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한국불교 조계종 제7대 종정 이성철 스님이 내놓은 법어다. 한국에서 일찍이 이처럼 화제가 되었던 법어도 드물 것이다. 너나 할 것없이 이 말을 떠올려 80년대초에는 하나의 사회적인 화두처럼 되어 버렸다.
이성철 스님은 8년동안 ‘장좌불와’ 한 것으로 유명하다. ‘장좌불와’란 앉아서만 참선한다는 의미니까 8년동안 한번도 눕지 않았다는 뜻도 된다. 돌아가셨지만 그는 한국불계의 ‘꺼지지 않는 빛’으로 불리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라는 법어가 신문에 보도되자 여러사람이 나한테 “그게 무슨 뜻이냐”고 물어왔다. 불교신자가 아닌 나로서는 알 길이 없어 “모른다”고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나 자신도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무슨 뜻인지 궁금 했었다.
몇년후 어느 기자가 합천 해인사 백련암을 찾아가 이성철 스님과 인터뷰 하면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무슨 뜻입니까” 라고 물었다. 그 때 이성철 스님이 그 법어의 뜻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그건 마음의 눈을 떠야 한다는 뜻입니다. 실상을 바로 보는 눈을 말합니다. 팔만대장경에 그토록 많은 말씀이 담겨 있지만 알고보면 마음 心자 한자에 모든 것이 귀결 됩니다. 마음의 눈을 바로 뜨고 그 실상을 바로보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인 것입니다”
나는 이 인터뷰 내용을 인상깊게 읽었다. 그후로 불교서적을 몇 권 읽게 되었는데 내가 새삼스럽게 발견한 것은 불교가 인간의 마음에 대해 어느 종교보다 깊고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부처가 무엇이냐. 마음이라는 것이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고 법경에 쓰여져 있다. 마음의 눈을 뜨면 자기의 본성을 보게 되는데 이것을 불교에서는 견성(見性)이라고 한다. 깨우치는 경지다. 그리고 번뇌망상에서 벗어나는 것을 무심(無心)이라 하고 무심 속에서만 진리를 볼 수 있다는 것이 불교경전의 내용이다.
중국 불교의 큰 스님으로 꼽히는 혜가 스님이 달마대사로 부터 도를 깨친 것도 바로 이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혜가는 눈속에서 3일동안 꿇어 앉아 달마에게 도를 구했으나 달마가 대답을 않자 칼로 왼손을 짤라 자신의 구도의지를 보였다. 이 때 달마가 방문을 열고 왜 이리 소란스러우냐고 묻자 혜가는 “제 마음이 괴로우니 길을 알으켜 주십시오”라고 대답했다.
달마가 “네 마음이 어디 있느냐. 내놔 봐라. 내가 고쳐 줄테니” 라고 말하자 혜가는 당황하면서 “마음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환자를 업고 갔는데 의사가 환자 내놓으라니까 환자가 없어져 버린 셈이다. 혜가는 여기서 크게 깨쳤다. 도를 구하겠다고 고민한 자체가 자신이 만들어 낸 괴로움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이 만들어 내는데 따라 괴로움도 되고 슬픔도 되는 법이다. 혜가 스님은 마침내 자기가 자기를 보는 견성을 한 셈이다. 대해탈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마음의 눈을 뜨느냐 못 뜨느냐. 이것은 불교신자 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인에게도 똑같이 주어진 숙제라고 본다. 그럼 마음의 눈을 뜨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욕심을 버려야 한다. 불교에서 무소유(無所有)를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때가 끼지않은 거울과 같은 마음을 갖는 것은 가슴속에 나침반을 갖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동네에서 산책하는데는 나침반이 필요 없지만 깊은 산속에 들어가거나 넓은 바다에서는 나침반이 필수다. 이 때 나침반의 N이 남쪽을 가르키고 S가 북쪽을 가르킨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완전히 길을 잃게 된다.
마음도 이와같은 것이다. 탐욕이 지나치면 마음의 나침반이 고장나고 따라서 마음의 눈이 떠지지 않는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이성철 스님이 남기고 간 이 말은 인간의 마음연구에 크게 이바지한 금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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