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밀레니엄 기행 (11) 라틴아메리카를 가다
▶ 칠레 <중>
오지중의 오지, 고도 ‘이스터’"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또 어디로 가는 것일까." 세계적인 화가 폴 고갱은 어느 날 갑자기 파리의 생활을 정리하고 타이티의 원시생활로 돌아가 때묻지 않은 타이티의 여인들을 주제로 많은 명작을 남겼다.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의 제목이 바로 이 같은 존재에의 물음이다.
뒤로는 억겁의 세월을 보내며 1m의 두께로 자라 사람이 올라서도 끄떡없는 이끼로 뒤덮인 진한 녹색 호수, 앞으로는 끝없이 펼쳐진 눈이 시리도록 푸른 태평양을 바라보자 이곳 이스터섬에 오기 위해 LA를 떠나 무려 18시간이 소요된 비행기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졌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폴 고갱의 작품 제목처럼 "우리는 무엇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라는 존재에의 물음이 온몸을 엄습했다.
비행기로 5시간 날아바다를 등지고 서 있는 거대한 석상으로 유명한 이스터섬은 칠레의 영토라고는 하지만 육지로부터 3,700km가 떨어져 산티아고에서도 비행기로 5시간 이상을 날아가야 하는 고도이다. 즉 이 섬은 서쪽으로는 타이티로부터 4,000km, 동쪽으로는 미대륙으로부터 3,700km가 떨어진 세계의 오지 중의 오지이다. 그리고 이 섬의 정상에 서면 버둥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하루, 하루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지고 모두가 철학자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부활절에 발견한 ‘작은 제주도’ 원래 이름이 큰 섬이라는 뜻의 라파누이이지만 유럽 탐험대가 부활절에 발견했다고 해서 이스터섬으로 불리게 된 이 섬은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격리된 고도에 거대한 석상들을 무수히 건설해 고대문명의 경이 중의 하나로 주목을 받아왔다. 덕분에 이처럼 멀리 떨어지고 인구 2,800명에 면적 180킬로평방미터에 불과한 이 작은 섬에 연간 3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고 비행기편과 숙박 능력의 한계로 많은 관광 희망자들이 이 곳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스터섬은 여러 면에서 제주도를 연상시킨다. 화산섬이라는 점, 화산석을 쌓은 돌담, 초원과 방목하고 있는 말들, 분화구의 호수, 화산석으로 만든 석상, 즉 이스터섬의 돌하루방인 모아이스는 이 섬이 작은 제주도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한글읽는 라파누이인사실 관광안내를 해준 한 젊은 라파누이인은 이스터섬이 제주도를 닮았다는 나의 설명에 돌하루방 이야기를 하며 공감을 표시했다. 빅타 이카라는 이름의 이 젊은이는 첫 날 관광을 시작하면서 내가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자 카메라에 써놓은 한글을 보고 느닷없이 "한국일보 경제부"라고 말을 해 나를 깜짝 놀라게 했는데 태권도를 배워 말은 잘 못 하지만 한글은 읽을 줄 알며 자신들의 전통음악 연주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오지 중의 오지에서 한글을 읽을 줄 아는 라파누이인을 만나다니 정말 세계는 하나가 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라파누이의 역사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이 섬에 페루에서나 볼 수 있는 돌 사이로 종이 한 장 안 들어가게 정결하게 쌓아 만든 돌벽이 있는 데다가 최근 페루의 한 학자가 갈대 뗏목으로 미주 대륙으로부터 이 섬까지 항해를 해 보임으로써 미대륙 기원설을 입증하려 하고 있으나 언어, 인종, 문화 등 여러 면에서 라파누이 사람들이 폴리네시안으로 동쪽이 아니라 서쪽에서 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라파누이인들은 자신들의 전설에 따라 자신들이 히바라는 미지의 땅에서 왔으며 그 땅이 사라진 애틀랜타인지 모르며 그 증거로 히바에서 가져왔다는 돌로리로라는 식물이 지구상 어디에도 없고 이 섬에만 있다는 사실을 들고 있다. 사실 모든 모아이스 석상이 바다를 등지고 육지를 보고 있는 반면 처음 히바로부터 이 섬에 도착했다는 7명을 기린 석상의 경우 원래의 고향 히바를 그리는 마음에서 바다를 향하고 있다.
높이 20m의 석상 1천개약 4세기에 이 섬에 정착한 원주민들은 풍요한 땅에 감자, 바나나, 포도, 아보가도 등을 재배하며 인구를 늘려갔다. 그리고 9세기를 전후해 모아이를 만들기 시작했고 인구는 계속 늘어 네덜란드의 배가 이 섬을 처음 발견했던 1722년 당시 1만5,000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1825년 유럽 배가 다시 이 곳을 방문했을 때에는 많은 석상들이 쓰러져 있었고, 이후 1868년 한 영국의사가 이곳을 찾았을 때는 모든 석상들이 다 땅에 쓰러져 있었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지진과 같은 재앙이 발생하여 조상을 섬기기 위해 만든 모아이를 라파누이인들이 더 이상 안 믿게 되고 인구는 계속 늘어나 생태적 균형이 깨어진 데다가 석상을 만드느라고 나무를 다 베어버려 카누를 만들 수 없게 됨에 따라 어업에도 문제가 생겨 제한된 식량을 놓고 내전이 벌어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게다가 노예 사냥꾼들이 섬을 습격, 대부분의 인구를 노예로 잡아감으로써 인구가 109명까지 줄어들었다. 이 같이 황폐화된 이스터섬은 이후 칠레가 이 섬을 영토화하고 원주민 보호정책을 폄으로써 다시 2,000명 정도로 원주민이 늘어났다. 또 일본의 크레인 회사가 석상 복구작업을 자기들의 크레인 선전영화를 찍는 조건으로 무상으로 해주어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되게 됐다.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석상은 우주인이 지었다느니 하는 추측과 달리 그 건설과정이 거의 밝혀지고 있다. 최고 20m 높이에, 20톤에 달하는 이 석상은 현재 250개가 남아 있는데 400여개의 미완성 석상들이 모여 있는 채석장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채석장에서 돌에 우선 석상의 앞면을 조각한 뒤 등 부분을 파 돌로부터 석상을 분리시킨 뒤 목에 밧줄을 매 경사면을 이용해 아래로 서서히 내려보내다가 석상이 들어가도록 땅을 파 놓은 구멍에 석상의 아래 부분이 빠지게 해 석상을 세운 뒤 뒷면을 조각한 것을 채석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석상 제조도 제조이지만 운반은 더욱 미스터리인데 최근 기차 레일처럼 돌을 두 줄로 깔고 규칙적으로 구멍을 낸 돌 레일이 발견되어 이 구멍에 나무로 넣어 지렛대 식으로 석상을 돌 레일을 따라 운반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석상 하나를 만드는데 일년이 소요되는 바 인구 1만여명의 작은 섬에서 이처럼 거대한 석상을 1,000개나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면서도 결국 지나친 석상 제조, 즉 우상숭배가 생태적 균형의 파괴로 이어져 한 사회의 파멸로 이어졌다는 것은 중요한 교훈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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