어라면 아무래도 특허다. 미 연방특허청에서 쏟아내는 특허권만 하루 450건. 하지만 그 특허로 떼돈을 번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반짝 아이디어 하나로 승부가 나기에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게 얽혀 있다는 것을 최근의 닷컴 사태는 잘 보여준다.
60~70년대 한국의 변두리 이발소에는 왜 그런 것들이 일제히 붙어 있어야 했는지 그 연유를 모르지만 이발소 액자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생활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던 푸쉬킨의 시.
이 이발소 시를 잠시 빌려 ‘닷컴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나 사실은 닷컴이 그대들을 속인 것이 아니다. 그 보다는 닷컴 기업인에게 숨겨져 있던 은밀한 한탕주의 심리가 닷컴을 속였을 수 있다.
지난 2월 미국의 전자상거래 시장규모는 1년 전에 비해 42%나 늘어나 33억달러였다고 한다. 제대로 된 닷컴 기업이라면 기회는 아직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닷컴 한인들의 말대로 추세는 어차피 이쪽이고, 성실하게 차근차근 사업을 키워나가는 숨은 닷컴 한인들은 아직 많다.
부동산 투자, 주식투자에 이어 한인 커뮤니티의 또 다른 집단 실패사례로 기록될 수 있을 이번 닷컴 사태는 신경제의 거품이 걷히는 과정에서 발생한 필연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한인사회의 고질인 한탕주의와도 연결돼 있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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