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별걸 다 기억한다.”왕래가 끊긴 먼 친척들이며 언니의 옛친구들 안부를 묻는 내게 가벼운 핀잔을 주면서도 언니 또한 이내 추억의 강물로 성큼 뛰어든다. “너 내 친구 은주 기억나니? 학교 때 신혼인 언니네 다락방에 얹혀 살며 고생하던 애 말이야. 걔가 지금은 어마어마한 부잣집 사모님이시다. 빌딩만 해도 몇 개나 된다지, 아마. 게다가 착한 남편에 건강한 애들하며 정말이지 남부러울 게 없어 뵈더라.”
무던했지만 키가 작고 인물이 참으로 볼품 없던 언니였는데 그렇다고 내세울만할 학벌이 있는 것도 아니고, 부러운 속내를 숨긴 채 우리는 내심 그 신데렐라신화의 원인을 바삐 찾고 있었다. 그러다 마침내 두 사람 중 누군가가 두꺼비같이 두툼했던 그녀의 손등을 떠올리고는 “맞아, 맞아, 그 손 가지고 부자로 못살면 바보지.” 그제야 두 여자는 엉성한 질투의 그물에서 그녀를 슬며시 놓아주었다.
우리는 왜 무슨 일에든 원인과 결과를 꼭 꿰 맞추려 드는 것일까? 때로는 사주나 관상의 도움을 얻어서까지, 어쩌면 우리 안에 잠재된 불안심리 때문은 아닐까? 예상을 비껴갔던 삶의 편린들, 그 황당한 기억들 때문에 우리는 돌연변이성 이변이 난무하는 세상살이에 일련의 확실한 법칙들을 부여하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많이 배운 사람이 많이 벌고, 미인이 유능한 남자를 차지하며 젊어서 아끼고 모으면 노후가 편안하다는 식의 엄격한 인과의 법칙 말이다. 그래야 우리 앞에 놓인 불확실한 내일이 조금은 덜 불안할 테니까.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실은 우리가 애써 엮어놓은 인과의 법칙을 보기 좋게 빗나갈 때가 그 얼마나 많은가. 두툼한 손등 외에는 신데렐라가 될만한 마땅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던 언니친구의 행운처럼.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이 같은 예측불허의 우연 속에 인생사는 재미가, 또 피곤한 삶 속 잠시 숨돌릴 여유가 숨어있는 것이다. 정말이지 콩 심은 데 콩 나는 그 정확성에는 허황되나마 희망이나 꿈이 깃들일 여유가 없으므로. 그래서일까, 우리는 그 틈새의 희망 때문에 때로 정기예금의 안전성보다는 증권의 도박성을 선택하고, 돌연변이 망나니 아들에게도 섣부른 기대를 가져보는 것이다.
요즘 ‘I love school’이란 동창 찾기 사이트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는 모양이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우연히 발견된 일기장처럼 팍팍한 현실을 어루만지는 한 줄기 봄바람쯤으로... 그 말수 없던 방앗간 집 아들에게는 30년의 세월이 어떻게 흘러갔을까? 그어놓은 금 너머로 피구 공을 피해 언제나 끝까지 남겨졌던 그 악바리 계집아이는 지금쯤 무엇이 되었을까? 또 늘 주머니에 타임지를 끼고 다니던, 융통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어 뵈던 대학동창은?
그런데 과연 우리가 찾고싶은 그들의 모습이 묵묵히 떡시루를 옮기는 중년의 방앗간 주인, 판매 왕이 된 주부사원, 주변머리 없는 연구실 붙박이 교수였을까? 그보다는 어쩌면 얌전하던 방앗간 집 아들이 잘 나가는 벤처기업 사장이 되고, 악바리 계집아이는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자가, 그리고 답답한 대학동창 아이는 순발력 있는 외환 딜러가 되었다는 파격적인 소식, 우리는 내심 그런 기적들을 기대하는 건 아닐까? 그러고 보면 동창 찾기 사이트의 진정한 유혹은 아련한 지난 날 향수에 있는 게 아니라 반전을 향한 기대, 즉 틈새의 희망 찾기에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게 영화 ‘디어헌터’의 감동은 숨막히는 러시안 룰렛 죽음의 공포 속에서 러시안 룰렛 도박에 빠져든 얼음 조각 같던 미군병사의 표정... 그때 나는 그의 초점 없는 눈, 굳게 다문 입매에서 한 젊은이의, 아니 인류의 절망을 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자신의 머리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기던 그의 만용이 과연 단순한 절망의 몸짓이었을까? 어쩌면 총구에서 총알이 퉁겨져 나오지 않을 확률, 그 개연성 없는 우연에 자신의 행운을 점쳐본 건 아닐까? 생환의 요행을 기대하며.
서둘러 펼쳐보는 신문에는 언제나 제멋대로 인 세상이 실려있다. 하기야 예상 가능한 상식이 어찌 새삼 뉴스거리가 되리. 게다가 그 뉴스라는 것도 대부분 절망에 가까운 것들이지만 그 무질서의 틈새에 가끔은 예기치 않은 반전이 숨어 있다. 절망과 고통으로 찌든 만년, 그 예상 가능한 운명을 뒤집고 석사모를 쓰게 된 위안부할머니의 기사처럼.
우연에 우리의 미래를 맡기지는 말자. 내일의 수확을 위해 오늘 부지런히 씨를 뿌리자. 그러나 가끔은 잊혀진 동창을 찾듯, 내일 신문을 기다리듯 팍팍한 현실에 새어드는 ‘틈새의 희망’을 바라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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