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개그우먼이 다이어트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여성들 사이에서 화제다. 몇년전 인기 토크 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의 다이어트 성공담이 온통 매스컴을 휩쓸었는데 요즘 한국에서는 개그우먼 이영자씨가 그만한 선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같다.
10개월만에 매스컴에 모습을 드러냈다는 그는 사진으로 보기에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몸무게가 20kg 줄고, 44인치였던 허리가 29.5인치로 줄었다니 전체적인 인상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가벼워진 몸무게만큼 자신감은 날아갈듯 높이 치솟은 표정이었다.
그가 살빼기에 성공한 후 인터뷰에서 말한 내용은 그러나 씁쓸한 데가 있다. ‘뚱뚱하지만 당당한 여자’ 역을 충실히 하며 개그우먼으로서 성공은 했지만 방송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면 자신은 별수없는 뚱뚱한 여자로 콤플렉스를 벗어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그우먼이 아닌 한 여성으로서도 당당하고 싶어서 이를 악물고 식사 양을 줄이고, 매일 몇시간씩 걷고 또 걸었다고 한다.
직업인으로 성공하고 신체적으로 건강한 여성이 ‘살’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리고, 10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오로지 그 ‘살’ 빼기를 위해 투자하고, 그리고 나니 사방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오는 사회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이다. 그의 살빼기를 두고 ‘부럽다’‘나도 하면 되겠구나’하는 반응들이지 ‘왜 사서 고생인가’‘이전 모습이 더 낫다’는 반응은 별로 없다. ‘체중감량’은 어느새 이론의 여지가 없는 절대 선으로 우리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있다.
20년전 미국생활 초기에 내가 이해하기 어려웠던 것은 여성들이 음식을 먹으면서 느끼는 ‘죄책감’이었다. 아이스크림이나 초컬릿을 먹을 때마다 미국친구들은 “죄책감 느낀다”는 말을 하는데 당시는 이해할수 없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한국에서는 “덜 먹고 날씬해져야지”정도의 바람은 있어도 먹는 것, 살찌는 것이 여성에게‘죄’까지는 아니었다.
세계화 바람을 탔는지 ‘살찌는 죄’는 이제 좀 먹고 산다는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통용되는 만국 공통의 죄가 되었다. 지난 연말 한국의 한 언론사는 인터넷을 통해 225개국 38만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는데 그 결과를 보면 지구촌 여성의 가장 큰 관심사는 단연 몸무게이다. 여성 응답자의 절반은 몸무게가 항상 최대 관심사안이라고 했고 때때로 신경을 쓴다는 여성은 38%였다. 세계 여성의 86%가 몸무게 고민을 한다는 말이 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나이지리아는 낙원이다. 살찐 것이 아름다움의 기준이어서 아무리 먹어도 죄책감에 시달릴 이유가 없다. 풍만한 몸이 건강과 부귀, 매력의 상징이라고 한다. 그래서 결혼 적령기가 되면 처녀들은 ‘살찌는 방’에 들어가 몇 달씩, 길게는 2년씩 꼼짝도 않고 계속 먹기만 하면서 몸집을 불리는 것이 오랜 전통이다.
남태평양의 피지에서도 허리와 배가 구분 안되는 살집 좋은 여성이 전통미인이었다. 그런데 그 전통이 불과 몇년사이 어처구니없이 무너져버렸다. 원인은 TV였다. 피지에 TV가 보급된 것은 지난 95년인데 그후 3년쯤 지나자 젊은 여성들이 ‘뚱뚱하다’는 고민을 하며 음식 먹기를 거부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TV화면에 등장하는 미국, 영국의 날씬한 여성들을 보다 보니 이상적 여성상에 변화가 온 것이었다.
TV가 우리 생활에 미친 영향은 광범위하지만 그중 두드러진 것은 외모의 중요성이 지나치게 강조된 것이다. 성공하고 매력적이며 착한 주인공은 으레 날씬한 배우들이 맡다보니 ‘날씬함은 옳은 것, 살찐 것은 잘못된 것’이라는 왜곡된 이미지가 형성되었다. 너덧살 되면 벌써‘다이어트’를 되뇌는 우리 시대의 살빼기 강박증은 매스 미디어가 주도하는 상업주의 문화의 영향이 크다.
‘독한 여자’조크가 있다. 세상에서 제일 독한 여자는 자식 버리고 도망가는 여자, 하지만 그보다 더 독한 여자는 먹을 것 앞에 놓고 안먹는 여자라는 것이다. 살 안찌려고 맛있는 것 앞에 놓고 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빗댄 조크이다.
병이 들어보면, 혹은 병원에 가보면 ‘다이어트’가 얼마나 큰 사치인지를 알수 있다. 생명에 대한 보답은 즐겁게 사는 것이라고 본다. 남의 잣대에 너무 끌려다니지 말고 당당하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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