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조용히 촬영을 하고 있을 때만 해도 ‘친구’(감독 곽경택)의 위력이 이렇게 클 줄은 누구도 예상 못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친구’ 얘기다. ‘쉬리’ 나 ‘공동경비구역 JSA’ 처럼 사회적 관심사나 정치적 이데올로기도 없다.
저 남쪽 끝 항구도시 부산에 사는 네 친구의 20년사는 얄팍한 지성이나 덧칠한 추억을 거부한다. 절제와 세련미로 일관하는 팬시 상품 같은 영화도 아니다. 그냥 우리가 지나왔고, 어쩌다 도시적 감각에 길들여져 잃어버렸던 감정의 자연스런 표현이다.
가만히 둘러보니 친구 하나 없는 외로운 사람들은 ‘친구’가 그리워, ‘오래 두고 가까이 사귄 벗’ 이 있는 사람들은 그 모습을 서로 확인하러 몰려간다. 그만큼 우리는 지금 ‘친구’가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는 증거일까. 개봉(31일) 첫 주말 한국영화 사상 최다 관객(서울 22만3,246명, 전국 58만2,902명)을 기록한 ‘친구’는 개봉 5일만에 전국 100만명을 돌파했다.
■야, 친구야 지금(평일)도 매일 13만명이 ‘친구’를 만나러 간다. 그들은 준석(유오성)과 동수(장동건), 상택(서태화)과 중호(정운택)가 연기처럼 소독약을 내뿜는 방역차를 따라가는 어린시절에서 자신의 모습을 더듬고, 거침없이 내달리고 고민하던 고교시절에서 버려두었던 앨범을 펼친다. 준석과 동수가 서로 칼을 맞대야 하는 상황으로 치달으면 안타까워 가슴을 졸이고, 동수가 상택을 전송하러 공항으로 가다가 칼을 맞고 죽어가면서 "마이 묵었다, 고마해라" 하는 말에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는 그들의 우정을 다칠까 애써 준석이 동수를 죽이지 않았다고 믿는다.
■사투리, 은어, 흑백필름 ’친구’ 는 투박하다. 함축적인 부산 사투리, 반항과 자학으로 지나간 학창시절, 그때의 자연스러웠던 은어와 욕설, 거침없이 휘두르는 주먹과 칼. 누구는 이를 ‘자연주의’라고 명명했다. ‘친구’는 솔직하다. 감독과 그의 친구들 이야기가 때로는 ‘우정’ 이란 주제에 얽매여 감정과잉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묘사만은 솔직하다. 교사의 거침없는 폭력과 보복에 대한 불안, 시험 시간의 교실풍경, 심지어 조직폭력배에게 칼쓰는 법을 가르쳐주는 것까지.
솔직한 묘사가 추억의 메커니즘을 살려준다. 문화평론가 이성욱씨는 이 영화가 "조각조각난 옛날 기억을 자연스럽게 되살아 나게 해주는 가이드라인 역할을 한다" 고 말했다. 그 길을 따라가면 ‘친구’ 가 있고, 친구의 눈물과 우정을 만난다. 친구란 있는 그대로를 인정하는 것이며, ‘내가 가지 못한 길’의 상징이기에 더욱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허무하고 비장한 결말로 이야기한다. 거창한 휴머니즘이 아니다. 누구나 갖고있는 아름다운 마음의 확인이다.
■’개안타, 친구 아이가’ 의 이데올로기 부산의 정서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은 그 위력을 알 것이다. 용서와 포기를 의미하고, 심지어 죄의식까지 털어버린다. 준석은 이 한마디로 자기와 딴 길을 걸은 모범생 상택을 감싸 안았고, 자기 목에 칼을 들이대는 동수의 마음을 돌렸다.
’개안타’ 는 ‘말 안해도 나는 네 마음을 안다’ 는 뜻이고 뒤집으면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모른다’는 말이 된다. ‘우린 친구 아이가’ 는 ‘우리가 남이가’ 와 같이 철저한 동류의식이다. 때문에 의도와 상관없이 ‘공동경비구역 JSA’가 햇볕정책을 반영했듯, ‘친구’ 가 지금의 부산지역 정서를 보여주는 영화로 확대 해석하는 사람도 있다. 분명 홍콩 느와르 ‘영웅본색’ 을 곁눈질 한 흔적이 보이면서도 그 냄새가 다르다. 홍콩
느와르가 홍콩이 불안한 미래에 대한 우울한 허무주의라면, ‘친구’는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투박한 위안이다. ‘부산 느와르’ 이다.
■유오성 vs 장동건 ’친구’를 부산 느와르로 만든 일등공신은 물론 부산이다. 생선 비린내와 마약의 항구도시, 해학과 폭력성을 동시에 지닌 사투리. 여기에 두 배우가 있었다. 유오성의 카리스마는 부산 특유의 무뚝뚝하면서도 깊은 맛을, 장동건의 불량기는 반항적이고 허풍스런 부산의 정서를 받아들였다. 둘이 처음 함께 거리를 내달릴 때부터, ‘친구’는 이미 세상이 정해준 모범적 길을 가는 우리에게 해방감을 준다. 그리고 보스도 채 못 되는 깡패로 만나 서로 목에 칼을 들이대야 할 때, 유오성이 "너나 나나 시키는대로 할 뿐" 이라는 자조 섞인 말 속에서 관객은 조직에 함몰된 인간의 나약함에 연민을 느낀다. ‘친구’의 성공은 젊은 시절의 즐거움과 변화가 초래한 연민에 대한 공감이기도 하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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